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속이야기

한 뼘의 자비

율장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가 가류다이(迦留陁夷)이다. 그는 석가족 출신으로 부처님과 같은 날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죽마고우로 지낸 친구였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고 마가다국 왕사성(王舍城)에서 법륜을 굴리기 시작했을 때, 정반왕(淨飯王)의 명을 받아 부처님을 고향으로 초청하러 찾아간 사람 역시 그였다. 그는 부처님께 귀의하여 출가 수행자가 되었지만, 그의 눈에는 부처님이 ‘스승’보다 먼저 막역한 ‘친구’로 보였나 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율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자기 편한 대로 먹고 자는 일이 잦았다. 그런 가류다이는 다른 수행자들에게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수행자들이 부처님을 찾아가 가류다이의 방만함을 고발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류다이는 늙어가는 황소나 다름없구나. 그저 살만 뒤룩뒤룩 찔 뿐 지혜는 전혀 자라지 않는구나.”

부처님 말씀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가류다이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 한마디 꾸지람에 제정신을 차린 가류다이는 참된 수행자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였다. 가류다이는 늘 부처님 가까이에 머물면서 부처님을 모범으로 삼아 이른 새벽 부처님께서 잠에서 깨어나 침구를 정리하시면 자기도 따라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부자리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부처님께서 옷을 단정히 입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시면 자기도 따라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반듯한 걸음걸이로 거리를 거닐며 걸식하고, 부처님께서 적당한 양의 음식에 만족하며 식사하시면 자기도 따라 음식에 욕심내지 않고 적당한 양에 만족하고, 부처님께서 숲으로 돌아와 나무 그늘에서 좌선하시면 자기도 따라 근처 나무 아래 앉아 선정을 닦고, 부처님께서 선정에서 깨어나 천천히 숲을 거니시면 자기도 따라 숨소리마저 죽이고 조용히 숲을 거닐고, 깊은 밤 부처님께서 자리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시면 자기도 따라 잠을 청하였다. 그러다 보니 편리함과 편안함을 앞세워 자기 생각과 판단을 정당화했던 지난 삶이 모두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 어느덧 가류다이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평온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머무시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가류다이는 부처님을 따라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그리고 가사를 걸치고 발우를 든 단정한 차림새로 부처님을 따라 천천히 사위성으로 들어가 걸식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사위성에서 식사를 마치고, 안타(安陀) 숲으로 들어가 한 나무 아래에 니사단(尼師壇, niṣadana)을 펴고 앉아 선정에 드셨다. 가류다이 역시 부처님을 따라 안타 숲으로 들어가 부처님으로부터 멀지 않은 한 나무 아래에 니사단을 펴고 앉았다.

니사단은 좌구(坐具) 즉 방석이나 깔개에 해당하는 물품이다. 수행자들에게 좌선(坐禪)은 주요 일과 중 하나이다. 그런데 부처님 당시 수행자들은 일정한 거처 없이 숲을 떠돌며 생활하였다. 그런 그들에게 좌선하기 좋은 깨끗한 방이나 마루 또는 의자나 탁자가 있을 턱이 없다. 그저 그늘 좋은 땅바닥이면 족했다. 그러다 보니 가시나 독초에 찔리고, 때로는 개미나 벌레들에게 쏘이고, 또 오물이나 젖은 흙에 옷이 더러워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몸과 옷을 보호할 수 있도록 바닥에 까는 천 즉 방석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셨다. 그리고 과욕을 부릴까 싶어 방석을 만들 때 천을 세 겹만 포개도록 정하고, 그 크기 또한 부처님 손바닥으로 가로는 한 뼘 반 세로는 두 뼘을 넘지 않도록 제한하셨다. 부처님은 손이 크고 또 길었다고 하시니 한 뼘을 곧 한 자로 계산하면 가로 45cm 세로 60cm쯤 될 것이다.

가류다이 키가 크고 몸집도 큰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가로 45cm 세로 60cm 방석은 너무 작았다. 양 무릎이 천을 벗어나 흙에 닿았고, 옷자락이 흘러내려 자꾸 흙바닥에 쓸렸다. 가류다이는 옷이 더러워질까 싶어 양손으로 옷자락을 붙잡아야만 했다. 옷에 신경이 쓰인 가류다이는 도무지 선정에 들 수 없었다. 그때 이렇게 생각했다.

“딱 한 뼘만 더 크면 참 좋을 텐데.”

예전 같았으면 곧바로 큰 니사단을 만들었을 것이다. 부탁만 하면 얼른 천을 보시할 친구도 많고, 또 자기는 다른 사람보다 몸집이 크니 큰 방석을 사용할 명분도 충분했다. 하지만 예전의 가류다이가 아니었다. 가류다이는 불편함에 이리저리 뒤척이면서도 혼잣말로 자신을 달랬다.

“부처님께서 작은 니사단을 사용하도록 한데에는 깊은 뜻이 있으실 게야.”

어느덧 해가 기울고 시원한 바람이 불자 숲속 수행자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하나둘 부처님 주위로 모여들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등불이 켜졌다. 선정에서 깨어난 부처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며 숲속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부터 기존 니사단 가장자리에 천을 한 뼘 덧대어 사용하도록 허락한다. 그리고 덧대는 천은 새 천이 아니라 기존의 천을 재활용하도록 하라.”

부처님의 계율은 어머니가 때리는 회초리와 비슷하다. 그 회초리의 따끔함에는 미움이 아니라 한없는 사랑 즉 자비가 배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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