남도 불교 지명이야기

함평 손불면

손자 스님이 할아버지 부처에게 예를 갖추는 명당

꽃과 나비의 고장 함평은 11월이면 온통 국화로 뒤덮인다. 해마다 ‘대한민국 국향대전’을 개최해 천지가 국화향으로 진동하는 것이다. 농경지가 비옥한 함평의 쌀은 질이 좋아 진상품으로 올릴 만큼 맛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이쯤 되면 함평은 ‘다함께 어울려 사는 평화로운 고을(咸平)’로 모두가 염원하던 불국토라 할만하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함평은 불교와 인연이 깊어 절이 많고 불교에서 유래된 땅이름이 많다. 함평 북서부에 자리한 손불면(孫佛面)은 더욱 특별하다.

영광군과 무안군을 이어주는 칠산대교.
무안군에서 바라본 칠산대교 다리건너 오른편이 손불면이다

직역하면 ‘손자와 부처님 고을’이라 하겠다. 예로부터 손불면에는 손승배조(孫僧拜祖) 또는 손승배불(孫僧拜佛)이라는 명당이 있어 손불면(孫佛面)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산세가 손자인 스님이 할아버지(부처님)에게 고개 숙여 예를 갖추는(孫僧拜祖佛) 형상으로 면(面) 전체가 불교 고을인 셈이다. 손불면 바닷가에 전하는 불맥이굿의 유래에도 민중을 위한 스님들의 흔적을 살필 수 있다.

지금부터 약 400여 년 전 노승봉에서 노스님 한 분이 내려오더니 손불면을 바라보며 “참으로 큰 터로구나”며 감탄했다. 그런데 지형을 살피던 스님은 앞산 등남산에 화귀(火鬼)가 서려있고, 뒷산 낭떠러지에 흠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좋은 터에 흠이 있어 안타깝다”며 탄식했다. 이를 본 마을 노인이 스님에서 방지책을 일러 달라고 간청했다.

노승이 말하길 “화귀를 막을 수 있지만 낭떠러지는 어찌할꼬”라며 탄식을 그치지 않았다. 촌노는 “우선 화귀 막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낭떠러지는 차차 대책을 세우겠다”며 거듭 통사정을 했다. 그러자 노승은 노인장의 뜻이 갸륵해 “저기 수문 위에 있는 등허리(등남산이 올려다 보이는 곳)에 항아리 셋을 묻되 육수와 해수를 반반씩 넣어서 가득 채우고 봉한 후에 흙을 덮어 무덤처럼 해두었다가 불이 나거든 열어보라”하고 사라졌다.

그 후 중간마을에서 불이 나 열어보니, 가운데 항아리의 물이 없어졌다. 기이하게 여기어 다시 물을 채우고 묻어두었다. 며칠이 지나 이번에는 아랫마을에서 불이 나 항아리를 열어보니 아래쪽 항아리만 물이 없어졌다. 육수와 해수를 담은 항아리가 마을 화귀를 막아주고 있는 것이었다. 이처럼 항아리 셋이 윗마을 중간마을 아랫마을을 상징하고 각각의 마을을 지켜주는 것이라 전해오고 있다.

또한 노승이 말한 것처럼 낭떠러지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거나 다치는 일이 많아지자 낭떠러지 입구를 막아 통행하지 않도록 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2월 초하룻날 아침에 제물을 갖고 물항아리를 열러간다. 항아리를 열어서 물의 양을 살피는 것으로 마을사람들은 이를 ‘항 파러 간다’고 한다. (전남의 전설) 불교와 인연 깊은 손불면은 19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전국 군현 지도집 <광여도>를 비롯해 <여지도>, <지승>에 손불면(孫佛面)이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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