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의 시간
얼마 전 템플스테이에 온 20대 초반의 친구들에게 차를 대접하는데 한 친구가 물었습니다. “스님, 명상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특한 마음에 이런저런 설명을 해줬는데,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왜 하필이면 기도도 아니고 참선도 아니고 명상을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에 서울에서 불교박람회를 열었는데 그 주제가 명상이었습니다. 명상 수업에 1천 명 이상이 수강했고, ‘명상 컨퍼런스’는 사전 예약이 다 매진됐다고 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명상이 우리 사회 속에 깊숙하게 들어왔습니다. 명상의 역사는 3천 년이 넘었는데 왜 이제야 사람들이 명상을 찾고 있는 것일까요?
유튜브에서 찾아본 명상
사람들이 어떻게 명상을 하는지 한번 찾아봤습니다. 내용은 보지 않았습니다만 제목은 주로 이렇습니다. ‘하루를 바꾸는 5분 명상’, ‘몸의 기운을 맑게 해주는 10분 몰입 영상’, ‘불안한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평화 명상’, ‘10분 안에 해소 명상’….
제목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몇 분 안에 다 끝낸다는 것이고 그다음은 스트레스 해소, 마음의 평화, 휴식, 불안 제거 등 뭔가 내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종류도 차명상, 향명상, 소리명상, 촛불명상 등으로 다양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명상은 상당히 다양한 종류로 일반인들에게 스며들었습니다.
눈감을 명[瞑] 생각할 상[想], 명상의 정의는 눈을 감고 고요히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명상의 목적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줄이고, 내면의 평화를 찾고, 마음을 훈련시키는 것이며 명상의 방법은 무수히 많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 명상을 하면 뇌파가 어떻게 변하는지, 생체 호르몬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등의 연구결과도 첨부되어 있습니다.
힐링 열풍에 이은 명상 열풍?
명상의 목표는 마음의 평화입니다. 명상하면 우선 연상되는 것은 힐링입니다. 힐링(healing)은 치유한다는 뜻입니다. 명상음악, 여행, 템플스테이, 한방테라피 등이 우선 떠오릅니다.
힐링의 목표는 내 마음의 평화를 기하는 건데 실제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까 상품이었습니다. 힐링 마케팅과 결합한 힐링 열풍은 잠잠해졌습니다만, 명상은 크게 바람을 타지 않고 꾸준히 우리사회 여러 요소요소에 스며들었습니다. 명상이 이제는 라이프스타일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는 듯한 생각도 듭니다. 실제 수치를 보면 미국의 경우 최근 1년 동안 명상을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이 전체 미국 인구의 10%가 넘습니다. 우리나라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명상이 더 대중화되어 있습니다.
불교의 명상, 계정혜 삼학을 닦는 수행의 일환
명상의 외형은 불교에서 말하는 참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명상과 대중화된 명상은 목표하는 바가 다릅니다. 대중화된 명상은 바쁘고 힘들고 괴롭고 불안한 이 현실에서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의 명상, 즉 참선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수행의 일환입니다. 비유를 들자면 대중화된 명상은 현재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진통제 같은 것이라면, 불교의 수행은 고통의 근본원인을 진단하고 완전히 치료하는 것은 물론, 더 이상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나아가 체질을 바꾸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불교의 공인된 수행법은 한마디로 말해서 팔정도입니다. 팔정도대로 수행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팔정도는 계정혜 삼학이며 이것이 불교의 수행법입니다. 참선만 열심히 하라고 부처님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계율을 지켜야 선정에 들 수 있으며 선정에 들어 마음이 고요해야 무명을 걷어내는 올바른 통찰이 가능합니다. 명상만 해서는 깨칠 수 없습니다. 명상은 반드시 계를 지키는 지계와 올바른 통찰을 밝히는 지혜를 키우는 수행과 더불어 가야 합니다.
<서장>에 나타난 당송시대 명상 열풍
1천 년 전 중국의 당·송시대에 참선이 유행했습니다. 선종은 당시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불교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제대로 된 불교라 함은 화엄종이나 법상종, 유식종처럼 교학체계가 잘 짜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다 공부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 어느 날 간화선이 등장하여 화두만 깨치면 바로 부처가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존의 불교와 다른 혁신적인 불교가 등장하자 당시의 사대부들은 간화선에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서 당대의 큰스님이었던 대혜 스님에게 여쭈었습니다. 대혜 스님이 송나라의 명망 있는 사대부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놓은 책이 바로 <대혜보각선사서>, 줄여서 <서장>이라고 합니다.
사대부들은 평소 하던 대로 간화선을 대했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으면 되는 것인가?”, “개는 불성이 없다고 하는데, 하급한 중생이라서 불성이 없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따졌습니다. 간화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겉모습만 흉내 낸 셈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대혜 스님은 사대부들이 궁금해하는 화두 드는 법에 대해 설명하고, 이어서 불교의 올바른 수행, 즉 계정혜 삼학을 닦을 것을 항상 강조하였습니다.
현대인들은 사는 게 쫓기듯 바쁘고, 마음은 각박하고 팍팍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이런 이유로 내 마음이 편해지는 힐링의 방법으로 명상을 찾습니다. 사람들은 불교의 수행법에서 종교적인 색채를 걷어낸 후 그 위에다가 과학이라는 옷을 입혔습니다. 또 사람들이 혹하는 영어로 이름을 멋지게 붙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명상의 본질이 아닙니다. 이는 마치 중국의 당송시대에 어설픈 간화선이 사대부들에게 유행한 것과 비슷한 양상입니다.
힐링 추구는 실존적 갈증에서 온다
왜 사람들은 힐링을 원합니까? 기실 힐링을 원하는 것은 실존적 갈증에서 오는 것입니다.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이 갈증을 어떤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로 채우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명상을 통해서 채우기도 합니다. 이 두 경우는 정반대 같지만 사실 촉발되는 지점은 같습니다.
과거 종교는 사람들의 삶을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인본주의가 등장하면서 철학이 떨어져 나오고, 이어서 교회로부터 정치와 경제활동이 분리되어 나오고, 이윽고 도덕과 윤리도 종교의 굴레를 벗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신앙만 남았는데 이마저도 과학 때문에 사람들의 삶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실존적 갈증뿐입니다.
대혜 스님이 어설픈 참선 열풍에 빠진 당시 사대부들에게 계정혜 삼학을 강조하였듯,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팔정도라는 불교의 수행법을 바탕으로 대중화된 명상에 대한 균형있는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올바른 수행을 통해야 인간의 실존적 갈증은 근본적으로 해소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