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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 보왕삼매론 3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으라” 하셨느니라.

수행하는데 마(魔)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모든 마군으로서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공부’는 마음공부를 말한다. 마음공부를 하는데 장애가 있어 피하려고 하면 배움이 넘치게 되는 장애가 따라온다니, 알쏭달쏭하다. 이 구절의 전문을 살펴보자. 

마음공부에 장애가 없으면 배움이 등급을 뛰어 넘게 되고 배움이 등급을 뛰어 넘으면 반드시 얻지 못하고서도 ‘얻었다’고 하게 되느니라이 장애에 뿌리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면 장애가 스스로 고요해져서 장애에 걸릴 것이 없어지나니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되 ‘장애 속을 자유롭게 거닐어라’ 하셨느니라.”

수행이라는 것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나의 수행력을 진일보시키는 것인데, 이를 훅 뛰어넘어버리면 얻지 못하고서도 얻었다고 하게 된다. 이것은 계율에서 말하는 불망어죄에 속한다. 왜 깨달음을 얻었다는 거짓말이 나올까? 깨달음에는 단계가 있는데, 수행의 장애를 피해버리고서 깨달았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니, 일부러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잘 못 알아서 한 거짓말이다. 

보왕삼매론에서 이야기하는 처세의 공식이 있다. 살아가다 보면 여러 부분에서 장애와 마주하는데, 이 장애를 장애라고 생각하고 피하려고 하면 마음의 장애가 생긴다는 것이다. 몸에 병이 생기는 것은 장애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다만 ‘나의 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장애라고, 고통이라고, 피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이전 시간에 했다. 마찬가지로 마음공부 하는 데에도 장애가 따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그 장애에 너무 끌려가거나 억지로 피하려고 하다 보면 앞서 이야기 한 사달이 나게 된다. 

마음공부를 할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 우리가 장애라고 말하는 현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예를 들어 참선을 하려고 앉아있으면 마음속에 오만가지 망상이 생겨난다. 나도 모르게 지난 일들이 떠오르고, 후회되는 일들이 떠오르면 마음이 괴롭다. 미래에 대한 생각들이 일어나면 불안감이 동반된다. 이들 모두가 망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렇게 참선하고 앉아만 있다가 세월이 까무룩 가고 말았는데 어느 세월에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과 ‘이렇게 수행을 한다고 해서 정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스스로 포기하게 되면 이것이 바로 마장이다. 당사자로서는 포기하는 데에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것들은 핑계다. 포기하고 물러서는 마음을 내는 것이 수행의 장애이다. 

여기에 굴하지 않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면 다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참선하려고 앉으면 상기가 되고,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수기를 주기도 한다. 더 수행을 하다 보면 부처님이 겪으셨던 것처럼 마구니들이 나타나서 회유를 하기도 하고, 중생들이 이 깨달음을 함께 알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더 공부를 많이 해서 어느 정도 수행을 성취하면 ‘내가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아상과 유혹이 생기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마음은 반드시 대상과 함께 생겼다 사라지는 것이고, 마음이 한 찰나 생멸하는 것임을 명심하면 망상이나 포기하는 마음이나 후회하는 마음, 유혹에 넘어가는 마음 모두를 마음의 자연스러운 작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수행하는 데 마 없기를 바라지 말라수행하는 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견고해지지 못하고서원이 견고하지 못하면 반드시 증득하지 못하고도 증득했다고 하느니라마가 허망한 것임을 꿰뚫어 보고 마 자체에 뿌리가 없다는 것을 사무쳐 알면 마가 어찌 ‘나’를 괴롭힐 수 있으리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되 모든 마로써 수행을 돕는 벗을 삼이라’ 하셨느니라.”

수행을 하는 데 마장을 피해버리면 서원이 견고해지지 못한다. 마장의 시련을 견디며 서원이 단단해져야 끝까지 수행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온실 속 화초가 노지에 나가면 얼어 죽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흔히 마장이라고 하면 환각이 보이거나 환청이 들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 이런 것들의 근본은 퇴굴심이다. 물러서는 마음으로 유혹에 넘어가거나 포기해버리는 데에서 발생한다. 퇴굴심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내 업을 잘 보고, 내 자신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중생으로 오랫동안 살아온 습관대로 수행을 하니 포기하게 된다. 법정스님은 “수행은 끊임없는 반복이며 수행은 매일매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했다. 익숙한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새로운 나 자신이라는 인식으로 자기를 성찰해야 한다.

두 번째, 우리가 중생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야 한다. 왜 수행을 하는 데 마장이 생기는가? 중생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살이고 부처라면 수행을 할 필요가 없다. 일상의 모든 것이 자비이고 무주상보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언제나 깨달음과 부딪치게 된다.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이 부딪치면 깨닫지 못함이 주저앉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고, 또 다시 시도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오랫동안 반복해야만 수행의 경지에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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