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뵈러 찾은 증심사에는 반갑게 맞아주는 이가 있어 좋다. 종무소 수화(修華) 보살이다. 친근하기가 국민 여동생 같다. 바지런하기 그지없어 잠시라도 의자에 앉아 있을 때가 없다. 종무소를 찾는 이가 있으면 먼저 물이라도 한잔 건네야 직성이 풀린다. 전화를 받아도 자상하기가 대기업의 비서실 직원 같다.
대부분 보살님이 종무소 문을 열면서 가장 먼저 부르는 이름도 ‘수화야~’다. 노보살님들은 ‘애기보살~’이라 하고, 증심사와 인연이 짧은 이들은 ‘아가씨 보살~’이라 부른다. 다양한 애칭만큼 수화 보살은 너나없이 모두가 좋아한다. 이러한 수화 보살의 귀염은 어려서부터 받아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 따라 동네에 있는 절에 다녔습니다. 스님이 절은 절하는 곳이라며 절을 많이 하라고 하셨어요. 학생회 때도 주말마다 1080배를 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절에 가면 절을 하고 와야 절에 다녀온 것 같습니다.”
절 잘하는 어린이였으니 절에서 신도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그렇게 보살님들의 이쁨을 받으며 초,중,고 불교학생회를 다녔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초파일과 백중, 동지 때면 어머니와 함께 증심사를 찾곤 했다. 휴가 때면 증심사 법당에서 절을 하고 갔다. 그러다 7년 전쯤, 증심사에 기초교리강좌가 열렸다. 교리강좌가 끝나갈 무렵 증심사 템플스테이 팀장 자리가 비게 됐다. 교리강좌 수강생 가운데 가장 어렸던 수화 보살에게 팀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렇게 증심사 신도이면서 종무소 직원으로 인연이 맺어졌다.
“템플스테이 실무자는 몸이 고된 편입니다. 템플스테이 참가자와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해야 하거든요. 여기에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방사 청소, 빨래까지 혼자서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몸은 힘들어도 그때가 행복했습니다. 항상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수화 보살의 성실함과 부지런으로 변화가 생겼다. 증심사 템플스테이가 2014년, 2015년 연이어 우수운영사찰 표창을 받고, 템플 전용관을 3동이나 신축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매일 아침 108 참회로 하루를 시작하는 수화 보살은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절을 한다. 이제 108 참회는 생활 일부분이 되었다.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한다는 것은 곧 나를 바라보는 것이잖아요. 절을 하면서 참회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되돌아보게 돼요. 종무소는 많은 사람이 찾기에 힘든 일도 생기는데 그럴 때는 먼저 나를 바로 보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수화 보살은 “종무소는 사찰의 얼굴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업무상 찾아오는 이에게 항상 웃으며 상냥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다.
종무소에서 일하다 보니 피치 못할 아픔도 받아들여야 한다. 지난해였다. 종무소 문을 열며 항상 반갑게 ‘수화야~’하던 노 보살님을 오랜만에 만났다. 몸이 불편하다는 소식과 함께 절에 오지 못했던 보살님이었다. 그런데 영정이 되어 오셨다. 그날 얼마를 울었는지 모른다. 전화로 안부를 묻지 못한 것이 죄스러웠다. 그제야 할 수 있는 일은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며 극락세계에 나기를 기원할 뿐이었다. 수화 보살은 근래 들어 명상수행을 하면서 노보살님과 소외된 신도가 없는지 더욱 마음이 간다.
“명상을 더 공부해 명상 지도자가 되고 싶어요. 명상은 내면을 깊이 바라보고 순수한 영혼을 찾아가는 수행이잖아요. 명상을 통해 모두가 더불어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