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불통 사리불
많은 사람을 휘어잡거나 심복하게 하는 능력 자질을 카리스마라 한다. 자기 이익에 부합하지 않거나 경험치를 넘어선다 싶으면 좀처럼 움직이려 들지 않는 게 사람이니, 대중을 선도하는 사람에게는 때로 카리스마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속에 ‘나’는 고집이 깊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지도론(大智度論)>>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언젠가 부처님께서 선정에서 깨어나 숲을 거니실 때였다. 그때 라후라(羅睺羅)가 동료 사미들과 함께 찾아와 조용히 부처님 뒤를 따라 걸었다.
부처님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출가하여 사미가 된 당신의 아들 라후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창백한 얼굴에 표정이 없고 걸음마저 비틀거렸다.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왜 이렇게 야위었느냐?”
그러자 라후라가 대답했다.
“세존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사람은 기름진 음식을 먹어야 힘이 나고, 치즈를 먹어야 피부가 반들반들합니다. 매일 채소에다 깻묵이나 먹으니, 힘이 없고 피부가 푸석푸석할 수밖에요.”
출가한 사람에게는 모두 은사(恩師), 즉 화상(和尙)이 있다. 화상에게는 제자를 돌보고 보살필 의무가 있다. 게다가 라후라는 아직 어린 사미였다.
이에 부처님께서 발길을 돌리며 한 말씀 하셨다.
“사리불은 자기만 좋은 음식을 먹는구나.”
어린 사미들의 입을 통해 소문이 삽시간에 숲의 수행자들에게 퍼졌다.
사리불은 이 말을 전해 듣는 순간, 입 안에 있던 음식을 뱉어 버리고 스스로 맹세했다.
“지금부터 다시는 초청을 수락하지 않겠다.”
사부대중의 사리불에 대한 신망은 부처님 못지않았다. 그래서 왕족과 부자들을 비롯해 명성 있는 사람들이 사리불을 초청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 서로 안달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모든 초청을 거절하자, 재가자들은 당황스러웠다.
사위국의 왕 파사익과 기원정사를 보시한 수달다 장자 등이 줄줄이 사리불을 찾아와 간청하였다.
“사리불이시여, 이렇게 초청을 수락하지 않으시면 저희 같은 재가자들은 삼보에 대한 믿음을 일으킬 기회마저 없습니다.”
하지만 사리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저의 큰 스승이신 부처님께서 ‘사리불이 저만 기름진 음식을 먹는다’고 하셨다는군요. 그래서 이제는 공양 초청을 받지 않을 생각입니다.”
파사익 왕과 수달다 장자가 부처님께 찾아가 말씀드렸다.
“부처님, 사리불께서 갑자기 저희의 공양 초청을 거절하십니다.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지 않으면 저희는 사리불 존자를 가까이할 기회마저 없습니다. 훌륭하신 분들을 가까이하지 않고 어떻게 저희가 청정한 믿음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부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다시 초청을 수락하고 말씀해 주소서.”
그러자 부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마음이 견고해서 그 누구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어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옛날에 어떤 국왕이 숲에서 산책하다가 그만 독사에게 물렸습니다. 곧 상처가 짓무르고 숨이 가빠오자, 왕은 통증을 견디지 못해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신하들은 의사들을 불러 뱀독을 치료하게 했습니다.
그때 의사들이 말했습니다.
‘왕을 물었던 그 뱀에게 다시 독을 빨아내게 해야 합니다.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의사들이 모여 뱀을 부르는 주문을 외우자, 왕을 물었던 뱀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의사들이 달려들어 뱀의 목을 조르고, 장작을 쌓아 불을 활활 피웠습니다.
그리고 뱀에게 명령하였습니다.
‘너의 독기를 도로 빨아내거라. 그렇지 않으면 이 불구덩이에 던져버리겠다.’
그러자 독사가 의사들을 노려보며 말했습니다.
‘이미 뱉은 독이다. 한번 뱉은 것을 어찌 다시 거둔단 말인가?’
의사들은 독사의 서슬 퍼런 태도에 놀라 그만 눌렀던 목을 놓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독사는 달아나지 않고, 한참이나 왕과 의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불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처님께서 빙그레 웃으며 파사익 왕과 수달자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의 독사가 지금의 사리불입니다. 그는 여러 생에 이런 습성을 쌓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의지가 매우 견고하고, 자신이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 번복하지 않습니다. 여래마저도 그에게 말을 번복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대지도론>>에서 이어 말씀하셨다.
“아라한이나 벽지불은 비록 3독(毒)을 타파하긴 했지만 그 여훈(餘薰)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사람들이다. 비유하자면 향 그릇에서 담긴 향을 완전히 비워도 그릇에 배인 향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과 같다.
또 마당을 청소할 때 지저분한 쓰레기들을 모아 태우는 것과 같다. 쓰레기들을 빗자루로 쓸어모아 불을 붙여 활활 태웠지만, 연기가 스물거리는 숯과 재가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다르다. 부처님은 3독이 남김없이 영원히 사라진 분이시니, 비유하자면 이 우주가 파괴되는 시기에 발생하는 불[劫火]은 수미산까지 몽땅 태우고, 숯과 재와 연기마저 남기지 않는 것과 같다.”
부처님 당시 초기 승가가 여러 차례의 위기를 맞고도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리불의 굳건한 의지가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아상(我相)의 여훈(餘薰)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대지도론>>에서는 경계하고 있다.
“사리불은 아라한이 되고도 성내는 습기가 남았고, 난타(難陀)는 아라한이 되고도 음욕의 습기가 남았고, 필릉가바차(必陵伽婆磋)는 아라한이 되고도 교만한 습기가 남았다”고 했으니, 혹여 성취한 바가 있다 하더라도 조심 또 조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