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3] 소박하지만 단단한 장엄의 도량… 부안 내소사, 개암사
벌써 작년의 일이다. 2025년도를 마무리하는 증심사 불교문화답사 길따라절따라가 12월 14일 진행됐다. 겨울의 초입에서 21명의 답사단이 찾은 지역은 전라북도 부안. 부안의 천년고찰인 내소사와 개심사를 답사했다.
변산반도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두 절은 비슷한 점이 많다. 도량 초입의 호젓한 전나무길과 고즈넉한 대웅전은 두 사찰 모두의 자랑이다. 산세를 병풍처럼 두른 전통 산지 가람 배치는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한국 불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두 절 모두 백제 혹은 통일신라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창건 설화를 지니고 있어 지역 불교사의 오래된 층위를간직하고 있다. 담백한듯 단단한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는 두 사찰로의 여정을 소개한다.

능가산 아래 꽃문살의 장엄… 부안 내소사
12월 두 번째 일요일. 해 뜨는 시간은 늦고 해 지는 시간은 이른 겨울날 아침 8시 30분 광주에서 변산반도로 향한다. 버스로 약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능가산 내소사. 일주문에서부터 천왕문까지 이어지는 600미터의 오솔길이 그 유명한 ‘내소사 전나무길’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기도 한 전나무길은 속세의 시간에서 산사의 시간으로 건너가는 통로. 곧게 솟은 전나무들은 서로의 어깨에 기대듯 길을 감싸 안고 방문객을 맞이한다.
숲길 끝자락, 사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압도적인 위용의 할아버지 당산나무(보호수)가 있다. 수령1,000년이 넘는 이 나무는 사찰 내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마을의 안녕을 비는 민간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불교와 토속 신앙이 조화롭게 공존해 온 한국 사찰 특유의 포용성을 보여준다.
내소사에는 2023년 겨울,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 문화유산이 있다. 내소사 동종이다. 부안군의 국보 1호이기도 하다. 절 마당에서 바로 들여다 볼 수 있는 보종각 안의 동종은 실물 그대로 제작한 복제종이고, 국보는 별도의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비록 복제종이나 몸체에 새겨진 연꽃과 비천상을 살펴보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내소사 동종은 고려 후기 동종 중 가능 큰 것으로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고려의 특징이 잘 드러난 수작이다.
누구든 부안 내소사를 다녀온 이라면 색채 없이 고즈넉한 대웅보전을 떠올릴 것이다. 섬세하게 조각된 꽃문살 역시도요. 내소사 대웅전은 건물 자체로 국가유산 보물이다. 답사단을 이끄는 중현스님을 선두로 계단을 올라 대웅전 앞에 선다.
각각의 꽃무늬를 깎아 짜맞춘 꽃문살은 연꽃과 국화가 만개한 꽃밭을 연상시킨다. 채색이 바래 나무 본연의 색이 드러난 지금이 오히려 비움의 미를 극대화시키는 듯하다. 답사단 개개인의 카메라가 이 화려한 목공예의 정수 앞에서 한참을 머문다.
건물 전체를 바라보면 조선 중기 건축 양식의 특징인 다포의 화려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대웅보전 안으로 들어서서도 감탄은 그치지 않는다. 주불은 석가모니불이며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세 불보살님께 인사를 드리고 불상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대웅전 후불벽화 ‘백의관음보살좌상’을 만날 수 있다. 내소사 창건설화에 의하면 관음조가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관세음보살님의 눈동자가 기도하는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보살님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속설도 흥미롭다.
산내암자인 관음전으로 향한다. 오르는 길이 녹록하지 않다. 젖은 낙엽을 피해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가파란 길을 오르면 비로소 가슴이 탁 트이는 장관을 마주하게 된다. 관음전 앞마당에서는 내소사전경과 능가산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송골송골 맺힌 구슬땀을 식히고, 아름다운 풍광으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관세음보살님께 인사를 올린 후 하산한다.

울금바위 아래 아홉 용의 호위… 부안 개암사
능가산을 사이에 두고 내소사와는 반대편에 자리잡고 있는 사찰이 부안 개암사다. 내소사가 널리 알려진관광 사찰이라면, 개암사는 한 발 물러서 조용히 시간을 품고 있는 절이라는 인상이다. 역시 백제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보제루 아래 낮은 계단을 올라 앞마당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대웅보전 뒤편으로 둘러져 있는 산세와 경쾌하게 솟아 있는 울금바위이다. 거대한 두 개의 암봉이 마치 사찰을 호위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내소사 대웅보전이 빛바랜 단청으로 고고함을 뽐낸다면, 개암사 대웅전은 공포의 짜임과 그 부재에 새겨진화려한 조각으로 눈길을 끈다. 처마 밑의 용 조각들은 마치 살아서 하늘로 승천할 듯 역동적이다. 석가삼존불을 모신 법당 내부에서는 비단 부처님 뿐만 아니라 부처님 집을 의미하는 닫집, 화려한 용과 봉황 조각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모두 아홉 마리에 달하는 용들이 부처님 세계를 장엄하고 있으니, 그 머릿수를 헤아려보는 것도 즐겁다.
개암사 응진전으로 걸음을 옮기면 제각각 자유롭고 개성 있는 모습의 나한상이 있다. 불단 앞에는 기다란 목함이 있는데, 보물인 개암사 영산회괘불탱 및 초본을 보관하는 것이다. 지장전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청림리 석불좌상과 그 모양을 본뜬 작은 석불좌상들이 도열해 있다.
답사를 시작하는 아침부터 하늘이 무겁더니 개암사 답사를 하는 도중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작고 따뜻한 카페에 복닥복닥 모여 앉아 따끈한 차와 간식으로 몸을 녹였다. 날 좋은 날 다시 이곳 변산반도를 방문하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답사를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