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증심

  • [26-10] 증심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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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10] 참선곡 4

    허튼소리 우스개로 이날 저날 헛보내고 늙는 줄을 망각하니 무슨 공부 하여볼까 죽을 제 고통 중에 후회한들 무엇하리 사지백절(四肢百節) 오려내고 머릿골을 쪼개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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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10] 스님에게 궁금한 단골질문 BEST 5

    스님들은 왜 출가를 하나요? 템플스테이에 오는 많은 참가자들이 스님들이 출가한 이유를 궁금해합니다. 스님이라고 하면 세상과 단절되어서 뼈를 깎는 수행을 하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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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10] 오백전 얼마나 알고 있니?

    매년 10월이면 증심사의 상징인 오백전에서 불보살님과 십대제자, 그리고 오백나한을 모시고 부단한 정진을 약속하는‘증심사 오백나한 대재’가 봉행된다. 올해도 10월 12일부터 11월 1일까지 약 3주간 진행되는 오백대재를 맞아, 우리 절 오백전에 봉안되어 있는 나한님들의 문화유산적 가치를 알아보는 지면을 마련했다.  김태형 송광사 성보박물관 학예실장의 정리로 오백전과 오백나한의 역사를 알아보는 한편, 오백전 건립 설화로 전해내려오는 ‘배고픈 다리’ 이야기를 AI 일러스트로 재현한다. <편집자주> 증심사는 860년에 철감선사 도윤(798~868)스님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이후의 연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고려시대인 1094년(선종 11)에 혜조국사(?~?, 화순 쌍봉사 중창주)가 중창했다고 전한다. 1443년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전라도 관찰사 김방이 증심사를 중창하였는데, 이때 오백나한전을 건립했다고 한다. 이후 정유재란(1597)에 소실되었으나, 1609년 석경 · 수장 · 도광 스님 등이 재건하였다. 그 후에도 중수를 거듭하며 명맥을 이어 왔으나, 1950년 한국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들이 소실되는 참화를 막지 못했다. 다만 오백전 등 몇몇 건물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현재 증심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오백전(오백나한전)’이다.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도 피해를 입지 않아 건물자체가 전남광주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지만, 그 안에 봉안된 불상과 나한상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단순히 사적을 들여다보면 1443년 불상과 나한상이 조성되었다가 1597년 전쟁통에 큰 피해를 입고, 1609년 즈음 중수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오백전 불상과 나한상들에 대한 상세한 조사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매우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2005년 국가유산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한 바, 오백전 불상과 나한상의 규모는 석가여래 본존상 1구, 십대 제자상 10구, 16나한상 16구, 사자(使者)상 2구, 인왕상 2구, 오백나한상 469구 등 모두 500구로 확인된다.[i] 각 불상의 크기는 본존불 높이 125㎝에 무릎 폭 90㎝, 아난과 가섭존자 높이 127㎝, 10대 제자와 16나한 높이 약 100㎝내외, 오백나한 높이 약 40㎝ 내외, 사자와 인왕상 높이 약 150㎝ 내외이다. 각 불상을 조성한 재료는 다음과 같다. 본존인 석가여래는 나무로 만들었고, 10대 제자와 16나한, 사자, 인왕상 등은 나무와 흙으로, 500나한은 흙으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아난과 가섭을 포함한 16나한과 10대 제자는 목심(木心)을 세우고 그 위에 흙으로 외형을 만든 다음 양손은 나무를 조각하여 부착했다. 본존 곁에 서있는 아난과 가섭을제외한 나머지 존자와 나한은 기암괴석을 나무로 조각한 암좌(岩座)에 위에 좌정해 있다. 불단 전면에 배치된 본존불과 나한상 뒤로는 469구의 나한 좌상이 있는데 나무로 만든 받침대 위에 1구씩 조성돼 법당뒷면을 가득 채웠고 심지어 대들보 위에도 올려져 있다. 다양한 표정과 자세를 한 오백나한은 대부분 ‘민머리’지만일부는 두건과 모자를 쓴 경우도 보인다. 또한 연잎이나 럭비선수들이 머리에 착용하는 헬멧과 같은 모자를 쓴 형태도볼 수 있다. 언제 만들어졌을까? 이들 불상의 제작연대에 대해서는 대부분 조선 후기로 언급되고 있지만, 본존불의 연화대좌와 같이 연꽃잎을 하나씩붙여 만든 형태는 17세기 중반 이전 조성을 추정케 한다.  이와 같은 형태의 연화좌대는 구례 천은사 아미타 삼존불 대좌(1614), 순천 송광사 응진전 본존불 대좌(1624), 고흥 능가사 대웅전 본존불 대좌(1639), 해남 미황사 대웅전 삼불상 대좌(1640년대) 등의 사례와 유사하다. 따라서 오백전 본존불의 제작연대를 가늠할 수 있으며, 이와 함께 10대 제자와 16나한, 오백나한도 17세기 중반 이전에 조성되었을 것으로추정해 본다. 증심사 오백전만의 특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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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10]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라는 생각이 들 때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살다 보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길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 건강했는데 갑자기 큰 병에 걸렸다던가 아무 잘못 없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던가 하는 경우에 한탄 섞인 마음과 함께 드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은 정말 그 이유가 궁금하다기 보다는 그 상황이 납득되지 않고 화가 나는 경우에 생깁니다.  자기계발 장르에서 가장 흔하게 하는 말이 “인생의 조연이 되지 말고 주연이 되어라!”라는 것입니다. 사회가 그것을 조장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라는 생각도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그러나 과연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인지 잘 생각해봅시다. 내가 이 세계의 주인공이라면 모든 것을 마음 대로 할 수 있어야 마땅한데, 세상 일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지는 해를 지지 못하게 한다거나, 대통령을 바꾼다거나, 나에게 일어날 사고를 일어나지 못하게 막을 수가 없습니다. 단지 점심에 뭘 먹을 것인지, 잠을 몇 시에 잘 것인지, 청소를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일상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생활에 익숙하다 보니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내 마음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착각 속에 살다가 예상치 못한 충격이 들어오면 분노하게 됩니다. 내가 주인공인데 나의 통제의 범위를 넘어선 일이 생기니 납득이 되지 않는 겁니다. 이것은 중생이라면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입니다.  서사적인 나와 체화된 나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라고 할 때,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일상이 나를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봤고, 무엇을 들었고,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그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모두 나입니다. 이렇게 기억 속에 항상 주인공이었던 ‘나’를‘서사적인 나’라고 표현합니다.  문제는 서사적인 나는 혼자 있어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빛도 소리도 없는 암흑과 같은 우주 한 공간에 내가 자리하고 있다면 ‘나’라는 개념을 확인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있다’는 생각은 비교에서 나옵니다. 저기에 산이 있고 여기에 물이 있고 옆에 다른 사람이 있어야, 그것과 대비되는 ‘나’라는 게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 이것을 ‘체화된 나’라고 이야기합니다.  기억 속의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어마어마한 스토리들, 즉 서사적인 나와 지금 현실 속에 있는 체화된 나를 합쳐서 ‘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머릿속에 각인된 내가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충격에 의해서 그 생각이 흔들리게 되면 그 상황을 용납할 수없고, 용납할 수 없으니 분노가 솟아나옵니다. 그런데 대책이 없습니다.  결국 근본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습니다.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있지도 않은 내가 있다는 뿌리 깊은 착각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충격적인 일’이나 ‘납득이 안 되는 일’이지만 부처님의 인연법을 놓고 보면 그야말로 얽히고 설킨 인과 연들에 의해서 나타난 현상일 뿐입니다. 나 역시 그 복잡한 인연의 실타래 속의 한 가닥 실일 뿐이지요.  나를 구하는 건 오직 나의 정진 뿐 연기법을 이야기 할 때 어떤 결과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나 단독의 힘이 아니라 인연, 연연, 차제연, 증상연이라는 네 가지 종류의 연이작동합니다. 인연은 원인에서 결과가 나오는 것, 연연은 감각기관과 지각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 차제연은 앞 찰나의 생각이 다음 찰나의 생각에 영향을 주면서 마치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이어지는 것, 증상연은 씨앗 이외에도 흙과 물과 비료 등 씨앗을 제외한 조건들이 작용하여 싹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일상의 중요한 축이기기는 하지만, 내가 알거나 모르는 다양한 변수들이 함께 작용하여 굴러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러니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사실 잘못된 것이지요. 즉 ‘나’도 하나의 조건이지만 내가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수많은 조건들이 그물처럼 얽히고 설켜 하나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잘못된 견해에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수월하게 벗어나기 위해서는 평소에 마음을 훈련시켜 두어야 합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매일 외운다던가, 천수경을 독송한다던가, 108배를 한다던가, 하다 못해 산책을 하면서 명상하는 시간이라도. 무엇이든 좋습니다. 정진의힘으로 수행에 습관을 들여 놓으면 보통 이상의 힘든 일이 닥쳤을 때에도 나 혼자 힘으로 수렁에서 헤어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깨달음을 얻어서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수행은 궁극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힘을 발휘합니다. 인생이 고달플 때 나를 위로해주는 것, 그것은 매일 하는 나의 수행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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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10] 이달의 부처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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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9]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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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9] 참선곡 3

    누군가는 ‘나 같이 나이 먹은 사람이 깨달을 수조차 있겠어?’ 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나라 불교는 1초 만에 깨달을 수 있고 깨달으면 그 즉시 여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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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9] 스님의 하루

    오늘은 스님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여쭙고자 합니다. 일반적인 사회 속 라이프스타일을 떠나 승가공동체 공동의 규범을 따르는 스님들은 그 일과가 사회인들과는 사뭇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일선사찰에서 주지 소임을 보고 있는 스님의 실제 일과가 어떻게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절집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예불하고 공양만 제대로 해도 중노릇 잘 하는 거다.” 먼저 새벽예불을 4시에 시작해서 4시 정도 까지하고요. 그 다음은 사시불공이라고 해서 오전 10시에서 11시 정도까지 합니다. 새벽과 사시예불은 1년 365일 하루도 빠짐 없이 하는 것이고, 그 외에 불공 끝난 뒤에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법회를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기본적인 일정은 점심 전에 끝나고, 오후 시간은 템플스테이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던가 손님을 맞이하는 등 업무를 봅니다. 주지 소임을 보면 기관이나 관련자들과 미팅이나 회의가 있기도 하기 때문에 저녁예불에는 고정적으로 참석할 수가 없고 유동적으로 쓰게 됩니다. 취침은 보통 오후 10시 전후입니다. 언제나 다음 날 새벽예불이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밤 10시 30분이 넘어가면 좀 불안하죠.  네. 방금 말씀하신 스님의 일과가 아마도 불자들이 자주 접하는 형태의 스님의 일과일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일선 사찰 소임을 보시기 전에는강원 학인인 시절이 있었고, 선방에 다니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요. 그 시절의 일과는 어땠습니까? 시골의 큰절은 새벽예불을 3시에 시작해서 5시 넘어서 끝납니다. 이때부터 큰방에 모여 아침 공양 전까지 공부를 합니다.  6시 아침공양 이후 7시부터는 상강례라고 해서 아침 조회를 하고, 수업을 받습니다. 10시에 사시불공에 들어가고 11시에는 점심공양을 합니다. 공양 이후 오후시간에는 정해진 일정이 없지만 그때그때 울력을 하거나 특강을 하거나 개인 공부를 합니다. 저녁 5시에는 저녁 공양, 6시에는 저녁예불, 9시 취침으로 이어지죠. 이 일과는 한 25년 전 제가 강원 학인이던 시절의 일과입니다.  선방에 안거를 들어간 스님들의 일과는 어떤가요? 선방에서도 똑같이 새벽 3시에 예불을 하는데 선방 내의 좌선하는 자리에서 죽비를 치고 삼배하는 것으로 갈음합니다. 이때부터 5시까지 좌선을 하고, 6시에 공양하고 나서는 8시부터 10시까지 좌선을 하고, 11시에 점심공양을 하고 2시부터 다시 좌선을 시작합니다. 선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하루에 최소 8시간부터 보통 10시간, 많으면 10시간 참선을 합니다. 가행정진이라 하여 16시간참선을 하기도 하고요.  하루에 8~12시간 참선을 하는 선방의 생활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 일은 스님이 된 누구나 겪어가는 시간이고, 한편으로는 그러한수행을 하기 위해서 출가를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스님은 스님의 일과가 이렇게 될 줄 알고 출가하셨나요? (웃음) 당연히 몰랐죠. (웃음) 그러나 사람은 또 적응의 동물이라 하지 않습니까. 들어와서 살다 보니까 적응이 되고, 적응하고 사는 거지요. 선방에서 하루에 10시간 이상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는 것이 사실 정상적인 라이프사이클은 아니거든요. 그러나 스스로 몸 관리를잘 하면, 자연히 적응이 되고 앉는 데에 힘든 건 없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니까 먹는 양을 조절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합니다.  절집의 생활, 강원이나 선방 생활이 힘든 것이 그 순간의 육체적인 강도가 세서 그렇다기 보다는 똑같은 일을 몇 년, 몇 달, 몇 년간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 해야 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을 스스로 어떻게 잘 소화해내느냐가 관건이죠. 강원 같은 경우에는 군대랑 비슷하게 윗반이 되면 아무래도 여유가 좀 생기니까 처음 2년 정도 고생하면 이후부터는 편해지는 느낌이 있고요. 선방은 세달 결제 기간 동안 고생하고 해제하면 세 달 쉬는 사이클이 있으니까 버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선방생활을 1년 내내 하라고 하면어렵겠지요? 물론 무문관 같은 경우처럼 쭉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쉬운 게 아니죠. 일상생활을 하는 재가자들이 스님들의 생활을 체험하고 싶다면 방법이 있을까요? 흔히 접하는 템플스테이는 사찰의 분위기나 문화를 경험해보는 것이고, 스님 생활이나 대중생활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단기출가 프로그램이나 큰절의 전통적인 수련법회에 참가할 수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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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9] 지장전의 모든 것

    지장보살은 “지옥에 있는 단 한 명의 중생을 구제할 때까지, 지옥 중생 모두가 극락왕생할 때까지 결코 지옥을떠나지 않겠다”는 대원을 세운 보살님이다. 『지장보살본원경』에 명시된 그의 핵심적 정체성은 위대한 서원, 즉’대원(大願)’에 있다. “지옥이 비지 않으면 맹세코 성불하지 않겠으며, 중생을 모두 구제한 뒤에야 깨달음을 얻으리라.”지장보살은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는 충분한 공덕과 지혜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성불을 미루고 지옥의 문앞을 지키고 있는 대자비심의 상징이다. 개인의 해탈에 머물지 않고, 중생의 고통의 곁에 서있는 대승불교 자비 사상의 극치다.  지장전에서 본존 지장보살을 좌우로 협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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