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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와 팔정도

불교에서는 행복을 세 가지로 정의한다. 첫 번째는 금생의 행복이고 두 번째는 내생의 행복이며 세 번째는 궁극의 행복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 해탈, 열반, 성불 등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 ‘궁극적인 행복’을 얻기 위하여 보시와 지계를 실천하고 발원한다. 궁극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순차적으로 감각적인 욕망을 알고, 이 욕망을 일으키는 오염원에 대하여 이해하며, 이러한 욕망에서 벗어나는 출리의 공덕에 공감한다. 열반과 해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념적인 존재를 해체하여 법의 관점으로 환원하여 보아야 하는데 그 구체적인 방법이 바로 사성제를 통찰하고 팔정도를 완성하는 것이다.

사성제는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 등 ‘고집멸도’의 네 가지 고귀한 진리이다. 먼저 고성제는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불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여덟 가지 괴로움을 말한다. 생로병사의 네 가지 괴로움은 널리 알려져 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이다. 여기에 더하여 좋아하는 것과 이별하는 괴로움,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괴로움, 원하나 얻지 못하는 괴로움, 오온으로 이루어진 ‘나’라는 존재는 무상한 것이지만 이러한 오온에 집착하는 데에서 오는 괴로움 등 네 가지 괴로움이 더 존재한다.

괴로움을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면 고고성, 괴고성, 행고성으로 나눈다. 고고성(苦苦性)이란 고통에서 오는 슬픔, 걱정,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괴로움을 말한다. 괴고성(壞苦性)은 무너지는 괴로움이다. 좋아하는 상태가 변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결국 변하고 마는 데에 따르는 고통이다. 행고성(行苦性)은 오온이 형성되는 괴로움이다. 우리는 조건에 따라 일어나고 무너지는 오온을 나, 너와 같은 것으로 개념화시킨다. 오온 자체는 단지 조건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을 ‘나’라고 집착하면서 따르는 괴로움인 것이다.

집성제는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고귀한 진리이다. 괴로움이 생기는 것은 갈망(갈애) 때문이다. 집착하는 것이 고통의 원인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갈애는 감각적 욕망에 의한 갈애가 있고 존재에 대한 갈애가 있다. 존재에 대한 갈애를 다시 한 번 구분하자면 욕계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세상에 대한 갈망이 있고, 천상의 색계존재에 대한 갈망, 무색계 존재에 대한 갈망, 비존재에 대한 갈애가 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이 접촉하는 데에서 식(識)이 일어나며 이것이 갈애가 된다. 식이 일어나면서 여러 가지 생각과 망상들이 일어나며, 나와 세계로 구분 짓고 존재화하는 과정에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느낌이 든다. 이를 다시 이름 짓고 개념화하며 의도를 일으키고, 사랑하고 갈애하며 마음이 향하고 머물며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멸성제는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고귀한 진리이다. 괴로움의 소멸이란 탐욕을 버림으로써 갈망을 남김없이 소멸하는 것이다. 갈애의 파기가 즉 해탈이며 무집착이고,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이라 한다. 갈애와 갈망이 일어나는 육촉을 대상화하거나 존재화하지 않고, 이것이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임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괴로움의 소멸인 것이다.

도성제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로, 중도 혹은 팔정도와 같은 말이다. 감각적 욕락의 생활에 빠져있는 사람은 속되고 고귀하지 않고 유익함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다. 결과 없는 고행을 일삼는 사람 역시 고통스럽고 고귀하지 않고 유익함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 두 가지 극단을 모두 버리는 것이 중도이다. 부처님은 평온에 이르게 하고 뛰어난 앎을 얻게 하며 깨달음을 이루게 하고 열반을 얻게 하는 중도를 발견했다. 중도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인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이다.

괴로움을 소멸케 하는 팔정도란 무엇인가?

①정견(正見)은 바른 이해이다. 사성제에 대하여 알고, 선과 불선에 대하여 알며, 법의 세 가지 특성(오온의 무상, 고, 무아)에 대해 아는 것이다. ②정사유(正思惟)는 바른 사유이다. 감각적 욕망이 없는 생각과 나쁜 의도가 없는 사유, 남을 해치려는 의도가 없는 생각을 말한다. ③정어(正語)는 바른 언어이다. 거짓말(망어)와 이간질(양설), 거친 말(악구), 쓸 데 없는 하나마나한말(기어)를 삼가는 것이다. ④정업(正業)은 바른 행위로써 살생하지 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욕심내어 취하지 않는 것이다. ⑤정명(正命)은 바른 생계이다. 사기나 배신, 점치는 일이나 속임수, 예언, 고리대금업, 무기, 살아있는 동물고기나 술이나 독극물의 상거래를 직업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⑥정정진(正精進)은 바른 노력으로, 막으려는 노력과 끊어내려는 노력을 말한다. 막으려는 노력은 감각기관을 제어하며 불선법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끊어내려는 노력은 이미 생긴 불선법을 버리고 없애며 제거하려는 노력이다. ⑦정념(正念)은 바른 마음챙김이다. 몸을 거듭하여 관찰하는 수행과 함께 분명한 앎을 지니고 탐착심을 일으키는 마음을 제어한다. ⑧정정(正定)은 바른 선정이다. 집중 수행을 말하는데, 호흡과 행주좌와, 어묵동정, 착의끽반, 대소변리 가운데에서도 항상 분명한 앎을 지니는 것으로 이러한 마음챙김은 현상들에 대해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팔정도는 계정혜 삼학을 닦는 지침이며, 중도를 실현하여 도성제 즉 괴로움을 소멸하는 방법론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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