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증심

  • [26-03] 포커스: “금·토·일 주말엔 증심사로!” 

    병오년의 시작을 알리는 설 명절이 지나가고 학교, 직장, 가정 등의 일상생활이 새로운 궤도에 들어섰다. 올해는 증심사 신행생활에 대해서도 새로운 궤적을 만들어 가보면 어떨까? 정초기도, 부처님오신날, 백중,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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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3] 보왕삼매론 3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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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3] 스님들은 왜 출가를 할까?

    Screenshot 템플스테이로 절에 온 참가자들이 스님과 차를 마시면서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있다면 “스님은 왜 출가를 하셨나요?” 라는 질문일 것 같습니다. 스님은 왜 출가를 하셨나요?  사람들이 스님들이 왜 출가를 했는지 궁금해 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상과 단절되어서 득도하기 위해 수행하는스님들의 ‘이미지’ 바탕 위에서 질문을 던지는 것 같고요. 두 번째는 출가를 하지 않고도 사회에서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머리를깎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깔려 있습니다.  출가 수행자 개개인의 사정에 대한보다는 그 질문의 숨은 뜻을 헤아려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스님들에 대한 사회적인 이미지는 시대에 따라서, 나라에 따라서 다릅니다. 예를 들어 부처님 당시인 2500년 쯤 전 고대인도의 경우에는 카스트 제도 중에서 수행자 계급인 바라문 계급의 인생을 네 단계로 나눴습니다.  1단계는 학습기, 학교를 다니면서 경전 공부를 하고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시기입니다.  2단계는 가주기로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한 가족을 책임지는 시기입니다. 이렇게 가장의 의무를 다 한 다음에는 3단계 임서기로 접어듭니다. 숲속에 들어가서 수행을 하는 시기입니다. 4단계는 유행기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 수행을 한 다음에는 한 군데 머물지 않고 정처 없이 떠도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출가라는 개념은 가주기에서 임서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이뤄지며, 고대 인도에서 출가는 불교만의 문화 전통이 아니라 당대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흐름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적 흐름에서는, 또 오늘날 현대사회에서는 출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요? 고려시대는 불교 국가였기 때문에 출가가 비일상적인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조선시대는 불교를 배척하던 시대였으나 출가에 대한 이미지는 사뭇 달랐습니다. 절집에서 내려오는 속담 중에 ‘고을 원님 세 사람이 굶어 죽어야 스님 한 명이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반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스님이나 사찰이 상당히 풍족한 생활을 한다고 인식했습니다. 천재지변으로 먹고 살기가 힘들 때에는 입을 하나라도줄이기 위해서 아이를 절로 보내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역시 절에 가면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면서 전통문화나 생활 풍속이 단절되었습니다. 그 뒤에는 전혀 생소한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우리나라의 문화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수의 엘리트 즉 정치가, 군인, 경제 관료, 학계 교수 중심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온 측면이 있습니다.  불교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불교가 약화되고 정체되었다가 조선 말 경허스님이 선종을중심으로 한국 불교를 다시 중흥시킵니다. 그 뒤로 효봉스님, 성철스님, 서옹스님과 같은 일반인들도 알고 있는 스님들이 등장합니다. 누구나 ‘큰스님’, ‘선지식’이라고 하는 유명한 스님들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스님들은 정말 수행을 열심히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대중적으로상당한 인지도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스님들을 말하자면 엘리트 수행자라고 칭할 수 있을 겁니다. 속세와 인연을 끊고 각고의 노력과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자로서의 이미지가 한동안 각인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우리나라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온 엘리트 집단이 기득권 집단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때로는이들이 적폐 집단이 되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소수 엘리트가 아닌 대중들이 주도하는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전처럼 종교가 이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종교가 없는 무교가 우리나라 인구의 60%를 차지하고, 또한 스스로 불자라고 말하는 사람은16%에 불과합니다. 이는 사회가 풍요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풍요로워진 세상에서 굳이 출가를 하거나 승가 집단에 들어가지 않고도사회에서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어느 정도 마련되었습니다.  엘리트 중에서 대중의 사회로 전환하면서 다시 한 번 출가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겠군요? 그렇습니다. 과거 사회에서는 수행에 전념하면 경제생활을 못했기 때문에 양자택일로 출가를 선택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니 수행을 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시대, 종교가 과거처럼 권위를 가지지 못하는 시대의 사람들이 수행자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바뀌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물론 스님들 개개인을 놓고 보면 출가의 이유가 제각각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개인적 출가 사유보다 중요한 것은 출가에 대한 시대적 이미지가 달라졌음을 아는 데에 있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출가에 대한 어떤 고정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염두에 두고 출가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수행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직업으로서의 성직자가 된다는 마음으로 출가를 바라보는 것이 우리 시대에 맞는 시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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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3] 깨달음과 열반

    Screenshot 불자와 불자 아닌 사람  불자와 불자 아닌 사람을 무엇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요? 불자(佛子)는 부처님의 제자라는 뜻인데, 불자와 불자 아닌 사람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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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3] 이달의 부처님 말씀

    Screenshot 한 때 세존께서는 싸밧티 시에 계시었다.  그때 꼬쌀라 국의 빠세나디 왕이 세존께 찾아와 인사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빠세나디] “세존이시여, 저는 말리까 왕비와 함께 높은 누각에서 왕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리까여, 그대에게는 그대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다른 사람이 있소?’  이렇게 물었을 때 왕비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시여, 나에게는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대왕에게는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왕비에게 ‘말리까여, 나에게도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다른 사람은 없소.’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그 뜻을 아시고 이와 같이 읊으셨다. [세존] “마음이 어느 곳으로 돌아다녀도 자기보다 더 사랑스러운 남을 찾지 못하듯,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가 사랑스러우니 자신을 위해 남을 해쳐서는 안 되리.” 쌍윳따니까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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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2]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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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2] 이달의 포커스: 2025 결산

    1.   신도 현황 총 11,184 세대활동세대 3,608 세대, 전년대비 2.24% 증가 신규 세대 602 세대, 전년대비 4.9% 감소  신도 현황의 전반적인 수치는 활동세대 숫자를 제외하고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증심사 신규 세대는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2019년부터 증가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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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2] 이달의 법문: 올바른 삶의 기준

    나, 제대로 살고 있나? 살다보면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건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그럭저럭 남부끄럽지 않게 살아온 것 같은데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인생을 잘 살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요? 기준이 있다면 답이 나올것입니다. 오늘은 인생을 잘 살고 있는지, 그 기준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며칠 전에 가벼운 산행을 했습니다. 무등산 봉황대에서 토끼등으로, 토끼등에서 바람재로, 바람재에서 넛재까지 간 후에원효사로 하산했습니다. 출발할 때는 가벼운 산책으로 생각하고 나선 길입니다. 바람재에서 지산유원지 방향으로 내려오다가 증심사 버스 종점으로 내려오려고 했는데 졸지에 원효사까지 가버린 것입니다. 돌아와 곰곰이 생각을 해봤습니다. 왜내가 의도한 바대로 가지 않고 잘못된 목적지에 다다랐던 것일까?  돌이켜 생각하니 완전히 잘못된 목적지에 당도하기까지 여러 번의 신호가 있었습니다. 뭔가 이상하게 산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고, 원효분소 방향이라는 표지판을 봤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걸어가던 관성대로 걸은 것입니다.  내가 길을 잃은 것은 첫째, 내가 잘못하고 가고 있는 것을 스스로 몰랐고, 둘째, 바른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고, 셋째, 산책 이후에 꼭해야만 하는 중요한 계획이나 일정이 없어 길을 찾아야만 한다는 절실함이 없었고, 넷째, 수시로 나의 행동반경과 위치를 확인하는 습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산책처럼 한 번의 경험으로 두 번째 기회에 다시 잘 가볼 수 있는 문제라면 모르겠지만, 길을 잃은것이 나에게 주어진 오직 한 번의 기회, 딱 한 번만 살아볼 수 있는 인생의 문제라면 달리 생각해야 합니다.  올바른 인생을 사는 세 가지 기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행복하고 싶다는 것이 단 하나의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이자 이유입니다. 살아가는 목적, 삶의 원칙, 살아가는 자세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인생길에 대한 정답은 이미 나와 있고, 부처님이라는 안내자도 우리는 이미 알고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당신이 가르친 대로 인생을 살면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불교적으로는 깨달음이며열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서두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수있는 기준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스승이 있는가를 스스로 자문해보십시오. 저에게는 그 스승이 부처님이고 여러분에게는 다른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자문했을 때 ‘없다’고 한다면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해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 스승에 대한 믿음과 스승이 제시한 길에 대한 절실함입니다. 내 앞에 부처님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이 제시하는 그 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기 위해서는 확고하게 올바른 길로 가고자 하는 절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내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입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게 원효사로 간 것은 내게 주어진 신호를 무시 혹은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지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주변에서 보내오는 경고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성찰이 일상화되어 있어야 합니다.  정리하자면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스승이 있는가? 스승이 제시하는 길에 대한 확고한 믿음 혹은 그 길을 가야만 하는 절실함이 있는가? 자기성찰(수행)이 나에게 일상화되어 있는가? 이 세 가지 기준에 비추어봤을 때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면지금 당장은 만족스럽지 못할지라도 방향은 올바르게 가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세 가지 기준에 한 가지라도 결격사유가 있다면 방향 자체가 잘못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살다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사는 게 뭔가?’,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라는 질문이 떠오른다면, 오늘 이야기한 세 가지기준을 스스로에게 세워보기 바랍니다. 그렇게 여러분이 행복의 길로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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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2] 스님과 차 한잔: 거친 사회생활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방법

    Q.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장애와 예기치 않은 난관을 맞딱뜨리게 됩니다. 스님에게 거친 사회생활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방법을 여쭙니다. 먼저 만났을 때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급적 멀리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는 상황들이 발생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불교 수행의 목표는 생각의 감옥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나쁜사람’이라는 생각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흔한 생각의 감옥 중 하나입니다. 그러한 생각이 나의 행동과 감정에 영향을 주고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게됩니다.  이럴 때는 생각의 감옥을 깨뜨리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저 사람과 내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설정해보세요. 그리고 카페에서 옆 테이블 사람을 관찰하듯이 그 사람을 관찰해보십시오. 감정을 싣지 않고 그 사람의 행동 자체를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는 연습을 하면 자기 안의 감정이 조금씩 정리될 것입니다.  너무 예민한 성격입니다. 잠자기 전에는 과거의 일을 끊임없이 반추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잠들수가 없어서 고통스럽습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속성이자 삶의 원동력입니다. 이를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해서 억누르려고 하지 마세요.  ‘나는 예민하다’고 느끼는 것도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예민하다는 말은 남들보다 더 자기 자신을 섬세하고 또렷하게 들여다볼 수있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예민함에서 오는 고통이 현실적인 문제일 텐데요, 수행을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 이러한 고통을 조율해 나가면 오히려 남들보다 좋은 조건에서 마음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Q.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 모두가 최선을 다해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출발하지는 않습니다. 환경과 상황 등 나보다 조건이 좋아 보이는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에서 자괴감이 옵니다.  A. 먼저 비교하는 습관을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인생은 각자가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1인칭 시점의 다큐멘터리입니다. 비교한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와 나를 하나의 객체로 두고 다른 객체와 저울질하는 것입니다. 1인칭 다큐멘터리 감독이 어떻게 카메라와 분리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인생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속성과 어긋나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불만족을 삶의 원동력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자신에 대한 불만족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가면 자기 자신을 갉아먹게 됩니다. 내가 나 자신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에 내 괴로움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고합니다.  모든 사람은 ‘그냥’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이 세상에 던져졌습니다. ‘나는 재벌가에 태어나야지’, ‘나는 헐리우드 배우의 자식으로태어나야지’라고 마음 먹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태어난 이후에 나의 힘과 능력으로 어떤 것을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이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겠다는 것이 아님을 확실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Q. 요즘은 사회적으로 화가 많아진 세상 같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나 역시도 울컥 치미는 화를 다스리기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화를 다스려야 할까요?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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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02] 경전해설: 보왕삼매론 2

    부처님 당시에 한 재가자가 부처님께 “몸이 늙고 병들어서 너무나 괴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답했다.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병들지 않는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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