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절따라월간증심

천년, 시간의 흔적을 더듬다: 창녕 관룡사, 대구 용연사

  한 달에 한 번. 매월 둘째 주 일요일에는 증심사의 특별한 답사팀이 활동을 개시합니다. 참배를 위한 성지순례가 아니라 문화재를 공부하고 익히는 불교문화답사 ‘길따라절따라’입니다. 2025년 상반기 빛고을불교아카데미에 참여하는 도반들이 주축을 이루고, 증심사의 오랜 신도들도 삼삼오오 함께 합니다. 답사팀을 이끄는 것은 증심사 주지 중현스님. 스님은 오가는 버스 안에서, 또 현장의 전각 안에서 직접 마이크를 들고 우리네가 배워온 불교의 문화를 상기시킵니다. 답사길에서는 어떤 질문도 흔쾌히 수용됩니다. 중현스님은 해박한 지식으로, 체득한 경험으로 질문들에 막힘없이 답합니다. 이 특별한 불교문화 가이드가 우리 절 증심사 ‘길절’의 인기 비결이기도 합니다. 

  끓는 더위는 아직 이른 5월 11일, 적당한 구름이 피로를 누그러뜨리는 날 답사팀은 대구를 향해 버스를 달렸습니다. 광주전남 지역의 불자들이 흔하게 들르지 않는 대구 용연사와 창녕 관룡사가 이날의 목적지입니다. 비슬산에 위치한 용연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입니다.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불교가 국가를 수호하는 호국사상과 결합하여 발전하던 시기에 건립되어 불교를 통한 국가 안정과 왕실 수호에 일익했습니다. 

  지근거리의 팔공산은 과거부터 호국도량으로서의 상징성을 가집니다. 주변의 동화사, 부인사, 파계사, 관음사 등은 국난 극복을 기원한 사찰들이었으며, 팔공산 일대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활동 근거지로 기능했습니다. 용연사 역시 그 호국불교 네트워크의 한 조각입니다.

  한편 창녕 관룡사는 가야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창녕은 금관가야에 이어 불교가 가장 먼저 전해졌던 가야연맹의 주요 지역 중 하나였습니다. 창녕 일대의 석빙고, 술정리 동삼층석탑, 계성 고분군 등 가야시대에서 삼국시대로 전환되는 시간의 불교 유적이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도 그 연관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용연사 주변에서도 고대 석탑과 불상 등 가야불교 또는 초기불교의 흔적이 발견되어 왔습니다.

  대구 용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입니다. 규모가 매우 크지는 않지만 전각 하나하나 귀중한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특히 두 점의 국가지정 보물을 보유한 사찰로, 조선시대에 조성된 금강계단은 보물 제539호로, 목조 아미타여래 삼존좌상 및 복장유물은 보물 제181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비슬산용연사자운문’이라 쓰인 산문에 들어서면 극락교와, 극락교 건너의 천왕문이 나옵니다. 사천왕상이 아니라 벽화로 표현된 사천왕의 지물과 방향 등을 복습하며 사찰에 들어서기 전 외호대중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범종루 아래의 계단을 오르면 비로소 타 사찰의 대웅전 격인 극락전과 그 앞마당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극락전 정면에 위치한 고려시대 석탑은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극락전 내부의 목조 아미타여래 삼존좌상의 엄숙하고도 자비로운 상호로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을 주불으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좌우협시하고 있습니다. 보물입니다. 영산전의 십육나한과 민무니 보관을 쓴 불보살님께도 인사를 올립니다. 

용연사 권역은 극락전 중심과 금강계단 중심으로 확연히 나뉩니다. 극락전에서 돌아 나와 극락교를 건너 산 쪽으로 조금 더 들어서면 적멸보궁 금강계단으로 향하는 오솔길이 펼쳐집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전각, 적멸보궁. 우리나라의 5대 적멸보궁은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수미산 통도사 등입니다. 그런데 용연사에도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이곳에 모신 사리는 본디 통도사에 있던 것으로, 임진왜란 당시 왜구에게 약탈되었던 것을 사명대사가 다시 통도사에 봉안하는 과정에서 금강산 건봉사와 이곳 대구 용연사에 각각 따로 안치했다고 전해집니다. 불상 없이 금강계단을 향해 너른 창이 나있는 전각에서 지극한 마음으로 예경을 올립니다. 

  버스로 한 시간을 달려 구불구불 화왕산자락을 올라가면 창녕의 고찰 관룡사가 나옵니다. 관룡사는 신라 진흥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입니다. 가야불교와 신라불교의 점접, 그리고 지역의 사찰문화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가람입니다. 오랜 역사를 대변하듯 곳곳에 문화유산을 품고있을 뿐 아니라 관룡사 일원이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관룡사로 향하는 초행길을 맞이하는 것은 아담한 석문(협문)입니다. 무심한 듯 투박하게 쌓아올린 축대 위에 기와지붕을 올렸습니다. 상체를 숙여야만 통과할 수 있는 석문에서 하심을 배웁니다. 범종루에는 세월을 가늠할 수 있는 오래된 법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웅전부터 보물입니다. 보물 제144호 관룡사 대웅전을 참배합니다. 모시고 있는 삼존불도 보물 제173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주불인 석가모니불 좌우협시보살을 보시는 형태와 달리 관룡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 양쪽으로 약사여래불과 아미타여래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관룡사 대웅전을 참배할 때는 삼존불 뒤쪽의 벽화를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불단의 뒤 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벽과 기둥까지도 통째로 캔버스 삼은 관음보살도가 있습니다. 흔하게 만나볼 수 없는 형식의 벽화입니다. 

  약사전 역시 전각 자체가 보물 제146호입니다. 조선 전기 양식의 약사전은 관룡사에서 유일하게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지 않은 건물이며, 관룡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이기도 합니다. 아담한 약사전 안에는 돌을 깎아 만든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경내에도 멋진 국가유산이 많지만 관룡사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용선대 부처님일 것입니다. 용선대로 향하는 데크길을 따라 15분가량. 숨이 턱에 찰 때쯤 멋진 풍광이 펼쳐집니다. 그 중심에 보물 제295호 석조석가여래좌상이 있습니다. 좌대와 몸체를 합쳐 약 3미터에 달하는 부처님인데, 팔각형의 연화대좌 위에서 정면을 향해 결과부좌 하고 항마촉지인을 한 모습입니다. 두 어깨를 덮는 가사와 큼지막한 육계와 나발은 통일신라 양식을 띠고 있고, 실제 이 불상은 통일신라 722년에 제작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얼핏 경주 석굴암 본존불을 떠올리게 하는데, 관룡사 부처님의 경우 그 상호나 몸집이 소년처럼 풋풋한 매력을 자아냅니다. 절벽 위에 배 형태로 조성된 암반은 사바세계를 떠나 극락으로 향하는 반야용선 그 자체입니다.

  두 시간 반을 달려 낯선 지역을 답사하는 피로감이 눈 녹듯 사라집니다. 저마다 참배를 하고, 미륵불의 변형인 석장승의 배웅을 받으며 관룡사를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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