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6-01 포커스] 관습에서 수행으로… 정초기도, 삼재기도, 정월행사

‘풍습’은 특정한 때가 되면 특정한 방식으로 특정한 곳에 가서 무언가를 행위이고 나아가 문화이기도 합니다. 정초에 굳이 절에 가는 것은 ‘스님이 주는 복을 받고 싶다’는 생각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초기도를 해야 올 한해가 별 탈 없이 지나갈 것’이라는 오래된 생각 때문입니다. 문화와 풍습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마음과 생활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정초기도를 하고 삼재기도를 하고 정월천도재를 올리고 정월성지순례에 나섭니다. 이러한 의식들은 꼭 불교적이라기 보다는 농경사회에서 성장하고 발전한 세시풍속에 가깝습니다. 현대와 같이 고도로 자본주의회된 사회에서는 흔적만 겨우 남아있을 뿐이지요. 날짜가 다가오면 으레 하는 세시풍속 같은 정초 행사들에는 본래 어떤 의미가 깃들어 있을까요? 왜 불교에서는 ‘부처님’보다 세시풍속에 가까운 이러한 행사들을 챙기는 것일까요?

붉은 말의 해인 병오년(2026)을 여는 1월의 증심사지 포커스에서는 정초 이모저모를 살펴봅니다.

우리 절 증심사는 음력 1월 3일부터 7일간 정초기도를 봉행합니다. 올해는 2월 19일부터 25일까지가 정초 7일기도 기간입니다. 정초기도라고 하면 칠성기도와 신중기도를 떠올립니다. 칠성기도라 해도 치성광여래를 주인공으로 모시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관례적으로 신중청을 할 때 칠성기도를 하곤 합니다. 2024년에는 제대로 칠성기도를 올리기 위해 사시불공 정근을 칠원성군 정근으로 했고, 축원도 칠성단을 바라보고 했습니다.

 정초 칠성기도는 언제부터 행해졌을까요? 문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까지 정초 음력 7일이 되면 마을에서 칠성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칠성신앙은 우리 선조들의 삶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이 칠월 칠석이었습니다. ‘럭키 세븐’이어서가 아니라, 동양에서는 북두칠성 혹은 칠성님과 연관해서 7을 길한 숫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칠월 칠석은 날짜에 7이 두 개나 들어가니 엄청나게 길한 날이었지요.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아무래도 일 년을 시작하는 정월의 7일이었습니다. 한 해를 열면서 우리 마을과 가족들의 무사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민중에게 가장 친근한 칠성님에게 기도를 올린 것이지요. 이렇게 마을공동체에서 이어져온 풍습이 절 안으로 들어와 오늘날의 정초 칠성기도가 되었습니다. 외래종교였던 불교가 우리나라의 민간 신앙을 수용한 결과입니다. 

앞서 신중기도를 언급했습니다. 새해에 신중단을 향해서 기도를 올리는 것 역시 우리나라 불교만의 특징입니다. 신중불공은 주로 정초 혹은 초하루 등 새로운 시간의 장을 열어가는 시점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중청은 말 그대로 신중님들, 신중神衆, 즉 많은 신들의 무리들에게 청하는 의식을 말합니다. 증심사 대웅전 신중탱화의 중앙에는 예적금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얼굴이 세 개고 여덟 개의 손에는 법을 지키는 법구가 들려 있습니다. 후광도 여느 부처님과 같지 않게불이 타오르는 것처럼 표현됐습니다. 신중들이 하는 일은 호법, 즉 부처님과 진리를 공부하는 수행자들을 지키는 일입니다. 누가 법을 해치려 합니까? 마구니입니다. 부처님은 마구니를 상대하기 위해 마구니가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나투었습니다. 

신중님들의 본연의 역할이 마구니의 항복을 받는 것이니 만큼 신중님들은 몸을 금강과 같이 수승하게 하고, 마음을 허공에 고요한 상태로 머무르게 하며, 입으로는 ‘(옴) 남’이라는 글자로 광명을 냅니다. 신중님들은 힘으로써 마구니들을 죽이거나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신구의 삼업을 깨끗하게 함으로써 마구니들의 번뇌를 깨뜨려 항복을 받아냅니다. 법계를 정화하는 것이지요. 

정초 신중기도에는 삿된 것을 물리치는 신중님들의 위신력을 새로운 장의 시작을 정화하고자 하는 중생들의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정초 삼재기도는 새해에 삼재(三災, 3년간 반복되는 불운)를 예방하고 소멸하기 위해 올리는기도입니다. 2026 병오년의 삼재띠는 돼지, 양, 토끼입니다. 자신이나 가족이 삼재띠에 해당되면 한해의 액운을 막아달라는 의미로 기도를 부치고 부적을 받아가기도 합니다. 정초에 부적을 받아가는 것은 삼재에 불운이 온다는 속설을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누군가(특히 스님처럼 믿음직스러운 존재가) ‘다 괜찮을 것’이라고 보장해주기를 은연중에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희망을 형상화시킵니다. 때로는 지갑 속 가족사진으로, 때로는 정초에 받아가는 부적으로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수시로 변하듯 내 마음속의 희망도 항상 크고 강렬하지만은 않기에 마음 밖에 희망을 형상화 시켜놓습니다. 마음속의 희망이 이런저런 이유로 희미해지고 사라졌을 때 내 마음밖에 만들어 놓은 희망을 보고 다시 힘을 내는 것입니다. 희망은 힘을 줍니다. 

소원이 강하면 희망이 되고 희망이 강하면 힘이 생깁니다. 힘이 생기면 무언가를 하고자하는 의지가 생깁니다. 의지가 강해지면 누가 하지 말라고 해도 합니다. 삼재기도에는 부적을 받되, 무작정 믿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지고 의지를 세우고 실천하는 상징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소원성취의 길입니다.

증심사는 2월 17일 설날 합동차례를 지냅니다. 이른바 정월천도재입니다. 정월천도재는 음력 1월(정월)에 조상이나 돌아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올리는 의식입니다.  영가의 업장 소멸과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공덕으로써 가족의 평안과 가정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한편 증심사는 음력 정월 보름이 지나면 성지순례에 나섭니다. 이 성지순례의 전신은 정월 방생법회였습니다.  방생법회의 핵심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방생(放生) 행위를 통해 자비와 선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에 물고기나 새 등을 사서 바다나 강에 놓아주는 행사를 치렀지요. 그러나 최근에는 직접 방생보다는 방생의 의미를 강조하되 복지, 환경, 사회 등 다양한 분야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정월의 공덕을 쌓아가는 사찰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월이 되면 자식과 가족들이 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각종 기도와 행사에 참여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을 아끼고 소중히 하는 마음은 인지상정입니다. 소중한 것을 잃을까 불안해하는 마음 역시 중생들의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에서 기도를 올리고 등을 켭니다. 이런 마음을 잘 간직하되, 올해 정초에는 내 자식만이 아닌 남의 자식도 챙기고, 남의 자식만이 아닌 모든 중생을 보듬어야겠다는 보살의 마음을 내보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수행으로 전환하는 마음이 알고 보면 자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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