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속이야기

시비왕과 비둘기

아득히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시비왕尸毘王이었을 때 이야기이다. 시비왕은 매우 자비로워 모든 중생을 자식처럼 사랑하였다. 도리천忉利天의 왕 석제환인釋提桓因이 그 소문을 듣고 시비왕의 자비심을 시험해 보려고 부하 비수갈마毘首羯磨에게 명령하였다.

“너는 비둘기가 되거라. 내가 매가 되어 너를 쫓으리니, 너는 겁을 먹고 왕의 겨드랑 밑으로 들어가거라.”

비수갈마가 눈과 발이 붉은 한 마리 비둘기로 변하자, 석제환인이 곧 매로 변해 급히 비둘기를 뒤쫓았다. 비둘기는 곧장 시비왕의 겨드랑 밑으로 들어가 눈알을 굴리고 벌벌 떨면서 공포에 질려 울부짖었다. 그때 사나운 매가 근처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시비왕에게 말했다.

“그 비둘기를 돌려주시오. 그놈은 내 것입니다.”

시비왕이 매에게 말했다.

“비둘기가 스스로 내 품에 들어왔으니, 이 비둘기는 너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다. 나는 ‘모든 중생을 받아들여 모두를 제도하겠노라’라고 서원을 세웠다. 이 비둘기는 줄 수 없다.”

그러자 매가 따졌다.

“저 비둘기만 중생이고 저는 중생이 아닙니까? 저 비둘기만 불쌍하고, 먹이를 빼앗겨 굶어 죽을 처지에 놓인 저는 불쌍하지 않습니까?”

시비왕이 물었다.

“너는 어떤 음식을 바라는가? 내가 대신 너에게 음식을 주리라.”

그러자 매가 말했다.

“저는 피가 뚝뚝 흐르는 뜨끈뜨끈한 고기가 아니면 먹지 않습니다.”

왕은 곧 사람을 불러 칼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허벅지를 베어 피가 철철 흐르는 살을 매에게 건넸다. 그러자 매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왕께서 싱싱한 고기를 주신 것은 고맙지만 무게도 비둘기만큼 주셔야 마땅합니다. 왕께서는 저를 속이지 마십시오.”

그러자 왕이 말했다.

“저울을 가져오너라.”

왕은 한쪽에 비둘기를 올리고, 한쪽에는 자신의 허벅지에서 베어낸 살덩이를 올렸다. 그러자 비둘기 쪽으로 저울 축이 기울었다. 왕은 사람을 시켜 자신의 다른 쪽 허벅지살도 마저 베게 하였다. 그리고 그 살덩이를 저울에 올렸다. 하지만 비둘기 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 종아리, 두 팔, 두 가슴, 목과 등의 살까지 베어 올려도 저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왕이 비둘기를 대신해 자신의 살을 매에게 준다는 소문이 퍼지자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이에 신하들이 왕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사람들을 막자, 왕이 말했다.

“저들을 막지 말라.”

마침내 시비왕은 온몸으로 비둘기를 대신하고자 피 묻은 손으로 저울을 잡고 올라서려 하였다.

그러자 매가 처량한 눈빛으로 시비왕에게 말했다.

“저 비둘기가 도대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시비왕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불쌍한 비둘기가 나에게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데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돌아보니, 나는 한량없는 세월에 수없이 많은 생사生死를 반복하였다. 그러면서 오로지 나 하나 살겠다고 모진 악행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남의 사정을 살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선행은 실천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선행을 실천해 나의 운명을 스스로 바꾸리라.”

시비왕은 손으로 저울을 잡고 기어오르려 하였다. 하지만 살이 없고 힘줄마저 끊어져 스스로 몸을 가눌 수조차 없었다. 왕은 곁의 신하들에게 부축해 달라고 명하여 겨우 저울로 올라섰다. 그러자 구경하던 하늘나라 신들과 아수라와 사람들이 큰 소리로 칭찬하였다.

“한 마리 작은 새를 위해 자신의 삶과 생명을 아끼지 않는다니, 참으로 희유하구나.”

그때 대지가 진동하고 바다에서 큰 파도가 일었으며, 마른 나무에서 꽃이 피고 하늘에서 향기로운 비가 흩날렸다.

매가 다시 시비왕에게 물었다.

“당신은 괴롭지 않습니까? 혹시 후회되지는 않습니까?”

저울에 앉은 시비왕이 온화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나는 괴롭지 않고, 후회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어려운 선행善行을 실천한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또 기쁘기 한량없구나.”

“사실입니까? 누가 당신 말을 믿겠습니까?”

그러자 시비왕이 합장하고 하늘을 우러르며 말했다.

“내 마음을 저 하늘은 알리라. 하늘이여, 제 말이 사실이라면 저의 몸이 본래대로 돌아오게 하소서.”

말이 끝나자마자 시비왕의 몸이 본래대로 회복되었다. 매와 비둘기는 감탄하며 곧 석제환인과 비수갈마의 모습으로 돌아와 시비왕을 찬탄하였다.

“당신은 반드시 부처님이 되실 것입니다.”

석제환인과 비수갈마는 제각기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얼굴이 곧 일기장이다. 나이 40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으니, 관상觀相은 가히 무시할 바가 아니다.

거울을 보자. 선행과 공덕으로 나의 얼굴에 복덕상이 늘어나고 있는지, 악행과 불만으로 흉상이 늘어나고 있는지, 자주 돌아보자! 부처님 가르침을 배웠다면, 32상은 갖추지 못하더라도 부드러운 눈매와 미소가 달린 입꼬리 정도는 성취해야 하지 않을까?

Related Article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Check Also
Close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