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의 증심사 놀이

다정한 불교창작소: 스튜디오 하심

  400여 개 부스가 차려진 2025서울국제불교박람회. 여러 매력과 특색을 지닌 부스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인기 부스들이 있다. 스튜디오 하심도 그 중 하나다. 증심사 주지 중현스님이 부스 안을 둘러본다. 스님은 불교박람회에서 증심사 포교에 도움이 될만한 아이템을 찾고 있는 중이다.

  발랄하고 귀여운 형상의 부처님들이 직조로써 수놓아진 대형 블랭킷, 절방석 위에 놓으면 꼭 어울릴 듯한 패브릭포스터(다포), 12시부터 12시까지가 모두 ‘NOW(지금)’ 뿐인 시계… 이윽고 ‘GOOD FRIENDS(좋은 친구들)’라 적힌 여러 명의 부처님이 그려진 엽서에 시선이 머문다. 

  “스님, 이 엽서는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 선우들을 표현한 거예요.”

  “요즘 사람들이 엽서를 쓰나? 이걸 어디에다 써야 하는 거여?”

  “포스터처럼 눈길 닿는 공간에 붙여두기도 하고요, 작은 액자 안에 넣으면 근사한 작품이 돼요. 가져가시는 분들이 본인의 기도공간에 비치한 인증샷을 많이들 보내주신답니다.”

  “도반이라. 빛고을불교아카데미 졸업 선물로도 좋을 것 같네.”

  샘플로 받은 엽서를 고이 챙기는 스님이다. 

  불교박람회에 참여한 많은 작가들 중 특히 윤진초 작가의 이야기를 격월간<증심>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왁자지껄한 박람회장에서 긴 말 나누지 못하고 헤어진 스튜디오 하심 윤진초 작가와 조용한 공간에서 다시 만났다. 박람회는 행사 기간보다 폐막 후가 더 분주하기에, 증심사로의 초대는 ‘숨 돌린 후’로 기약하고 일대일 영상회의를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불교키즈가 불교작가가 되기까지

  불교박람회가 성황리에 마무리됐고, 스튜디오 하심에도 전년과 전전년에 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것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럴수록 고민이 많아지기도 하죠. 이분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어떤 것을 보여줘야 할 것인가는 작가의 몫이니까요.”

윤진초 작가는 어릴 때부터 신도회장이었던 할머니 손을 잡고 어린이법회에 다녔다. 스님들을 곁에서 보며 자라온 셈. 

“미술을 전공한 후 스님의 권유로 유학을 가기도 했고, 유학생활을 하면서 법문집 일러스트, 포교원 어린이 영어법회 교재 ‘헬로달마스쿨’ 제작에 참여하게 된 것도 불교 인연 덕분이에요.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학교에서 강의 경력을 쌓았어요. 그때는 ‘교수가 되고 싶은 나’라는 게 따로 있었고 불교 일은 그냥 마땅히 주어지면 해야 하는 일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 스스로 분리해놓은 나들이 점차 통합되는 것을 느꼈어요. 불교 안에서 가장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을요. 대각사 정호스님을 통해 불교박람회와 붓다아트페어란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기존의 전통 불교미술인 탱화나 단청도 대단히 훌륭하고 아름다운 형식이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업으로 즐거운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작품은 부처님 가르침을 구체화하는 과정”

예쁘고 귀여워 소장욕구를 자극하는 많은 상품들이 있지만, 스튜디오 하심의 작품에는 명확한 메시지가 담겼다. 집으로 데려가 곁에 두고 보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결국 메시지다. 

“저는 내가 불자로서 우리 집에 놓고 싶은 소품, 실생활에 두고 도반 삼을 수 있는 작품들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제 작품을 두고 단순히 예쁘다, 귀엽다, 힙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쑥스럽고 부끄러워요. 이미지를 즐기는 것을 넘어서 법으로 가는 마음을 일으켰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블랭킷인 ‘be a buddha’ 시리즈의 경우, 작년에는 ‘우리 오늘 부처가 됩시다!’라는 메시지를 담았는데, 실은 부처 아닌 존재가 부처라는 다른 존재로 변화하는 게 아니라 본래부처인 거잖아요. 우리는 모두 깨달음으로 이루어진 존재인데 그걸 모르고 있을 뿐이에요. 그래서 올해는 ‘우리가 원래 부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오늘이기를 바랍니다!’라고 변화했어요.”

윤진초라는 작가명을 내세우지 않고 ‘스튜디오 하심’이라는 공간적 이름을 내세운 것은 더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기존에 했던 작업이나 이미지로 스스로를 규정 짓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해보이고 싶었기 때문. 패브릭 자수, 패브릭 블랭킷, 리소 포스터, 일러스트, 하트쥬얼리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여기에서 나왔다. 

“바늘과 실이 움직이면서 시간을 쌓아나가는 과정이 좋아 무명천 위에 자수를 놓는 ‘투명인간’들을 만들었어요. 바느질을 하는 과정 자체가 수행이고 공부였어요. 작업을 하는 시간이 법문을 가장 많이 듣는 시간이기도 했고요. 패브릭 블랭킷 시리즈는 제가 패브릭이라는 소재를 좋아하기 때문에 만들었어요. 패션전공자인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소재를 고민하곤 하죠. 

  쥬얼리 캐릭터인 ‘사트바’도 제가 착용할 액세서리를 디자인 한 데에서 시작했는데, 해가 갈수록 의미가 달라져요. 사트바는 살아있는 존재에요. 작년보다는 ‘아상 인상 수자상’이라는 생각이 사라졌기에 크기가 조금 줄어들었죠. 붓다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거예요. 제 작품은 내가 공부하고 변화해가는 과정을 담아내는 것이자, 내가 배운 가르침을 구체화하는 과정이에요.“ 

불교는 ‘귀여움’이 아니라 도반을 만나는 장

최근 불교는 ‘힙’으로 난리가 났다. 박람회장은 MZ세대로 와글와글했다. 그 현장에 있던 작가가 해석한 그들의 열망은 어떤 것일까. 

“박람회를 찾은 2030 젊은 세대가 하는 이야기는 ‘불교는 가볍고 자유롭다’는 거예요. 이 말은 스스로 무겁고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다는 말과 같아요. ‘어떤 너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호응하는 거죠. 당장은 이 정도 관심도 괜찮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들의 관심을 불교적 깊이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마음 가볍자고, 귀여운 것을 보고 기분 좋자고 불교를 찾는 게 아니라 공부하고 도반을 만나는 자리로 이끌어야 한다고요.” 

윤진초 작가가 도반과 선우를 강조하는 것은 그가 딱 그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수행의 50%라면 좋은 도반을 만나는 것은 수행의 전부”라고 말한다. 도반이라는 거울이 있으니 어느 순간에도 크게 삐뚤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제가 다니는 절에서는 청년들이 매일 단체톡을 통해 기도를 인증해요. 아침에 절에 가서 기도하면 스님께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주시고 소참법문을 해주세요. 그런 문화 속에서 도반이라는 존재의 이익을 많이 얻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절을 찾을 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그 안에서 저절로 문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많은 도반들이 모이는 것이 곧 문화포교이기도 하죠. 많은 사람들이 절에 갔으면 좋겠어요. 무언가를 ‘해주세요’ 바라면서 가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도반과 ‘찐친(진짜 친구)’이 되어서 여러 향기로운 활동들을 했으면 좋겠어요.”

흔히 하심이라고 하면 ‘나를 낮춘다’, ‘마음을 낮춘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하심은 조금 다른 의미다. 

“저는 ‘항상 공경하는 마음으로 작업하는 스튜디오가 되겠다’는 서원을 이름에 담았어요. 감각이 있는 한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러나 오직 불법승 삼보를 예경하는 수행자의 모습으로 작업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사람들이 나의 작품을 만났을 때 눈이 즐겁고 마음이 즐겁고 오래도록 생각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스튜디오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한 걸음 더 나아갔어요. 이 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의 삶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연결시켜주길 바랍니다. 모두가 해탈했으면 바랍니다.”

불교를 홈그라운드 삼아 자유롭고 의미 있는 작품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불교미술작가이자 이 시대 청년불자의 이야기는 결국 ‘공부’와 ‘도반’으로 귀결된다. 부처님 법으로 가는 길 위에서 예술처럼 아름다운 단어 두 가지를 매만져본다. ‘하심’ ‘하심’… ‘도반’ ‘도반’… 

 

 

*불교박람회에서 만난 크리에이터, 스튜디오 하심 윤진초 작가.

신심 깊은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런던예술대(UAL)에서 학사를 마치고 런던대학 센트럴 세인드 마틴(CSM)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으로, 캠프리지 스쿨 오브 아트에서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각각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고대 예술로부터 받은 영감을 풀어내는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동시에 스튜디오 하심을 통해 불교문화를 예술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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