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사람, 게으른 사람

“열심히 해라!”
코흘리개 시절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단어이다. 학창시절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인 보편적 덕목(德目)이었고, 목적어가 ‘공부’나 ‘운동’ 등 몇 가지에 불과했기에 그 반대인 게으름과도 그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그러나 스무 살 무렵, 가정과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회(社會)라는 낯선 환경에 던져졌을 때,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경계선이 흔들리고 신념처럼 굳건했던 ‘당연(當然)’은 새로운 혼란과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사람만 아니라 심지어 미물이라 치부하는 개미나 지렁이조차도 상상을 초월할 만큼 부지런히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게을리하지 말란 말인가? 이 말씀에서 주목할 것은 술어가 아니라 목적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함경 주적서>>에 다음 이야기가 나온다.
단짝처럼 지낸 두 비구가 있었다. 두 사람은 기원정사에 계신 부처님께 찾아가 수행법을 여쭈었다. 부처님은 두 사람에게 ‘몸과 마음이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것’임을 관찰하고 깨닫도록 권유하셨다. 두 사람은 우기 동안 수행에 매진하기 위해 인적이 드문 깊은 숲속 사원으로 찾아들었다. 사원의 장로에게 인사를 하고 찾아온 목적을 밝히자, 장로는 두 스님에게 작은 오두막을 배정하고 3개월 동안 머물도록 허락하였다.
이후 두 사람의 행적은 완전히 달랐다. 한 사람은 공양을 마치자마자 곧장 자기 오두막으로 들어가 짐을 풀고 조용히 좌선하였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비구의 일상은 한결같았다. 청소하고, 공양하고, 좌선하고, 경행하다가 잠이 드는 것이 과묵했던 그 비구가 하는 전부였다.
하지만 다른 한 비구는 완전히 달랐다. 아침마다 사원의 장로와 비구와 사미들을 찾아가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고, 도울 일은 없는지 살폈다. 불편함을 호소하거나 물품이 없어 곤란해하는 수행자가 있으면 앞장서 문제를 해결하고,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이면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또 알선해 주었다. 게다가 깨끗한 물을 길어오고, 사원도 구석구석 청소하고, 공양 후에는 숲에 들어가 땔감을 수북이 마련하고, 해가 지면 큰방으로 달려가 제일 먼저 화로에 불을 지피고, 숲속의 수행자들이 온기를 찾아 큰방에 모이면 빼어난 말솜씨로 동료들을 웃기고 또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로 훈계하기도 하였다. 숲속 수행자들 모두 싹싹한 그를 좋아해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들끓었고, 적막하던 숲속 사원에는 밤늦도록 깔깔대는 웃음소리와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오두막에서 좌선만 하던 과묵한 비구가 싹싹한 비구에게 찾아가 말하였다.
“벗이여, 부처님께 가르침을 받았으면 그 가르침을 부지런히 실천하여 성취해야지, 지금처럼 그렇게 게으름만 떨어서는 안 됩니다.”
귀에 거슬렸는지, 상대 비구는 시뻘건 얼굴로 고함을 쳤다.
“뭐? 게으름을 떨어? 지금 누가 누구보고 게으르다는 거야!”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음을 눈치챈 과묵한 비구는 조용히 발길을 돌려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이었다. 그날 밤도 큰방의 화로는 자정이 넘도록 활활 타올랐고, 수행자들의 웃음소리가 밤늦도록 이어졌다. 화롯불이 꺼지고 각자 오두막으로 돌아가던 무리가 조용히 좌선만 하던 비구의 오두막 앞을 지나게 되었다. 오두막엔 적막만 가득했다. 낮에 있었던 일이 생각났는지, 싹싹한 비구가 걸음을 멈추고 오두막을 향해 손가락질하였다.
“저 스님이 오늘 저보고 게으른 놈이라고 하더군요.”
동료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마디씩 거들었다.
“절 마당 한번 제대로 쓴 적도 없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보고 게으르다는 겁니까?”
“사람보고 인사도 할 줄 모르면서 무슨 수행자라고!”
“문 닫은 꼴을 보니, 벌써 방구석에 처박혀 자나 봅니다.”
“어휴, 저 게으른 놈!”
숲속 수행자들은 하나같이 오두막 비구를 비난하였다. 어느덧 3개월이 지나고, 두 비구는 다시 부처님을 찾아가 삼배를 드리고, 공손하게 한쪽에 앉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안거 기간 동안 부지런히 수행하였는가?”
늘 오두막에 머물던 비구가 먼저 대답했다.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몸과 마음이 무상하고 실체가 없는 것임을 부지런히 관찰하여 깨달았습니다.”
앙금이 남았던지, 곁에 있던 비구가 벌꺽 화를 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부처님, 이 사람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오두막에 처박혀 한 발짝도 나오지 않고, 대중들을 위해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았습니다. 3개월 내내 게으름만 떨고선 ‘부지런히 수행하였다’라고 말하니, 기가 막힙니다.”
부처님이 돌아보며 물었다.
“그럼, 너는 어떻게 생활하였느냐?”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장로와 수행자들의 안부를 살피고, 사원을 구석구석 청소하고, 동료들의 불편을 해결해주고, 숲에 들어가 땔감을 모으고, 저녁에는 동료들이 몸을 녹일 수 있도록 숯불을 피우고, 화로에 둘러앉아 동료들이 즐거워할 만한 이야기들을 밤새워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잠 잘 시간도 없이 부지런히 살았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그 비구를 꾸짖으셨다.
“어리석은 사람아! 내가 그대에게 수행을 부지런히 하라 권했지, 물긷고 청소하고 땔감 모으고 동료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것을 부지런히 하라고 권했는가? 저 비구가 날쌘 준마와 같다면, 너는 노쇠하고 비루먹은 망아지와 같구나.”
그리고 오두막에 칩거한 비구를 칭찬하며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게으름 떨며 멋대로 사는 사람들 속에서
마음을 집중하여 주의 깊게 관찰하고
졸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늘 깨어있는 이는
열반을 향해 달려간다.
날쌘 말이 느린 말을 앞지르듯이.
부처님께서 열반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다.
“방일하지 말라!”
불제자라면 모쪼록 세간사(世間事)가 아니라 출세간사(出世間事)에 부지런해야 할 것이다.
글. 성재헌
일러스트. 박석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