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량 돌아보기슬기로운 신행생활특집

우리절 벽화_대웅전 내부

그림으로 풀어쓴 부처님과 역대 조사 이야기

불교회화(佛畵)는 불교적인 목적을 지닌 일체의 그림을 말한다. 예배하기 위해 불·보살님을 그린 존상화, 교화하기 위한 갖가지 그림, 또는 사찰을 장엄하기 위한 단청 등으로 분류한다.

대웅전 내부에 조성한 불화는 탱화와 벽화가 있다. 탱화는 벽에 걸 수 있는 그림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는 뒤쪽 벽에 걸린 후불탱화와 칠성탱, 신장탱이 자리한다.

대웅전을 더욱 장엄하기 위해 벽면에 그린 불화를 벽화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신 증심사 대웅전 내부에는 부처님 전생과 현생, 그리고 조사의 설화 등 4장면이 벽면에 그려져 있다.

이 벽화를 통해 대웅전에 들어서는 이들은 누구나 부처님이 전생에 닦은 수행 공덕과 현생에 보여주신 면모를 되새기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가일층 정진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혜가단비도(慧可斷臂圖)

천축국에서 중국으로 간 달마대사가 토굴 속에서 면벽수행을 하며 법을 전할 제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9년 만에 신광이라는 수행자가 달마대사를 찾아와 법을 전수받고자 했다.

눈 내리던 겨울이었다. 토굴 밖에서 법을 구하던 신광이 눈을 맞으며 꼬박 밤을 새웠다. 달마대사가 “얕은 마음으로 큰 지혜를 얻고자 하느냐”고 하자 신광이 법을 구하는 마음을 보이고자 칼로 왼쪽 팔을 잘랐다. 이때 눈 위로 파초잎이 솟아나 팔을 받쳤다. 마침내 달마대사는 신광의 입문을 받아들이고 혜가(慧可)라는 법명을 주었다.

“불법의 지극한 도를 알려주십시오?”

“다른 사람에게서 불법을 구할 수 없다.”

“제 마음이 편안하지 못합니다. 스님께서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마음을 가져오면 그대를 편안하게 해주겠다.”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하겠습니다.”

“내가 이미 그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노라.”

마침내 혜가는 깨달음을 얻어 중국 선종의 제2대 조사가 되었다. 혜가 대사는 34년 동안 법을 설하다가 제자 승찬(僧璨)에게 법을 전했다.

연등부처님과 선혜보살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선혜(수메다)라는 수행자가 있었다.

연등 부처님이 법을 설하신다는 소식에 선혜보살이 꽃 공양 올리기를 서원했다. 마침 우담바라 꽃을 지니고 있던 선녀에게 간청해 훗날 부부인연을 맺기로 하고 꽃 다섯 송이를 얻었다.

꽃 공양을 받은 연등부처님이 법문을 마치고 떠날때 비가 내렸다.

선혜보살은 연등 부처님 발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기위해 진흙위에 머리를 풀고 엎드렸다.

“부처님은 부디 진흙을 밟지 마시고 비구들과 함께 내 등을 밟고 지나가소서. 그것은 내 영원한 이익이 되고 안락이 될 것입니다.”

연등부처님이 선혜보살에게 찬탄하시길,

“착하고 착하다, 너의 심성이 참으로 기특하구나. 사바세계에 성불하여 석가모니라는 부처가 되어 나와같이 삼계 중생을 제도하리라.” 라고 수기를 하셨다.

연등부처님(Deepankara Buddha)은 과거불인 정광여래(錠光如來)이며, 수메다(Sumeda)는 한역으로 선혜(善慧)보살이다. 꽃 다섯 송이를 나눠준 선녀는 부처님이 왕자로 있을 때 아내인 야쇼다라이다. 

뼈 무더기에 예경하는 부처님

부처님은 어느 날 여러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흩어져있는 뼈 한 무더기를 보고 엎드려 정중히 예배하셨다. 이를 본 아난과 대중들이 놀라며 물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삼계의 큰 스승이시며 사생(四生)의 어버이시라, 여러사람들이 귀의하고 공경하옵거늘 어찌하여 이름 모를 뼈 무더기에 절을 하시옵니까.”

“아난아, 저 해골이 전날에 내 부모 형제이다. 이 속에는 나의 옛 아버지의 뼈와 어머니의 뼈가 섞여 있구나.” 

그리고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르길

“이 한 무더기 마른 뼈를 둘로 나누어 보아라. 만일 남자의 뼈라면 무거울 것이며 여인의 뼈라면 검고 가벼우리라.”

“세존이시여 남자는 세상에 있을 때 큰 옷을 입고 띠를 두루고 신을 신고 모자를 쓰고 다니기에 남자인 줄 알며 또한 여인은 생전에 갖은 방법으로 치장하고 다니므로 여인인 줄 알게 되오이다. 그러나 죽은 후의 백골은 남녀가 마찬가지이거늘 어떻게 그것을 구별해서 알아보라 하시옵니까.”

“만일 남자라면 세상에 있을 때에 마소를 부리기도 하고 사람을 부려 크게 고생함이 없이 지내기도 할 뿐 아니라 때때로 가람에서 경을 외우고 법문을 들은 까닭으로 남자의 뼈는 희고 무거울 것이요. 여인은 이 세상에 있을 때 자식을 날 때마다 3말 3되의 피를 흘리고 여덟 섬 네 말의 젖을 먹이는 까닭이며, 수태로부터 생육에 이르기까지 뼈를 깎는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어머님의 은덕을 어떻게 하면 보답할 수 있습니까?”

 이때 설하신 법문이 부모의 열 가지 은혜를 들려주는 <부모은중경>이다.

모래 공양한 소년, 아쇼카 대왕

부처님이 아난 존자와 함께 성 안으로 탁발하러 가시는 길에 소꿉장난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모래와 흙으로 집을 짓고 신발에 모래를 담아 밥이라고 하며 놀고 있었다.

마침 탁발에 나선 부처님이 가까이 오자 아이 하나가 생각했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싶은데 가진 것이 없네…’

이렇게 생각한 아이는 신발에 밥이라며 담아놓은 모래를 들고 동생에게 엎드리게 하여 등위에 올라가 부처님에게 정성스럽게 올렸다.

부처님은 모래 밥을 받으시고는 빙그레 웃으시며 아난에게 건네주셨다.

“이 모래를 가지고 가서 내 방의 허물어진 곳에 바르도록 하여라.”

정사로 돌아온 아난이 방의 허물어진 곳에 바르고 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린 두 아이가 환희심으로 모래를 보시하였으니, 그 공덕으로 다음에는 국왕이 되어 삼보를 받들고 여래를 위하여 팔만사천 보탑을 세울 것이다.”라고 수기하셨다.

모래를 공양한 소년은 훗날 인도 최초로 통일왕국을 세우고 부처님 제자가 된 아쇼카 대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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