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물 속 벌레
불법승 삼보에 기증된 사찰의 토지와 건물 및 주요 물품 등을 사방승물(四方僧物) 또는 시방승물(十方僧物)이라 한다. 특정 지역의 스님들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방천지 모든 스님에게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즉 개인의 사유물(私有物)이 아니라 공유물(共有物)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공유물을 사유물처럼 사용하면 어떤 과보를 받을까? 《현우경》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부처님께서 왕사성 기사굴산에 머물고 계실 때 일이다. 왕사성 성곽 옆에 더러운 웅덩이가 하나 있었다. 오물을 처리할 시설이 마땅치 않았던 가난한 사람들이 똥오줌이며 온갖 쓰레기와 생활하수를 버리는 바람에 그 웅덩이에서는 항상 악취가 진동하였다. 거품이 버글거리고 시꺼멓게 썩어가는 그 똥물에 큼지막한 벌레가 한 마리 있어 사방팔방 똥물을 헤집으며 돌아다녔다. 그 벌레는 뱀을 닮은 흉측한 생김새에 다리가 네 개 달려 있었다.
어느 날 부처님께 비구들과 함께 왕사성으로 가시다가, 그 웅덩이 곁에서 걸음을 멈추고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들은 혹시 이 벌레가 전생에 어떤 업을 지었는지 아는가?”
비구들이 말하였다.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들어라. 내 너희들에게 저 벌레가 전생에 지은 업을 말해 주리라.
아득한 옛날 비바시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여 중생을 두루 교화하고 열반에 드시자, 비바시 부처님을 따르던 비구 10만 명이 한 산을 의지하여 한가롭게 살았다. 그 산은 나무가 울창하고 꽃과 열매가 무성하며, 숲속 오솔길 사이로 맑은 샘물이 흐르고, 목욕할만한 널찍한 연못도 있어 수행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그래서 비구들은 그곳에서 부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부지런히 수행하였다.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알려주신 해탈과 열반을 조금씩 맛보면서 서로
어우러져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보물을 찾아 바다로 가던 500명의 상인이 그 산을 지나게 되었다. 상인들은 고요한 침묵 속에서 선정을 닦는 수행자들의 맑은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기들에게 가득한 욕심이 그들에게서는 보이지 않고, 자기들에게는 가득한 두려움 또한 그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었다. 환희심이 일어난 상인들은 나무 아래로 다가가 나이 지긋한 한 비구에게 예배하고 청하였다.
‘저희가 여기 계신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
비구는 달빛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상인에게 말하였다.
“이건 나의 것이야!” 하고 생떼를 부린다면, 이는 악취를 풍기는 짓이고, 주변을 오염시키는 짓이고, 똥물 속을 헤집는 짓이다. 이기심으로 병들어가는 세상, 꼭 돌아봤으면 좋겠다.
‘저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혹 공양을 올리고 싶다면 다른 분께 여쭈어보십시오.’
곁의 비구에게 다가가 말씀드려도 그의 대답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다른 분께 여쭈어보십시오.’
차례로 물었지만, 숲속 수행자 중 누구도 선뜻 공양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상인들이 젊은 비구에게 물었다.
‘저희가 공양을 올리겠다는데도 스님들께서 한사코 거절하시는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그러자 젊은 비구가 말했다.
‘여러분은 장삿길에 나선 분들입니다. 먼 길을 걸어 바다까지 가야 하고, 또 험한 바다를 건너야 합니다. 그러자면 많은 경비가 필요합니다. 지금 여러분 주머니에 조금의 여유가 있다고 저희가 덥석 받는다면, 그건 염치없는 짓입니다.’
숲속 수행자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한 상인들은 이별을 고하며 비구들에게 말씀드렸다.
‘저희가 목표를 이루고 무사히 돌아오면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그때는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제야 비구들은 그들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떠난 500명의 상인은 무사히 바다에 도착하였고, 바닷길에서 폭풍도 만나지 않았고, 값진 보석을 많이 채취하였고, 돌아오는 길에 도적 떼도 만나지 않았다. 500명의 상인은 크게 기뻐하며 각자 자신의 보석 중 가장 값진 것을 하나씩 모아 500개의 보석을 대중 스님들께 보시하였다.
‘이것을 스님들께 공양하오니, 약속대로 받아주십시오.
대중 스님들의 식량이나 필요한 물품을 마련하는 데 사용하십시오.’
비구들은 상인들에게서 받은 보물을 마마제摩摩帝라는 비구에게 맡겼다. 왜냐하면, 그 비구가 가장 힘이 세고 또 셈도 빨랐기 때문이다. 얼마 후 식량이 바닥나자 비구들이 마마제를 찾아갔다.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맡겨둔 보석을 주십시오.’
그러자 마마제가 눈알을 부라렸다.
‘이건 내 거요, 왜 당신들이 달라 말라는 거요?’
비구들은 그의 억지를 당할 수 없자, 숲속 최고 어른인 유나(維那) 스님께 찾아가 부탁했다. 유나 스님이 마마제에게 말하였다.
‘상인들이 대중 스님들께 보시한 것을 당신에게 가지고 있으라 한 것이지, 당신에게 준 것이 아니다. 이제 대중 스님들의 식량이 바닥났으니, 그것으로 보충해야 하지 않겠는가?’
마마제가 화를 내면서 고함을 쳤다.
‘너희들은 똥이나 처먹어라. 이건 나의 것이다!’
마마제의 횡포에 실망한 비구들이 산을 떠나기 시작했고, 결국 그 큰 산에 마마제 혼자만 남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잠시 침묵하셨다가 다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마마제는 그 과보로 죽은 뒤 아비지옥에 떨어져 버글버글 끓는 똥물 속에서 92겁을 보냈다. 그리고 그 지옥에서 나와 지금 이 똥물 속 벌레로 태어난 것이니라.”
어찌 승물(僧物)만 그럴까? 넓게 보면 세상은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생명체의 공유물이다. 잠시 사용하고 있을 뿐, 본래 내 것이 아니고 영원히 나의 것으로 남을 수도 없다. 너무도 명백한 이 사실을 외면하고 “이건 나의 것이야!” 하고 생떼를 부린다면, 이는 악취를 풍기는 짓이고, 주변을 오염시키는 짓이고, 똥물 속을 헤집는 짓이다. 이는 벌레나 할 짓이지, 사람이 할 짓은 아니다. 이기심으로 병들어가는 세상, 꼭 돌아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