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불교학당

혼자서 기도하는 법

2021년 6월 10일 강의

많은 신도님들에게 ‘혼자서 기도하는 법’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혼자서 기도하는 법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란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수행이다. 그렇다면 수행은 무엇인가? 수행이라 함은 자신의 행을 다듬어서 궁극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말한다. 우리는 이 중에서도 기도, 불공, 수행, 예불 등 비슷한 단어들이 어떻게 다른 지를 알아야 한다. 절에서 10시에서 11시까지 하는 의식을 사시예불이라고도 하고 사시불공이라고도 하고 사시기도라고도 말한다. 기도, 예불, 불공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표현을 달리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도는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즉, 소원성취이다. 다른 종교에서는 절대적인 존재에게 의지하여 이렇게 소원성취를 원하지만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다르다.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부처님에게 비는 것이 아니라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부처님이 되어야겠다고 말한다. 내가 부처가 되기 위해서 행하는 모든 것들이 수행이며 그것이 곧 기도가 된다.

그것이 소원성취로 가는 길이다. 즉 수행에 있어서 수행의 결과물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측면에서 볼 때 그 수행을 기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수행을 기도라고 말할 때는 그 수행의 결과를 반드시 회향해야 한다. 혼자서 기도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회향이 뒤따라야 한다. 혼자서 열심히 기도를 했다 하더라도 회향이 없다면 그것은 수행이지기도가 아니다.

왜 기도하는가?
내 수행의 공덕을 회향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나의 소원성취라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기도의 의미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원성취만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일까? 대다수 불자들이 처음 기도를 하기 시작하는 이유는 그럴 것이다. 복을 짓기 위해서, 마음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일리 있는 말이다. 어떤 문제에 초조하거나 불안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복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내 마음을 건강하게 하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하면 된다. 이것이 발전하면 번뇌의 영원한 소멸, 깨달음을 위해서 기도하게 된다.

기도하는 순서
혼자서 기도하는 법이라고 할 때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바로 기도의 순서일 것이다. 혼자서 기도할 때 어떤 순서로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일까? 혼자서, 나만의 공간에서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간단명료한 순서가 필요하다. 절에서 하는 각종 진언 등을 챙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없다. 그럴 바에는 절에 와서 예불에 참석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단순하게 정리한 기도의 순서는 이렇다.

천수경-수행-발원문-반야심경

기도할 때는 천수경을 독송하며 시작을 알린 후 칭명염불 즉 정근을 한다. 수행을 하고 나면 행선축원이나 이산혜연선사 발원문 등으로 기도의 공덕을 회향한다. 그 후에 반야심경으로 기도를 마무리하면 된다.

기도의 단계
1단계. 주변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다.
자기가 내는 정근 소리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같은 음곡을 계속 반복하다보면 망상이 쉽게 일어나고 주위를 뺏기기 쉽다. 크고 빠르게 하되 중간중간 음곡의 변화, 강약 등 사소한 변화를 줘서 스스로 정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단계. 마음 속 기도 소리에 집중한다.
기도를 제대로 하려면 ‘관세음보살’ 정근을 입이 아닌 마음속으로 먼저 한다. 그러다가 집중이 된다 싶으면 마음속으로 내는 소리가 실수로 입에서 나오는 것 같은 느낌으로 입을 열기 시작한다. 집중은 소리가 아닌 마음이다. 다음으로 구절을 살짝 바꾸겠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일으키고 그 생각을 관찰한다. 의도를 알아차린다는 것은 수행의 상당한 경지이다. 생각으로 ‘다음 구절에 악센트를 줘야지’ 라고 생각하면 벌써 몇 찰나가 지나간 것이다. 악센트를 바꿔야지 하는 그 찰나의 의지, 느낌, 상상을 간파하는 것이다.

3단계. 정근하는 자신을 관찰한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한다. 관찰하는 대상의 소리만이 아니라 나의 목의 떨림, 목탁채를 쥔 손의 느낌, 목탁을 쳤을 때 전해오는 떨림을 관찰해야 한다. 이것은 내 신체기관을 말한다. 목의 움직임, 코, 입모양, 손 동작, 어깨 통증, 허리나 다리의 감각 등을 돌아가면서 관찰하는 것이다. 염불을 하면서 내 몸의 모든 부분의 변화를 관찰하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내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내가 아닌 낯선 느낌이 든다. ‘이게 뭐지?’, ‘이렇게 움직이는 나는 무엇이지?’ 그렇게 집중하는 상태가 와야만 화두를 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위빠사나 수행의 원리다. 정근하는 자와 관찰하는 자 간의 거리를 두는 것이 관건이다.

4단계. 염불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이제는 바로 그 별개인 듯한 고요한 느낌을 관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뭐꼬’이다. 염불하는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느낌이 쭉 이어지면 그것이 바로 화두다. 의문이 어디서 왔는지를 느껴야 한다. 관찰하는 대상과 관찰하는 주체의 구분이 허물어지고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만 남는다. 망상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 말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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