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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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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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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문화마당
2026 동구청 인성교육 명상교실
8월 무등문화마당 프로그램에는 모두 59명이 참가했다. 요가템플스테이 2회차에 모두 14명, 4차례 원데이클래스에 총 36명이 참석했다. 특히 동구청 보건정책과와 자비신행회, 산수동 꼬두메센터, 그리고 무등문화마당이 공동 추진하는 ‘2026 동구청 인성교육 일환 명상교실’ 시행이 눈에 띈다. 명상교실은 증심사의 동구청 지원사업의 일환이기도 하며, 올해 2회차에 걸쳐 진행한 후 내년도 사업으로의 확장을 도모할예정이다. 이에 8월 27일 꼬두메센터에서 9명의 초등생을 대상으로 차 오감명상, 혜공스님의 자비명상, 싱잉볼 소리명상 등을 50분에 걸쳐진행했다. 10월 22일에는 동 센터에서 암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다라 그림명상과 싱잉볼 소리명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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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3일 유동영 사진전 《무등등(無等等), 빛의 자리》
오랜시간 불교와 절집의 풍경을 담아온 불교전문 사진작가 유동영의 두 번째 사진전 《무등등(無等等), 빛의 자리》가 오는 11월 광주의 불자들을 찾아온다. 무등산의 산자락에서 극락강의 물길까지, 광주의 산천과 풍경에 깃든 불교문화를 사진으로 조명하는 자리다. 불자들에게 유동영 작가의 이름은 생소할지 몰라도 그 작품은 그렇지 않다. 2026년 증심사 달력의 성보들이 그가 찍은 것이고, 불교전문잡지 월간<불광>이나 조계총림 송광사 사보인 월간<송광사> 등을 통해서도 작품세계를 드러내왔다. 특히 송광사의 내밀한 수행 풍경을 담은작품들은 2018년 송광사성보박물관 특별전 《송광사 속의 송광사 – 송광사의 혼(魂), 송광사의 미(美)》를 통해 선보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명인 ‘무등등(無等等)’은 견줄 이가 없다는 뜻을 지닌 불교적 표현이다. 광주를 굽어보는 무등산의 이름과도 맞닿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는 무등산을 부처의 자비와 가피가 머무는 상징적 공간으로 바라보고, 그 시선을 극락강과 광주 곳곳의 성보로 확장한다. 무등산에서 내려다보는 극락강과 광주의 도시 풍경을 담아내고, 무등산과 극락강이 한 화면에 어우러지는 풍경을 통해 광주 산천의 지리적·상징적관계를 조명한다. 또한 약 30km에 이르는 극락강의 물길을 따라, 극락강의 각 지역에서 무산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아낼 예정이다. 《무등등(無等等), 빛의 자리》는 11월 23일부터 12월 5일까지 광주 은암미술관에서 개최된다. 지역 불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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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심사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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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해설
[26-10] 참선곡 4
허튼소리 우스개로 이날 저날 헛보내고 늙는 줄을 망각하니 무슨 공부 하여볼까 죽을 제 고통 중에 후회한들 무엇하리 사지백절(四肢百節) 오려내고 머릿골을 쪼개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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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절따라
[26-10] 차꽃 피는 계절, 역사의 향기를 따라
하이얀 꽃잎 가운데 노오란 수술. 아담하면서도 소담스러운 차꽃이 피어나는 계절입니다. 무더운 열기가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 찬바람이 불어오는 초가을은 차 향을 따라 남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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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차한잔
[26-10] 스님에게 궁금한 단골질문 BEST 5
스님들은 왜 출가를 하나요? 템플스테이에 오는 많은 참가자들이 스님들이 출가한 이유를 궁금해합니다. 스님이라고 하면 세상과 단절되어서 뼈를 깎는 수행을 하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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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6-10] 오백전 얼마나 알고 있니?
매년 10월이면 증심사의 상징인 오백전에서 불보살님과 십대제자, 그리고 오백나한을 모시고 부단한 정진을 약속하는‘증심사 오백나한 대재’가 봉행된다. 올해도 10월 12일부터 11월 1일까지 약 3주간 진행되는 오백대재를 맞아, 우리 절 오백전에 봉안되어 있는 나한님들의 문화유산적 가치를 알아보는 지면을 마련했다. 김태형 송광사 성보박물관 학예실장의 정리로 오백전과 오백나한의 역사를 알아보는 한편, 오백전 건립 설화로 전해내려오는 ‘배고픈 다리’ 이야기를 AI 일러스트로 재현한다. <편집자주> 증심사는 860년에 철감선사 도윤(798~868)스님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이후의 연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고려시대인 1094년(선종 11)에 혜조국사(?~?, 화순 쌍봉사 중창주)가 중창했다고 전한다. 1443년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전라도 관찰사 김방이 증심사를 중창하였는데, 이때 오백나한전을 건립했다고 한다. 이후 정유재란(1597)에 소실되었으나, 1609년 석경 · 수장 · 도광 스님 등이 재건하였다. 그 후에도 중수를 거듭하며 명맥을 이어 왔으나, 1950년 한국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들이 소실되는 참화를 막지 못했다. 다만 오백전 등 몇몇 건물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현재 증심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오백전(오백나한전)’이다.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도 피해를 입지 않아 건물자체가 전남광주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지만, 그 안에 봉안된 불상과 나한상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단순히 사적을 들여다보면 1443년 불상과 나한상이 조성되었다가 1597년 전쟁통에 큰 피해를 입고, 1609년 즈음 중수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오백전 불상과 나한상들에 대한 상세한 조사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매우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2005년 국가유산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한 바, 오백전 불상과 나한상의 규모는 석가여래 본존상 1구, 십대 제자상 10구, 16나한상 16구, 사자(使者)상 2구, 인왕상 2구, 오백나한상 469구 등 모두 500구로 확인된다.[i] 각 불상의 크기는 본존불 높이 125㎝에 무릎 폭 90㎝, 아난과 가섭존자 높이 127㎝, 10대 제자와 16나한 높이 약 100㎝내외, 오백나한 높이 약 40㎝ 내외, 사자와 인왕상 높이 약 150㎝ 내외이다. 각 불상을 조성한 재료는 다음과 같다. 본존인 석가여래는 나무로 만들었고, 10대 제자와 16나한, 사자, 인왕상 등은 나무와 흙으로, 500나한은 흙으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아난과 가섭을 포함한 16나한과 10대 제자는 목심(木心)을 세우고 그 위에 흙으로 외형을 만든 다음 양손은 나무를 조각하여 부착했다. 본존 곁에 서있는 아난과 가섭을제외한 나머지 존자와 나한은 기암괴석을 나무로 조각한 암좌(岩座)에 위에 좌정해 있다. 불단 전면에 배치된 본존불과 나한상 뒤로는 469구의 나한 좌상이 있는데 나무로 만든 받침대 위에 1구씩 조성돼 법당뒷면을 가득 채웠고 심지어 대들보 위에도 올려져 있다. 다양한 표정과 자세를 한 오백나한은 대부분 ‘민머리’지만일부는 두건과 모자를 쓴 경우도 보인다. 또한 연잎이나 럭비선수들이 머리에 착용하는 헬멧과 같은 모자를 쓴 형태도볼 수 있다. 언제 만들어졌을까? 이들 불상의 제작연대에 대해서는 대부분 조선 후기로 언급되고 있지만, 본존불의 연화대좌와 같이 연꽃잎을 하나씩붙여 만든 형태는 17세기 중반 이전 조성을 추정케 한다. 이와 같은 형태의 연화좌대는 구례 천은사 아미타 삼존불 대좌(1614), 순천 송광사 응진전 본존불 대좌(1624), 고흥 능가사 대웅전 본존불 대좌(1639), 해남 미황사 대웅전 삼불상 대좌(1640년대) 등의 사례와 유사하다. 따라서 오백전 본존불의 제작연대를 가늠할 수 있으며, 이와 함께 10대 제자와 16나한, 오백나한도 17세기 중반 이전에 조성되었을 것으로추정해 본다. 증심사 오백전만의 특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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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법문
[26-10]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라는 생각이 들 때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살다 보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길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평소에 건강했는데 갑자기 큰 병에 걸렸다던가 아무 잘못 없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던가 하는 경우에 한탄 섞인 마음과 함께 드는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은 정말 그 이유가 궁금하다기 보다는 그 상황이 납득되지 않고 화가 나는 경우에 생깁니다. 자기계발 장르에서 가장 흔하게 하는 말이 “인생의 조연이 되지 말고 주연이 되어라!”라는 것입니다. 사회가 그것을 조장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라는 생각도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그러나 과연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인지 잘 생각해봅시다. 내가 이 세계의 주인공이라면 모든 것을 마음 대로 할 수 있어야 마땅한데, 세상 일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지는 해를 지지 못하게 한다거나, 대통령을 바꾼다거나, 나에게 일어날 사고를 일어나지 못하게 막을 수가 없습니다. 단지 점심에 뭘 먹을 것인지, 잠을 몇 시에 잘 것인지, 청소를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일상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는 생활에 익숙하다 보니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내 마음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착각 속에 살다가 예상치 못한 충격이 들어오면 분노하게 됩니다. 내가 주인공인데 나의 통제의 범위를 넘어선 일이 생기니 납득이 되지 않는 겁니다. 이것은 중생이라면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입니다. 서사적인 나와 체화된 나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라고 할 때,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일상이 나를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봤고, 무엇을 들었고,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그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모두 나입니다. 이렇게 기억 속에 항상 주인공이었던 ‘나’를‘서사적인 나’라고 표현합니다. 문제는 서사적인 나는 혼자 있어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빛도 소리도 없는 암흑과 같은 우주 한 공간에 내가 자리하고 있다면 ‘나’라는 개념을 확인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있다’는 생각은 비교에서 나옵니다. 저기에 산이 있고 여기에 물이 있고 옆에 다른 사람이 있어야, 그것과 대비되는 ‘나’라는 게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 이것을 ‘체화된 나’라고 이야기합니다. 기억 속의 나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어마어마한 스토리들, 즉 서사적인 나와 지금 현실 속에 있는 체화된 나를 합쳐서 ‘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머릿속에 각인된 내가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충격에 의해서 그 생각이 흔들리게 되면 그 상황을 용납할 수없고, 용납할 수 없으니 분노가 솟아나옵니다. 그런데 대책이 없습니다. 결국 근본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습니다.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있지도 않은 내가 있다는 뿌리 깊은 착각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충격적인 일’이나 ‘납득이 안 되는 일’이지만 부처님의 인연법을 놓고 보면 그야말로 얽히고 설킨 인과 연들에 의해서 나타난 현상일 뿐입니다. 나 역시 그 복잡한 인연의 실타래 속의 한 가닥 실일 뿐이지요. 나를 구하는 건 오직 나의 정진 뿐 연기법을 이야기 할 때 어떤 결과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나 단독의 힘이 아니라 인연, 연연, 차제연, 증상연이라는 네 가지 종류의 연이작동합니다. 인연은 원인에서 결과가 나오는 것, 연연은 감각기관과 지각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 차제연은 앞 찰나의 생각이 다음 찰나의 생각에 영향을 주면서 마치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이어지는 것, 증상연은 씨앗 이외에도 흙과 물과 비료 등 씨앗을 제외한 조건들이 작용하여 싹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일상의 중요한 축이기기는 하지만, 내가 알거나 모르는 다양한 변수들이 함께 작용하여 굴러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러니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사실 잘못된 것이지요. 즉 ‘나’도 하나의 조건이지만 내가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하는 수많은 조건들이 그물처럼 얽히고 설켜 하나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잘못된 견해에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수월하게 벗어나기 위해서는 평소에 마음을 훈련시켜 두어야 합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매일 외운다던가, 천수경을 독송한다던가, 108배를 한다던가, 하다 못해 산책을 하면서 명상하는 시간이라도. 무엇이든 좋습니다. 정진의힘으로 수행에 습관을 들여 놓으면 보통 이상의 힘든 일이 닥쳤을 때에도 나 혼자 힘으로 수렁에서 헤어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깨달음을 얻어서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지만, 수행은 궁극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힘을 발휘합니다. 인생이 고달플 때 나를 위로해주는 것, 그것은 매일 하는 나의 수행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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