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의 증심사 놀이

마음라운지 대표 류진아

서울 용산구. 반포대교와 한강과 세빛섬이 내려다보이는 한적한 건물에 명상 책방 ‘마음라운지’가 자리하고 있다. 올해 4월 문을 연 이곳 신상 책방은 ‘온전한 쉼을 위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출발지인 서울은 맑고 목적지인 광주는 비가 내리는 8월의 어느 날 마음라운지 류진아 대표가 무등산 증심사를 찾았다. 

번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호젓한 산사에서 빗소리를 도반 삼아 쉬어가는 하루. 오백전 나한님 한 분 한 분 눈을 맞춰보기도 하고, 비로자나 철불의 얼굴에서는 ‘다른 철불에게서 볼 수 없는 미소’를 발견한다. 대웅전 단청이나 탱화, 벽화 같은 것들의 오묘한 색감, 몸체가 두꺼운 배롱나무, 취백루 앞을 지키는 귀여운 해태 등 절 구석구석을 감상한다. 차실로 자리를 옮기면 빼곡한 책장에 한 번, 고즈넉한 찻자리에 또 한 번 감탄. 그에게 명상을 중심으로 꾸려진 책방 이야기를 청했다. 

명상의 무드를 느끼는 공간

라운지(lounge)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나 만남의 장소를 뜻한다. 주로 공항이나 역, 호텔 등에서 접하게 된다. 류진아 대표의 책방에서는 잠시 쉬어가는 대상을 ‘마음’으로 설정했다. 

“명상을 하면서부터 명상 관련된 책들을 주로 읽게 되었어요. 정말 좋은 책들이 많고 좋은 문구가 많아서 이것들을 큐레이션해서 갖춰놓으면 명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 마음라운지의 기본 방향이에요. 명상책방을 표방하지만 명상 관련 책만 있지는 않고 라이프스타일에 관련한 다양한 책들이 있어요. 반드시 저자가 스님이거나 명상 안내자인 것은 아니고요. 시집, 소설, 그림책 등 보리심을 마음에 지녔을 때 일어나는 삶의 방향이나 지향들이 담긴 책들을 모아두었습니다.”

언젠가 다녀온 마음라운지의 풍경을 떠올리면, 지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템플스테이관 차실 분위기와도 닮았다. 우리 차실에도 불교와 명상, 마음을 관통하는 다양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어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은가. 한적한 곳에 일부러 심심하기 위해 찾아왔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에 익숙한 사람들은 마음이 의탁할 거리를 버릇처럼 찾는다. 류진아 대표는 그 의탁할 것이 기왕이면 명상이면 좋겠다고 여겼다.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명상에 관심은 있는데 실제 명상하러 가지는 않더라고요. 본격적으로 시간을 들이기 전 단계에서 명상을 하면 느낄 수 있는 정서적인 부분이나 분위기를 추측 혹은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마음라운지를 만들었어요. 단지 조용히머물 수 있는 공간이나 손으로 할 수 있는 작업들로 그런 예시를 내보이려고 합니다.”

기획, 행사에서 명상에 다다르기까지 

천주교인인 부모님 밑에서 성장하여 대학시절까지는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기획업에 몸담아 대기업이나 관공서를 대상으로 행사, 이벤트 기획 등의 일을 했다. ‘일 잘 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한 시절을 보내다가는, 30대 중후반 불교철학을 공부하는 차원에서 정토회 불교대학을 찾았다. 불교 인연의 시작이었다. 

불교계 사회적기업이자 MICE 사업체 ㈜마인드디자인과의 인연도 여기에서 시작됐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마인드디자인의 직원 또는 관계자의 형태로 불교박람회, 릴렉스위크, 명상 컨퍼런스 등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의미 있는 일을 열심히 했지만 삐걱거리는 시간이 없을 리 없었다. 

“일과 나를 동일시하며 살아왔는데 일이 잘 안 풀리는 시기가 오니까 ‘일 못하는 나’를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그 시기에 명상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명상이라는 수단을 통해 ‘정상인’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죽을 때까지 명상을 해야겠구나’ 깨닫고 있습니다. 내가 명상을 해서 도움을 받은 것처럼 도움 받은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면서 살고 싶다는 게 삶의 방향이 되었죠.”

수신인이 기다리는 불교적 메시지는 

언론을 떠들썩하게 장식한 불교박람회는 물론 드라마나 예능과 같은 대중매체에서도 사찰 풍경이 심심찮게 노출되는 요즘. 류진아 대표는 젊은 세대의 애환을 보듬을 수 있는 무언가가 불교 안에 있다고 믿는다. 

“요즘 2030세대는 다들 너무 힘든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아요. 최근 3년 불교박람회가 젊은 층의 인기를 얻은 데에는 힙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것이 한몫 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불교가 주는 안정과 위안, 평화 같은 메시지에 반응한 것이라고 봐요. 불교박람회라는 행사에서 나아가 템플스테이는 그런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장이에요. 불교 가르침에 이미 고통에 대한 내용이 다 들어있으니 가지고 있는 것들을 현대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기만 하면 애써 포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류진아 대표는 지난 불교박람회에서 108배를 해보겠다고 신을 벗고 야단법석에 선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 뜨거운 여름에, 그 시끌벅적한 공간에서, 절하는 법도 모르면서, 곁눈질로 옆사람 하는 양을 훔쳐보면서. 서툴게 몸을 굽히는 이들에게 마음라운지는 그것대로, 사찰은 사찰대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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