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백두산 국제인문탐방기
중국 항일유적 인문탐방의 얼굴들
동구 청소년 세계인문지도자 양성사업
2025 백두산 국제인문탐방기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명동촌. 1917년 민족시인 윤동주가 태어난 생가의 툇마루에서 <서시>를 외는 얼굴은 모두 예순여섯 개. 그러나 목소리만은 한 사람의 것인 양 곧고 또랑또랑하다.
광주 동구와 동부교육지원청, (재)보성장학재단, (사)대원장학회, (재)누리문화재단이 공동 주관하는 ‘동구 청소년 세계 인문 지도자 양성위원회(이하 인문지도자양성위)’는 지난 8월 26일부터 30일까지 4박5일의 일정으로 중국 연길과 백두산 일대의 항일 유적지를 탐방하고 왔다. 탐방에는 관내 6개 중학교 재학생 48명과 인솔교사 6명, 양성위 관계자 12명 등 66명이 참여했다.
광주에서 새벽 3시에 출발하여 인천공항으로, 또 인천에서 중국 장춘까지 이동에만 장장 9시간이 소요되는 대장정. 이 일정의 핵심인 백두산 천지 조망은 기상 악화로 무산됐다.
그러나 여행이란 ‘예기치 않은 사건’까지를 소화해내는 일. 일제강점기 전후 항일운동을 중심으로 한 유적지 답사는 미래의 글로벌 리더가 될 청소년들의 인문적 소양을 끌어올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중국인들의 생활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연길과 하얼빈의 ‘핫플레이스’ 거리 체험이나 ‘버드 아이’ 시점으로 백두산 천지와 중국의 주요 명소를 생생하게 둘러보는 5D영상 관람은 중국의 현재를 가늠해보기에 충분했다.
탐방의 면면을 상기한다. 1919년 연변 용정에서 울려퍼졌던 3.13만세운동에서 희생당한 반일의사들의 능에 국화꽃을 올리는 열다섯 중학생들의 숙연한 얼굴. 1920년 무장투쟁의 일환으로 용정 조선은행 헌금수송대를 습격해 군자금을 확보하려 한 15만원 탈취 기념비를 둘러보는 얼굴에는 호기심이 인다. 1909년부터 약 30년간 반일지사와 민중들을 억압한 간도 주재 일본총영사관과 지하 교도소를 둘러보는 얼굴엔 자못 괴로움이 감돌았다.
공간을 옮겨 하얼빈. 아직 일제강점이 공식화 되지 않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일본제국의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역에서 의사의 동상 앞에서 묵념한다. 더 빨라진 열차와 더 바빠진 사람들이 오가는 하얼빈 역에는 바닥의 세모와 네모 타일로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가 섰있던 자리를 표시해놓았지만, 한국의 답사단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표식에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을 목도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대상으로 비인도적인 인체 실험을 자행한 731부대 기념관은 또 어떠한가. 답답함을 토로하는 중학생들이 나이를 열 살, 스무 살쯤 더 먹으면 무언가 달라져 있을까. 그렇게 만드는 것이 ‘인문지도자’로서의 너희의 역할이라고, 이 자리를 만든 어른들은 은근한 바람을 비친다.
2019년 시작된 인문지도자양성위의 국제인문탐방은 ‘인문도시 광주 동구’를 표방하는 임택 동구청장의 지지와 함께 발전하고 있다. 임택 동구청장은 국제인문탐방을 “학교를 벗어나 생생한 현장에서 우리의 자연과 역사를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정의하면서, “글로벌 미래인재 육성을 위한 지원을 지속하겠다”고 전했다.
실제 국제인문탐방은 매년 장소와 형식을 다듬으며 탐방의 질을 높이고 있다. 지난 해 중국 대련을 경유하는 고구려 유적지 탐방에서 올해는 연길을 중심으로 한 항일유적지 탐방으로 변모했다. 훨씬 가깝고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기에 참여 학생들의 관심도와 호응도가 높았다. 탐방 전 일정 인류학자 강주원 박사가 동행하여 ‘키포인트’를 짚어준 것도 탐방의 밀도를 높였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올해 국제인문탐방은 11월 1일 사후 교육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탐방 기간 동안 학교별로 제작한 자체 콘텐츠를 공유하는 자리다. 참여 학생들의 소감 속으로 또 다른 여행을 떠날 차례다.
북한 접경 두만강변 공원
용정 지명 기원지 우물터
용정 일본총영사관 자리
백두산 지질공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