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배우는 불교

오온

모든 생명은 본능적으로 ‘나’라는 존재가 실재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육신과 기억하고 인식하는 마음을 자기 자신으로 삼고 살아가려는 생명들의 의지는 너무도 당연한 자연법칙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나는 실재한다’라는 보편적인 관점에 대해 놀랍게도 강력한 제동을 걸고 있다. 이른바 부처님 말씀 가운데 생명의 구조와 본질을 밝힌 오온설(五蘊設)이 그것을 잘 뒷받침해 주고 있다.

불교에서는 우선 생명의 구조는 다섯 가지가 화합하여 나타난 거짓 존재로 여긴다. 모든 생명들이 자신의 존재를 실제로 믿고 애착하는 것에 대해 “그것은 다섯 가지의 요인들이 서로 만나서 이러한 하나의 현상이지 실제는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그것을 좀 더 부연해서 말하면 중생에게는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이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색(色)·수(受)·상(想)·행(行)·식(𧄹)인 오온이 화합하여 나타난 인연과(因緣果)라는 것이다. 여기서 온(蘊)이란 산스크리트 어 스칸다(skandha)를 번역한 말로 ‘무더기’ ‘덩어리’ ‘쌓임’이라는 말로도 쓰고 있다.

오온을 이루고 있는 것에서 색(色)은 생명들의 육체를 가리킨다. 본래 색이라는 말은 물질의 빛깔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오온설에서는 몸을 가리키는 말로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몸을 이루고 있는 색에는 네 가지 요소가 있는데 지대(地大)·수대(水大)·화대(火大)·풍대(風大)로서 생명의 몸은 다름이 아니라 땅·물·불·바람 등 네 가지가 화합된 존재인 것이다.

다음 오온 중의 나머지 수·상·행·식은 생명들의 마음 작용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고통과 즐거움 그리고 무덤덤함을 느끼는 마음의 작용[受]과 바깥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想], 그리고 받아들인 것들에 대하여 의지를 일으키고 행동하려는 마음의 작용[行], 마지막으로 그렇게 일으킨 모든 마음의 작용들이 모인 의식[識]이 그것이다.

결국 자기라고 하는 것은 외부의 물질이 서로 만나서 이루어진 육체와 역시 바깥 대상들에 의해 만들어진 마음이 합해진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연 작용에 따라 존재하는 것은 참이 아닌 것이다.

『반야심경』의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는 것도 오온은 허깨비, 거짓 현상이라는 뜻으로, 깨달음에서 볼 때 ‘자기라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니다’는 뜻이다. 다만 중생들의 잘못된 가치관 즉 무명으로 인해 자기가 있다고 여기고 몸과 마음에 대한 여러 가지 집착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온에 대한 그릇된 어리석음을 수행으로 깨뜨려 나는 실재한다는 환상과 착각에서 벗어나 ‘무아의 도리’ ‘공의 도리’를 체득하고 일체의 고통을 해결하는 일은 불자의 가장 큰 과제라 하겠다.

<『법수로 배우는 불교』. 이제열 지음. 여시아문>을 참고하였습니다.

Related Article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