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절따라

[26-01] 왕조에서 민중까지- 공주 갑사, 논산 개태사, 관촉사

한 달에 한 번 증심사 주지 중현스님과 함께 버스 타고 떠나는 불교문화답사 길따라절따라. 9월 14일에는 답사팀 25명과 함께 공주 갑사와논산 개태사, 개촉사를 탐방하고 왔습니다. 갑사는 계룡산 풍수와 조계종 수행 전통이 결합된 사찰로, 특히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 기허당 영규대사와 승병들이 활약한 호국불교의 중심이었습니다. 개태사는 고려 태조왕권과 뗄 수 없는 사찰로 고려 왕조의 정통성과 이념을 담아낸 국가 사찰이었고, 관촉사는 고려 민중이 기대던 미륵 신앙과 구원 신앙을 느낄 수 있는 절이었습니다. 더위 속에 불어온 한 줄기 바람을 더욱달게 느낄 수 있는 답사 여정을 소개합니다.

이 지역에서는 ‘춘마곡 추갑사’라 합니다.  봄에는 마곡사, 가을에는 갑사가 아름답다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아직 가을은 이르고, 여전히 푸르른 진입로를 오르면 부도탑과 갑사사적비, 사천왕문을 지나 대웅전 앞마당에 다다르게 됩니다. 갑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입니다.  420년 아도화상이 창건했다 전합니다. 예로부터 이곳은 계룡갑사(鷄龍甲寺)·갑사(岬寺)·갑사사(甲士寺)·계룡사(鷄龍寺)라고도 불렸습니다.

갑사를 수식하는 계룡산이 특별한 것은 예로부터 국가의 중요한 명상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계룡산은 통일신라시대에는 오악(五嶽) 중 서악(西嶽)으로 제를 올려 왔고, 조선 시대에는 국가에서 중악단(中嶽壇)을 설치하고 산신제를 올릴만큼 영험하게 여겨졌습니다.

갑사에는 한 건의 국보와 여섯 건의 보물이 있습니다. 답사팀은 먼저 보물인 갑사 대웅전을 참배했습니다. 조선 중기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건물입니다.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갑사 동종도 보물입니다. 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기 위해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인데, 석장을 잡고 있는 장신의 지장보살 음각이 인상적입니다. 고려시대 탑이면서 통일신라시대 부도 양식을 겸비한 갑사 부도를 살펴본 후에는 마찬가지로 보물인 갑사 철당간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당간을 지탱하는 두 개의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 있으며 꾸밈이 없는 소박한 모습입니다.

다른 절에 없는 특별한 전각이 갑사에는 있습니다. 표충원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물리치는 데 앞장선 서산대사 휴정·사명대사 유정·기허당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셨습니다. 이밖에도 삼성각, 약사전 석조여래입상, 대적전 목조삼존불 등을 참배하며 발길을 논산으로 돌렸습니다.

고려왕조 개창과 함께… 개태사

들판을 달리던 버스가 멈춰서면 너른 부지에 조금은 적막한 듯한 사찰 개태사가 나타납니다. 현재의 개태사는 개태사지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새로이 조성한 도량이라 고즈넉한 옛맛이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태조가 나라를 연 뒤 창건한 사찰’이라는 역사적 상징성을 곱씹으면 도량의 많은 것들이 허투루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개태사는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뒤 창건한 호국종찰로, 어진전은 태조의 어진을 모시고 국가 대사와 전쟁의 길흉을 점치는 장소였습니다. 고려왕조와의 연관성을 엿볼 수 있는 전각이 바로 어진전입니다. 현재 어진은 개태사에서 자체적으로 그린 영전이나 과거에는 왕건의 옷과 옥 허리띠도 함께 봉안되어 있었다고 전합니다.

극락대보전에는 보물인 개태사 석조여래삼존입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과거 야외에 방치되어있다가 보호각을 조성해 다시 모셨다 합니다. 태조 당시에 만들어진 부처님으로 추정됩니다.  본존불은 짧은 코·인중·미소 띤 입·넓은 뺨 등 나말여초기 특징을 보이고, 좌우의 협시보살은 팔찌와 천 자락의 장식 등에서 화려함과 섬세함을 더합니다.

개태사 석조여래삼존입상 양식은 충청, 개성, 경기도 등으로 확산되었으며 바로 이어서 살펴볼 관촉사 석조보살입상 등 고려시대 조각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고려 민중의 바람을 담은… 관촉사

개태사가 고려 왕조의 역사를 담고 있다면 지근거리에 위치한 관촉사는 고려 민중의 염원을 드러내는 사찰입니다.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거대한 형상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높이 18미터에 이르는 고려 전기의 거대한 미륵불, 은진미륵입니다. 20세기 이전 한반도에는 이 은진미륵보다 큰 불상이 없었습니다.

엄청난 위용에 걸맞게 2018년 국보로 승격된 이 돌부처님은 멀리서 보면 장엄하고, 가까이 서면 놀랍도록 인간적입니다. 과거 ‘못생긴 부처님’으로 놀림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부드럽게 번지는 미소와 단순한 옷 주름, 조금은 투박한 선들이 묘하게 따뜻한 위안을 건넵니다. 오랜 시간 민중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일 것입니다.

은진미륵 앞에 서면 개태사에서 느꼈던 ‘국가’의 힘이 아니라, 민중의 기원과 희망이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전란을 거듭했던 삼국시대. 그리고 고려 초의 혼란 속에서 민중들은 세상을 누군가 바꿔줬으면 하는 희망으로 이 거대한 부처님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중현스님과 함께하는 길따라절따라 불교문화답사는 2025년 12월 부안 내소사, 개암사 답사를 마지막으로 올해의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2026년도에는 따스한 봄날인 4월부터 여정을 시작합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Related Articles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