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속이야기

인욕선인(忍辱仙人) 이야기

부처님께서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시고 왕사성 대나무숲에서 교화를 펼칠 때 일이다. 부처님이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세상 사람들은 그의 제자들을 부러워하며 앞다투어 칭찬하였다.

“아약 교진여 등 다섯 비구는 참으로 복이 많다. 부처님의 첫 번째 제자가 되어 세상 누구보다 먼저 해탈의 맛을 보았으니.”

그러면서 말하였다.

“저들은 전생에 부처님과 어떤 좋은 인연이 있었기에 남보다 먼저 부처님 법문을 듣고, 꿀처럼 달콤한 해탈을 먼저 맛보게 되었을까?”

그때 비구들이 세상 사람들의 칭송하는 말들을 듣고, 부처님께 나아가 그 사실을 자세히 아뢰었다. 그리고 물었다.

“저희도 궁금합니다. 부처님, 저 다섯 비구는 과거 부처님과 어떤 복된 인연이 있었습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저들과 나 사이에는 좋은 인연이 아니라 아주 고약한 인연이 있었다.”

비구들이 그 악연을 궁금해하자 부처님께서 옛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셨다.

“아득한 옛날, 이 염부제에 바라나시라는 나라가 있었고, 당시 왕의 이름은 가리(迦梨)였다. 그때 그 나라에 찬제파리(羼提波梨)라는 수행자가 있었다. 그는 500명의 제자와 함께 숲속에 살면서 인욕(忍辱)을 수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가리왕이 부인과 궁녀들을 데리고 그 산에 들어가 놀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노곤해진 왕은 그늘에 누워 쉬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궁녀들은 잠시 왕의 곁을 떠나 꽃이 만발한 숲을 산책하였다. 그러다 숲속에 단정히 앉아 깊은 사색에 잠긴 찬제파리를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궁녀들은 공경하는 마음이 생겨 온갖 꽃을 따다 그 수행자에게 흩뿌렸다. 그리고 그의 앞에 둘러앉아 설법을 들었다.

잠에서 깨어난 왕은 궁녀들이 보이지 않자 네 명의 대신을 데리고 궁녀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 자신의 아름다운 여인들이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숲속 젊은 수행자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가리왕의 가슴에서 질투심이 불길처럼 치솟았다.

왕은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

‘너는 성인들만이 가지는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을 얻었는가?’
‘얻지 못하였습니다.’
‘네 가지 선정은 얻었는가?’
‘얻지 못하였습니다.’

왕이 벌컥 화를 내면서 험상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공덕을 얻지 못했다면 너는 음탕한 마음이 그득한 일개 범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네가 이런 으슥한 곳에서 나의 여인들과 함께 있었으니 너를 용서할 수 없다.’

왕이 곧 칼을 빼 들고 말하였다.

‘사실대로 말하라. 너 여기서 나의 여자들과 무슨 짓을 했느냐?’

수행자가 합장하고 공손히 말하였다.

‘저는 이 숲에서 인욕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인욕을 수행해? 네가 정말 잘 참는지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다.’

왕은 곧 칼로 그의 두 손을 잘라버렸다. 그리고 물었다.

‘너 여기서 저 여자들과 무슨 짓을 했느냐?’

‘저는 인욕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왕 곁에 있던 네 명의 신하까지 화를 내며 달려들어 그의 두 다리를 잘라버렸다.

‘너 뭐 하는 놈이냐?’

‘인욕을 닦는 사람입니다.’

가리왕와 네 명의 신하가 그의 귀와 코까지 잘라버렸지만, 숲속 수행자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저는 인욕을 닦는 사람입니다.’

그때 그 산에 있던 여러 용과 귀신들이 그 광경을 보고는 분노하였다. 용과 귀신들은 구름과 안개를 자욱이 일으키고 천둥 벼락을 치면서 왕과 네 명의 신하를 해치려 하였다. 그러자 수행자가 하늘을 우러러 말하였다.

‘만약 저를 불쌍히 여기신다면 부디 저 왕을 해치지 마십시오.’

용과 귀신들이 눈물지으며 사지가 갈가리 찢어진 수행자에게 물었다.

‘이런 모욕을 당하고도 원망하거나 복수하려는 마음이 없읍니까?’

‘제 마음은 변함없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왕이 두려움에 떨면서 땅에 엎드렸다.

‘제가 실수로 큰 선인을 비방하고 욕보였습니다. 부디 가엾이 여겨 저의 참회를 받아 주소서.’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진 숲속 수행자가 미소 지으며 가리왕에게 말하였다.

‘저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왕께서 이런 짓을 하게 된 것은 다 여자에 대한 소유욕과 질투심 때문입니다. 먼 훗날 제가 부처님이 된다면 지혜의 칼로 가장 먼저 당신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싹을 끊어주겠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부처님께서 웃으며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때 숲속의 수행자 찬제파리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가? 그가 바로 지금의 나이다. 그때 그 나를 해친 가리왕과 네 명의 대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가? 아약 교진여와 네 비구이니라. 나는 그 일을 겪으며 ‘깨달음을 얻는다면 먼저 저들부터 제도하리라’고 서원을 세웠다. 그래서 도를 이룬 후 저들을 먼저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니라.”

선인(善因) 선과(善果)요 악인(惡因) 악과(惡果)라 나쁜 인연은 반복되기 쉽다. 만약 악조건을 극복하고 좋은 결과를 끌어냈다면, 거기에는 인욕(忍辱)과 서원(誓願)이라는 묘약이 첨가된 것이다. 그러니,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보살이라면 모욕을 참고 또 참아야 한다. 그리고 부처님 제자답게 이렇게 서원할 일이다.

“나에게 침을 뱉는 당신이 다음에는 나를 보고 가장 먼저 환하게 웃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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