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신행생활특집

나한과 증심사 오백전

증심사에서는 매년 늦가을이 되면 오백전에 모셔진 석가모니불, 십대제자, 십육성중, 오백나한님께 정성껏 공양을 올리는 ‘오백나한대재’ 를 봉행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나한사상과 증심사 오백전에 담겨진 이야기를 정리하였다.

나한–성聖과 속俗을 잇는 영원한 성자

나한은 아라한의 준말이다. 붓다의 제자 중 최고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가 아라한이다. 대승불교에서 아라한은 자리와 이타까지 추구하는 존재, 나한이 된다. 미래불인 미륵이 올 때까지 불법을 보호하며, 세계에 이로움을 주는 신앙의 대상이 됐다.

부처님 이전부터 인도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이들을 아라한이고 했다. 붓다의 제자들 가운데 이들이 도달하는 경지를 말하는 사향사과, 즉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가운데 최고 경지이면서 최후 단계가 아라한이다.

즉, 아라한은 불교 최초의 아라한이었던 붓다를 표준으로 삼아 수행해온 붓다의 제자들 가운데 최고 수준의 수행자로 더는 배우고 수행 할 것이 없는 존재이면서 윤회에서 완전히 해방된 존재이기도 하며, 그 이상의 단계가 없으므로 당시 깨달음의 최상위에 있었던 붓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상가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초기불교에서 아라한은 수행자로서 최고의 단계를 의미한다. 이들은 중생교화를 위한설법의 의무 또한 당연히 부여된 승속을 막론한 최고의 지도자였다고 할 수 있으며, 석존 입멸 후에는 세간의 실질적 지도자이면서 승단의 리더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붓다로부터 유래한 이후 수행자가 아라한과를 증득했을 때 자신이 스스로 송출하는 게송>
나의 생은 이미 다했고 我生已盡
청정행도 이미 이루었고 梵行已立
해야 할 바도 이미 다 하였으므로 所作已辯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 不受後有

성자에서 보살로 편입된 아라한

초기불교에서 아라한은 깨달음을 성취한 자로 일체 번뇌를 끊어 고가 다한 경지를 성취하여 더는 생사윤회의 세계에 나지 않는 최고 단계의 수행자를 가리켰다. 그런데 대승불교는 성자 아라한의 지위를 보살십지 등의 계위 안으로 편입한다. 그러면서 각종 경전이나 의례 의식에서 제대아라한을 공양한다.

초기불교의 아라한은 나한사지라는 수승한 깨달음을 증득해 도피안을 이룬 최고의 성자이다. 붓다 또한 최고의 아라한으로서, 그의 제자들은 붓다를 롤모델로 삼아 범행을 계율과 같이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승불교에서 아라한은 붓다와 미래불 사이인 현세에 머물면서 성과 속을 이어주는 우리 중생의 영원한 성자이다.

증심사 오백전

나한님, 대들보에 앉으셨네!

증심사 오백나한은 오백전 건물과 함께 1443년 김방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1 609년에 다시 지어졌다. 최완수 선생은 그의 책에서 만들어진 기법이 영조 임금(재위 1724~1776) 때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바 있다. 어떻든 지금 오백전과 오백나한상은 조선 후기의 것임은 분명하다.

다행인 것은 경내 대부분의 건물이 1951년 4월 한국전쟁 때 불타버렸으나 오백전만은 다행히 주민들의 도움으로 화마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나한을 모신 전각의 중앙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양 옆으로 아난과 가섭 존자가 16명의 다른 제자들과 함께 나머지 나한들보다 크게 조성되어 있다. 증심사 오백나한은 모두 흙으로 빚은 것들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좁은 공간에 500명의 나한을 모시다 보니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불단을 ‘ㄷ자’ 형으로 배치하였다. 대웅전 같은 화려한 닫집도 없다.

그저 비어 있는 공간을 찾아 안치하다 보니 대들보에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은 나한도 있다. 그들의 표정만큼이나 재미있는 풍경이다. 이곳에선 전각이 전하는 엄숙함에서 자유로워도 될 성 싶다. 실없이 웃어도 함께 너털웃음 터뜨리며 따라 웃어줄 것 같은, 할아버지 같은 나한님들 집이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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