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속이야기

어부의 아들 싸띠

언젠가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머무실 때 일이었다. 그때 어부의 아들이었던 수행자 사띠가 동료수행자들에게 이렇게 주장하였다.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가르침을 이해한 바에 따르면 식(識)이 유전하고 윤회하는 것이다.”

사띠의 말은 곧 수행자들 사이에 퍼졌고, 조용하던 숲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소문들을 들은 동료 수행자들이 사띠를 찾아가 물었다.

“벗 싸띠여, 당신이 ‘식(識)이 윤회한다’고 말했다는데, 사실입니까?”

싸띠는 당당하게 말하였다.

“네, 식이 윤회한다고 말했습니다.”

동료 수행자들은 말하였다.

“벗 싸띠여, 세존의 말씀을 잘못 전하지 마십시오. 세존의 말씀을 멋대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분명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는 늘 ‘모든 것은 조건에 의지해 생겨난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조건 없이는 식(識)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조건의 변화에 상관없이 식(識)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료 수행자들이 추궁하고 규명하고 또 충고했지만, 어부의 아들이었던 수행자 싸띠는 완강히 고집하며 자신의 견해를 꺽지 않았다.

“나의 사사로운 주장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어찌해볼 수 없자, 동료 수행자들이 부처님께 찾아가 사실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숲의 수행자들을 모두 모이게 하고, 싸띠에게 ‘벗 싸띠여, 스승이 그대를 부른다’고 전하라.”

숲의 수행자들이 한자리 모이고 싸띠가 부처님 앞으로 나왔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싸띠야, 그대가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가르침을 이해한 바에 따르면 식(識)이 윤회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는데,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어떤 것이 그 식(識)인가?”

“세존이시여, 지금 여기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이것, 느끼고 있는 이것,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선행(善行)을 하기도 하고 악행(惡行)을 저지르기도 하는 이것, 그리고 나중에 그 선행과 악행의 과보를 받는 이것입니다. 바로 그 식(識)이 윤회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여, 내가 누구에게 그런 가르침을 설했다는 것인가? 네 멋대로 해석한 것을 붓다의 가르침이라 전하며 자신을 망치고 남들까지 망치는구나. 잘못된 그 견해는 너를 오랜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이끌 것이다. ”

부처님의 꾸중에 얼굴이 붉어진 싸띠는 축 늘어진 어깨로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고개를 돌려 수행자들에게 물으셨다.

“그대들도 싸띠처럼 생각하는가?”

수행자들이 답했다.

“아닙니다. 세존께서는 항상 ‘모든 것은 조건에 의지해 생겨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수행자들여, 땔감이 없으면 불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조건에서 식이 생겨나고, 조건이 없으면 식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한다.

수행자들이여, 불은 연료에 따라 그 이름이 지어진다. 장작으로 인해 불이 생기면 장작불이라 하고, 왕겨로 인해 불이 생기면 왕겨불이라 한다. 이처럼 시각을 조건으로 형상에 대한 식이 생겨나면 안식(眼識)이라 하고, 청각을 조건으로 소리에 대한 식이 생겨나면 이식(耳識)이라 하며,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역시 마찬가지이다. 수행자들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 여기에 있는 모든 것, 즉 오온(五蘊)은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자양분에서 생겨난 것인가?”

“자양분에 의지해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양분이 소멸하면 그 생겨난 것은 소멸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수행자들여, ‘자양분이 소멸하면 자양분에 의지해 생겨난 것도 소멸한다.’고 있는 그대로 보면 의심은 사라지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에게 재차 확인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고결한 관점이라 해도 이를 집착하거나 애착하거나 추구하거나 나의 견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수행자들이여, 뗏목은 강을 건너기 위한 것이지 붙잡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의도는 명확하다. 타오르는 불꽃을 보면 너무도 명확하다. 땔감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불꽃은 없고, 땔감의 변화에 상관없이 유지되는 불꽃도 없다. 그렇다고 ‘불꽃이 타오르는 현상’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불꽃이 타오르는 현상은 조건의 변화로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Related Article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