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절따라

자연절벽 마애부처님께 감응하다: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무등산을 자주 오르는 광주 사람에게는 큰 바위덩이가 깨져 흩어진 너덜지대가 비교적 익숙합니다. 해남 대흥사가 자리 잡은 두륜산에도 이 같은 너덜바위길이 있습니다. 화강암이 풍화되고 붕괴되어 흩어진 돌무더기 길은 옛적 대흥사에 머물렀던 서산대사와 그 제자들이 묵묵히 오르내렸던 길이었을 것입니다. 숲으로 들어서 그 시절엔 없었을 데크길을 조금 걷다가 보면 크고 묵직한 바위들이 덜컹덜컹 무더기를 이룬 너덜지대가 나타납니다. 숨을 고르고 디딜 곳을 신중하게 살피면서 걸음을 옮깁니다. 이윽고 북미륵암이라는 이정표와 함께 암자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납니다. 

그 유명한 북미륵암 마애부처님이 모셔진 전각인 용화전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서늘한 화강암의 기운이 짧은 산행에 달아오른 열기를 식혀줍니다. 무더운 초여름 햇살이 가져온 더위는 마애부처님을 마주하는 순간 묵직하고도 강렬한 신심으로 전환됩니다.

“북미륵암 부처님 같은 경우엔 몹시 뛰어나서 평가를 하기 힘듭니다. 세심하게 부분부분 잊어버리지 않게 눈에 잘 담아가는 것으로 족합니다. 이런 분들을 만나면 학술적으로 살피는 것보다 마음으로 감응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면 됩니다. 반야심경 독송하겠습니다.”

답사단을 이끄는 증심사 주지 중현스님은 이전의 답사와는 달리 설명을 줄이고 간단한 예불을 집전합니다. 답사단 모두가 한마음으로 가슴 앞에서 두 손을 모읍니다. 

지난 6월 8일 증심사 무등문화마당 길따라절따라 불교문화답사 팀은 광주에서 2시간 여 떨어진 해남 대흥사로 향했습니다. 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는 통일신라에 창건된 천년고찰입니다. 고려시대에 크게 중창되면서 호국불교와 미륵신앙 중심 사찰로 발전됐습니다. 조선 임진왜란 당시 대흥사를 중심으로 서산대사 휴정스님과 의승군이 활동하니, 호국불교의 성지로 위상을 떨쳤습니다. 

대흥사 큰절에는 천불전(보물 제1807호)을 포함하여 역사와 위상을 대변하는 국가유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나같이 의미 있는 것들이지만 결정적으로 답사단의 발길을 이끈 것은 국보 제308호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입니다. 

6월의 길절은 대형 버스가 아닌 승합차로 이동했습니다. 집집마다 자가용을 두고 편안한 이동을 추구하는 시대에 운전석을 포함해 11인의 정원을 꽉 채운 승합차 2대로 이동하기를 고집한 것은 오로지 이 마애부처님을 친견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북미륵암은 1시간여의 산행을 통해서만 갈 수 있는 산중 암자였습니다. 대흥사 일대 정비 및 불사를 진행하면서 그 중턱까지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소식을 입수했습니다. 1시간 산행이 20분으로 단축되는 셈이니 그 길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번 북미륵암 마애부처님 친견은 중현스님의 살뜰한 사전 조율과 답사를 통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마애부처님은 거대한 자연 암벽에 새겨진 10미터 규모의 좌불입니다. 암벽 전체를 몸통으로 삼은 거대불이자 자비로운 미소와 온화한 인상으로 고려시대 불상 특유의 자비와 관용을 느끼게 합니다. 법의는 양 어깨를 덮은 통견식 가사로 표현되었고, 옷주름은 단순화되어 장중한 신체에 비해 소박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본존불의 주위에는 4명의 천녀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예배하거나 꽃을 흩뿌리는 공양천입니다. 중현스님과의 반연으로 이번 답사에서 특별히 해설을 맡아준 대흥사 설각스님의 설명을 상기해봅니다. 

“부처님을 중심으로 오른쪽 아래 보살님은 꽃을 올리고 있고, 왼쪽 아래에서는 향로를 공양올리고 있습니다. 구름과 함께 표현된 위쪽의 두 분 비천상은 미륵하생에 따라 부처님을 따라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본존의 풍채는 고려시대 초기 양식입니다.”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간략한 예불이 끝나면 답사단은 저마다 마애부처님 앞에 참배를 올리기도 하고,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기기도 합니다. 한 시간여의 자율 참배 시간은 고요 속에서, 마애부처님과의 감응 속에서 빠르게 지나갑니다. 

마애불 친견에 앞서 큰절의 여러 전각과 국가유산을 살펴보았습니다. 서산대사 승탑군에서는 여러 기의 부도와 비석, 승탑을 보며 대흥사에서 배출된 걸출한 선대 스님들의 위상을 짚어보았습니다. 해탈문의 문수 보현보살게 인사를 드리고는 수령 500년의 연리근 나무를 지나 대웅보전으로 향합니다. 

고풍스러운 지장전과 응진당을 참배하고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에서 탑돌이를 했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편액을 삼은 무량수각.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침계루 2층에서는 사천왕 도상과 사물을 둘러봅니다. 소 등에 멘 멍에를 닮은 가허루 출입문을 통과하여 천 분의 부처님을 모신 천불전, 현대적 도상으로 눈길을 끄는 관음33응신도가 있는 관음전을 참배하고는 성보박물관을 관람했습니다.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일지암에서 한숨을 돌리고, 산내 암자인 춘장암에서 다디 단 차와 간식으로 휴식시간을 가진 뒤 광주로 돌아옵니다.

자주 들어 이름이 익숙해서, 가까우니 언제든 갈 수 있어서 허투루 넘겨짚은 사찰이나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합니다. 제대로 알고 제대로 살펴보자는 길따라절따라 문화답사는 8월 혹서기 휴식을 거쳐 9월과 10월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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