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속이야기

원한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옛날에 서로 원수처럼 지내던 까마귀 무리와 올빼미 무리가 있었다. 까마귀떼는 올빼미가 낮에는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낮을 기다렸다가 올빼미떼를 공격해 그 살을 발라먹었다.
또 올빼미떼는 밤이 되면 까마귀가 눈이 어둡다는 것을 알고 밤마다 까마귀떼를 공격해 그들의 창자를 꺼내먹었다. 이렇게 서로 낮밤으로 싸우며 그칠 새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꾀 많은 한 까마귀가 무리에게 말하였다.
“올빼미와 우리의 원한은 너무 깊어 이미 화해할 방법이 없다. 이대로면 결국 서로를 죽이다가 양쪽 모두 온전하지 못할 것이다. 차라리 저들을 완전히 없애 우리라도 편안하고 즐겁게 살자.”
그러자 다른 까마귀들이 말하였다.
“그렇다. 어떻게 해야 저 올빼미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을까?”
꾀 많은 까마귀가 말하였다.
“내가 무리에서 쫓겨난 것처럼 보이게 너희들이 내 털을 뽑고, 피가 나도록 내 머리를 쪼아라. 다음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까마귀들은 그의 말대로 하였다. 꾀 많은 까마귀는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온 몸의 털이 뽑히고 날개까지 꺽인 처량한 꼴로 올빼미들이 사는 굴로 찾아가 울었다.
까마귀 소리에 놀란 올빼미들이 떼로 몰려나왔다.
올빼미들이 발톱을 세우며 까마귀를 위협했다.
“이놈이 겁도 없이 혼자 찾아왔구나.”
그러자 까마귀가 처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꼴을 보십시오. 저는 무리에서 쫓겨났습니다. 이제 제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당신들이 보호해 주지 않으면 저에게는 죽음이 기다릴 뿐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자비심 많은 한 원로 올빼미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저 불쌍한 까마귀를 보살펴 줍시다.”
젊은 까마귀들이 발끈하였다.
“저놈은 우리 부모 형제를 죽인 원수입니다. 저런 놈과는
함께 살 수 없습니다. 원로께서는 왜 저런 놈을 살려주라
하십니까?”
그러자 원로 올빼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젊은
올빼미들을 달랬다.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이를 내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게다가 저 불쌍한 꼴을 보라. 우리마저 돕지 않으면
저 까마귀는 죽고 말 것이다. 먼저 자비를 베풀어 우리가
저들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주자.”
하지만 젊은 올빼미들의 반발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저 놈의 속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자비심을 베풀어도 저놈이 흉폭한 마음을 품고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습니다.”
“저 까마귀는 혼자다. 설령 그 속내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해도 혈혈단신으로 도대체 뭘 할 수 있겠는가? 또 옛말에 적의 나의 친구라 했다. 까마귀떼를 물리치는데 저 까마귀가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원로 올빼미의 끈질긴 설득에 올빼미떼는 그를 받아주고 남은 고기까지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마귀는 털이 다시 돋고 날개와 상처도 회복되었다. 까마귀는 거짓으로 만나는 올빼미들마다 감사를 표혔다. 그런 까마귀의 웃음에 젊은 올빼미들도 하나둘 경계심을 풀었다.
어느날 까마귀가 마른 나뭇가지와 풀을 잔뜩 물고와 굴 안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그러자 올빼미들이 물었다.
“무엇하는 겁니까?”
까마귀가 연신 굽신대며 말했다.
“이 굴속에는 차가운 돌뿐입니다. 풀과 나뭇가지를 바닥에 깔면 한겨울에도 따듯하고 폭신폭신할 겁니다. 여러분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이렇게라도 작은 정성을 보이고 싶습니다.”
올빼미들은 은혜를 잊지 않는 까마귀를 대견해하며 친구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함께 사냥도 나가고, 낮에는 까마귀에게 굴을 지키는 임무까지 맡겼다.
그러던 겨울밤, 폭설이 내리고 한파가 몰아쳤다. 그러자 추위에 떨던 숲속 올빼미들이 폭신폭신한 풀과 나뭇가지가 가득한 굴속로 모두 몰려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올빼미들이 밝은 햇살아래 거물거물 눈이 감기자, 기회를 노리던 까마귀가 눈빛을 반짝이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목동이 밤새 피워놓았던 모닥불에서 불쏘시개 하나를 물고 올빼미 굴로 돌아와 입구의 바싹마른 풀더미에다 던졌다.
불은 삽시간에 번졌고, 올빼미 떼는 메쾌한 연기와 불길에 휩싸여 한꺼번에 몰살하였다.
이 광경을 보고 하늘나라 신들이 슬픈 목소리로 노래하였다

오랜 원한이 맺힌 자
너무 쉽게 믿지 말라
까마귀가 친구인척 척하며
올빼미들을 모두 태워죽이는구나
.

탐욕과 분노의 불길로 달궈진 사람의 마음은 한순간에 식지 않고, 가슴 깊이 맺힌 원한은 한순간에 풀어지지 않는다. 펄펄 끓는 냄비는 불을 꺼도 단박에 식지 않고, 얼음덩어리를 볕에 내놓아도 단박에 녹지는 않는 것처럼. 그러니 마냥 호의를 베풀며 방심하다가 재앙을 초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Related Article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Check Also
Close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