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 돌과 흙에 담은 불심을 찾아… 군위 인각사, 제2석굴암, 칠곡 송림사
9월까지 기승이었던 늦더위가 한풀 꺾인 2025년 10월 14일. 증심사 주지 중현스님의 해설과 함께 전국의 불교유산을 답사하는 길따라절따라 답사팀이 경상북도 군위와 칠곡으로 향했다. 참여자는 모두 35명. ‘오붓한’ 답사를 지향한 2025년 길절 답사 중 최대 규모의 인원이 동행했다.
10월 답사의 결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바로 흙과 돌이다. 군위 인각사에는 고려 후기에 쓰인 일연스님의 생애와 수행과정이 탑비에 새겨져 있고, 군위 아미타여래삼존석굴(별칭 제2석굴암)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조성된 돌부처님 세 분이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칠곡 송림사 앞마당에는 전국 어디에서도 흔히 보기 힘든 전탑(벽돌탑)이 서있는데, 이 역시 통일신라에서부터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불심( 佛心)을 이어온 것이다.

돌에 피워낸 기록의 꽃, 군위 인각사
답사의 시작은 군위 인각사다. 고려 후대 일연 스님이 거대한 서사시 《삼국유사》를 집필하며 말년을 보냈던 곳이다. 절 마당에 서자 위천을 건너 맞은편에 병풍처럼 펼쳐진 학소대 절벽이 시선을 압도했다. 이어 인각사 주지 호암스님이 답사단을 환대했다. 인각사라는 사찰의 유래와 이곳에서 정진하셨던 스님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호암스님은 보각국사 탑비 보호각으로 답사단을 안내했다.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보각국사탑 및 비. 보호각 안의 비석은 이미 많은 부분 훼손되어 온전한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비석 위에 새겨진 글씨만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보각국사 탑비는 단순히 일연 스님을 기리는 비석을 넘어, 고려시대의 역사, 문학, 서예 예술이 집약된 결정체다.

보각국사 비는 당대의 문장가 민지가 찬술하고 왕희지의 글씨를 모아 새긴 집자비(集字碑)다.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왕희지 글씨에 대한 숭상과 더불어, 국사(國師)의 비석을 조성할 때 쏟은 국가적 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 단단한 화강암이 아니라 비교적 무른 점판암 계열의 돌을 사용해 세밀한 조각이 가능했지만, 반면 내구성이 떨어지는 재질이었기에 과도한 탁본에 의한 손상과 임진왜란의 화마를 피할 수 없었다.
보각국사 승탑역시 보물로, 8각 원당형을 기본으로 기단부와 몸돌에 사천왕상과 보살상을 배치하여 장식성을 극대화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구광역시 문화유산 자료로 지정된 극락전과 명부전, 일연스님의 진영이 있는 국사전을 참배하고 점심공양을 한 뒤 다시 길을 나섰다.

경주 석굴암의 모태, 군위 아미타여래삼존석굴
인각사를 뒤로하고 남쪽으로 내려오면 부계면에 이른다. 짧은 거리의 상점가를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면 곧장 국보인 아미타여래삼존입상을 친견할 수 있다. 본존불인 아미타여래는 엄격한 표정에 묵직하고 당당한 어깨를 가지고 있고, 협시보살인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신체는 약간 굴곡져 리듬감과 부드러움을 느껴진다. 국가유산 보호를 위해 근접하는 출입을 금하고 있지만 석굴 아래 마련된 참배터에서 예경을 올리기에는 충분했다.
아미타여래삼존석굴의 다른 이름은 제2석굴암이다. 별칭에서 경주 석굴암과의 연관성을 유추하게 된다. 엄밀하게 따지면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경주 석굴암보다 이른 7세기 말~8세기 초에 제작되어 경주 석굴암의 모태라고 본다. 지상 20미터 높이의 천연 동굴 속에 모셔진 아미타삼존불을 올려다보면 자애롭고 온화한 느낌이 곧장 전해지는데, 화려한 장식 없이도 동굴 자체가 주는 신비로움과 위엄에 동화된다.
석굴 아래에는 중국 전탑을 모방해서 만든 아담한 모전석탑이 있다. 바로 다음 답사지 칠곡 송림사의 대표적인 국가유산이 바로 이 벽돌을 구워 쌓은 전탑이 아니던가. 기대감을 안고 제2석굴암을 나서는 길. 9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석조비로자나불 앞에서 합장을 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했다.

벽돌탑의 위용과 지장보살의 자비, 칠곡 송림사
칠곡 송림사의 첫인상은 사찰의 예스러움과 어우러진 아늑한 공원의 얼굴이다. 눈에 익은 형태가 아니어서일까. 도량 중심에 자리한 16미터 높이의 오층전탑도 불교의 그것이라기 보다는 독특하고 재미난 조형물처럼 느껴졌다.
단단한 돌이 많아 돌을 깎아 만든 석탑이 흔한 우리나라에서 흙을 구워 벽돌을 만든 뒤 벽돌을 쌓아 만든 형식의 ‘전탑’은 희소성이 크다. 주로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북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이들 전탑은 신라와 고려시대의 독특한 건축문화를 품고 있다. 전탑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양식을 모전석탑이라 따로 칭하는데, 모전석탑은 벽돌을 구운 것이 아니라 돌을 벽돌모양으로 깎았서 만든 형태라는 차이가 있다.
국가유산 보물인 송림사 오층전탑은 7세기 후반에서 통일신라 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짙은 붉은 빛과 수직으로 뻗은 직선미가 일품인 오층전탑은 하층 기단은 석재로, 상부는 벽돌로 쌓아 올린 혼용 구조를 하고 있다. 통일신라 탑 중 상륜부 금동이 완전하게 남아 있는 국내 유일의 사례라서 더욱 반갑다.
이밖에도 그 자체로 보물인 대웅전, 희귀하게 향나무 조각으로 조성한 대웅전 내부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삼천불전의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등을 둘러보았다. 2024년 보물로 지정된 지장전 내부의 석조삼장보살좌상과 목조시왕상 일괄도 무척 궁금했으나, 재가 봉행되고 있어 외부에서만 흘깃 들여다본 것이 못내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