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절따라

고창 선운사에서 질마재까지

020년 11월 무주 답사를 마지막으로 중단된 길따라절따라가 1년 만에 가을 답사를 다녀왔다. 30명이 신청해 고창 도솔암, 선운사, 서정주 생가, 무장읍성을 답사했다. 모처럼 만의 답사로 모두가 즐겁게 가을을 만끽하고 돌아왔다. ★ 방역수칙을 지키며 다녀왔습니다.

장사송과 진흥굴 <1코스>

도솔암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600살 먹은 소나무가 우뚝 서있다. 이름은 도솔암 장사송. 이곳의 옛 이름이 장사현이고, 장사현에 있는 잘생긴 소나무라 해서 장사송이 되었다고 한다. 장사송 뒤에는 장사녀 이야기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장사송 뒷편으로 진흥굴이 있다. 신라의 진흥왕이 권력을 내려놓고 이곳에 들어가 수행을 했다고 전해지나 사실은 아니다.

고창 도솔암 마애석불과 전설 <2코스>

도솔암 마애석불

도솔암 마애불은 민중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봉받는 미륵불이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 위덕왕이 검단선사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불상을 새기고, 그 위 암벽 꼭대기에 동불암(東佛庵)이란 공중누각을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동학의 3대 지도자 중 한 명인 손화중이 백성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게 되는 사건이 바로 ‘선운사도솔암마애석불비기탈취사건’ 이다. 당시 이 지역 민초들의 신앙의 중심은 도솔암 미륵불이었다.

그런데 불상의 정중앙에 배꼽처럼 보이는 돌출부가 있고, 이곳에 비기가 들어 있으며, 이 비기를 꺼내면 천지가 개벽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손화중이 이 비기를 꺼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들불처럼 번져사람들이 몰려드니 이것이 바로 동학농민전쟁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한다.

고창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 <3코스>

금동지장보살좌상

선운사에는 많은 문화유산이 있지만, 그 중 하나만 꼽아 소개하자면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이 보물은 일제강점기에 도난을 당하게 되는데, 불상의 영험함으로 인해 다시 선운사에 모셔지게 되었다.

소장가들 꿈에 나타나 “나는 본래 고창 도솔산에 있었다. 어서 그곳으로 돌려보내달라” 했지만, 소장가들이 외면하자 병이 들고, 집안에 우환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 후 몇 차례에 걸쳐 옮겨다녔으나 매번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마지막 소장가는 어쩔 수 없이 고창경찰서 연락해 지장보살의 이운을 부탁했다. 그래서 도난 당한지 2년 만인 1938년 11월에 일본 히로시마에서 지장보살상을 모셔왔다. 그 때 찍은 기념사진과 기록이 남아 있다.

금동지장보살좌상 옛사진

미당 서정주 생가와 미당 시문학관 <4코스>

질마재는 미당 서정주의 고향인 선운리의 속칭이다. 고개가 소 안장 같이 얹는 제구 같다 해서 질마재로 불렀다. 미당이 지은 질마재신화는 미당이 고향에서의 유년 체험과 설화를 소재로한 시집인데, 산문적인 성격이 강하다. 미당의 생가는 그가 남긴 시 몇 수를 감상할 수 있게 걸어놓았다.

생가 근처에 있는 미당 시문학관은 현재 코로나로 잠시 문을 닫았지만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개관한 곳으로 서정주의 육필원고와 작품집이 보관 전시되어 있다. 또한 옥상으로 올라가면 주변 마을과 변산반도가 보여 경치를 감상하기 좋다.

무장읍성 < 5코스>

조선전기에 축조된 성곽으로 왜구의 방비를 위해 지은 곳이다. 무장읍성이 복원되기 전에는 읍성 입구에 있는 진문루가 무장초등학교의 교문이기도 했다. 성 안에는 옛 고을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객사와 동헌, 사직단, 성황단 등의 터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 연지가 있는 곳은 2004년 까지 무장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사용되었다가 2009년 발굴조사 후 연못을 복원했다. 복원 후, 물이 고이자 100여년 간 잠들어 있던 연꽃 씨가 발아해서 지금은 연꽃과 수생식물이 살고 있다. 읍성 주위를 둘러보며 읍성 안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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