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묵당 편지증심사 산책

오백전 저녁 예불

‘이렇게 살다가 언젠가는 죽겠지?’

새벽 예불을 하며 절을 하다가 문득 든 생각입니다. 이마가 좌복에 닿는 잠깐동안 불쑥 찾아온 생각은 그 후로도 쉬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 중에서 가장 확실한 사실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뿐입니다. 오직 이것만은 100% 확실합니다. 게다가 내게 허락된 날들이 살아온 날들 보다 적을 듯합니다.

 무언가를 이룬다는 건 부질없는 일입니다. 죽어서 가져갈 것도 아니요, 나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이름을 남긴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설령 윤회한다 해도 전생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니 소용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요? 그런데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인가요? 어떻게 밥을 먹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어떻게 걷는 것이 최선을 다해 걷는 것이고, 어떻게 일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선을 다해 보내는 것이고, 어떻게 말하는 것이 최선을 다해 말하는 것일까요? 그런데 왜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할까요? 다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과연 로봇도 아닌데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일일까요?

노스님들께서는 항상 “중이 밥값은 하고 살아야 한다.” 말씀하셨습니다. 다가오는 오백대재를 생각하니 지난 1년간 밥만 축내고 산 것 같아 나한님들 뵐 면목이 없습니다. 노스님들의 말씀이 이제야 가슴에 와 박힙니다.

뭔가 이루지 못해도 좋고, 최선을 다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다만 ‘밥값이라도 제대로 해야겠다’ 고 다짐하는 가을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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