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사랑
사랑, 해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찬란하고 경이로운 기쁨인지를.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이렇게 말한다.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런데 왜 부처님께서는 그 행복을 포기하라 하시고, 그 좋은 사랑을 “위험하다!” 경계하셨을까? 그 까닭을 알만한 이야기가 <<법구경 주석서>>에 나온다.
젊고 잘생기고 눈빛까지 또렷한 한 비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빤디따였다. 어느 날 빤디따가 음식을 탁발해 조용한 곳에서 먹고 있었다. 음식을 먹다 목이 마른 빤디따는 물을 얻으러 인근의 한 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에는 젊은 여인이 혼자 살고 있었다. 그녀는 빤디따를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다. 여인이 수줍은 얼굴로 물을 건네며 말했다.
“스님, 물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오세요. 다른 데 가지 마시고 꼭 이곳으로 오세요.”
수줍은 그 미소가 빤디따는 너무나 좋았다. 그날 이후 비구는 마실 물이 필요하면 꼭 그녀의 집을 찾았다. 빤디따가 올 때마다 여인은 한걸음에 달려나가 발우를 받아들고 그 발우에 깨끗한 물을 담아드렸다. 며칠이 지나 그녀는 빤디따에게 우유죽을 올리고, 또 며칠 뒤에는 자리를 펴고 쌀밥을 올렸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음식이 입에 맞으셔요?”
여인의 향기는 밥맛을 잊게 할 만큼 진했다.
“네, 맛있습니다.”
그러자 여인이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집에는 살림살이가 다 갖추어져 있는데 함께 살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는 애정 어린 눈빛으로 속삭였다.
“저는 스님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답니다.”
그날 이후,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비구는 나날이 핼쑥해져 갔다. 어느 날, 늘 생기가 넘치던 그가 넋 나간 표정으로 앉아있는 것을 보고 지나가던 스님이 물었다.
“어디 아프세요?”
그러자 빤디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스님, 저는 이제 출가 생활이 지겹습니다.”
빤디따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란 동료들이 그를 그의 스승에게 데려갔다. 스승이 까닭을 물었지만 빤디따는 출가 생활이 재미없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스승은 그를 부처님에게 데리고 갔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빤디따야, 출가 생활이 지겨운가?”
“네.”
“뭐가 불만스러운지 그 이유를 말해 보아라.”
빤디따는 대답을 주저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세속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할 생각인가?”
빤디따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부처님, 저를 사랑하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젊고 사랑스러우며 살림살이도 넉넉합니다. 그 여인이 저와 함께 살자고 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옛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마. 옛날에 총명하고 건장한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딱까실라로 가서 유명한 스승에게 궁술과 무술을 배웠다. 그 스승에게는 외동딸이 있었고, 외동딸은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스승도 능력이 출중한 그가 싫지 않아 자신의 딸과 결혼시켰다. 세월이 지나 모든 기술을 완벽하게 배운 젊은이는 패물을 잔뜩 지고 아내와 함께 고향인 베나레스로 향했다. 그러다 깊은 숲속에서 칼을 들고 덤벼드는 50명의 강도를 만났다. 젊은이는 화살을 쏘아 49명의 강도를 죽였다. 화살이 떨어지자 마지막 남은 두목을 맨손으로 때려눕히고 뒤엉켜 땅바닥에 구르면서 아내에게 소리쳤다.
‘여보, 내 칼을 주시오.’
칼을 들고 뛰어온 아내는 그 순간 두목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두목은 짙은 눈썹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미남이었다. 아내는 한순간에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아내는 칼을 남편에게 주지 않고 강도의 손에 쥐여주었다. 두목은 그 칼을 잡자마자 남편을 찔러죽였다.
두목은 남편 대신 자신을 선택한 그 여인이 싫지 않았다. 그래서 빼앗은 패물을 짊어지고 여인과 함께 길을 나섰다. 그렇게 한참 길을 가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여자는 남편을 죽인 여자다.’
큰 강이 나타나자, 강도가 여인에게 말했다.
‘물살이 거세 당신 혼자서는 건널 수 없소. 내가 패물을 강 건너에 갖다 놓고 올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시오.’
패물을 지고 강을 건넌 강도는 돌아올 생각은 않고 등을 보이며 멀어졌다. 여인이 당황해 소리쳤다.
‘저를 데려가야지요.’
그러자 뒤돌아선 강도가 비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생판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반해 오랫동안 함께 산 남편을 버린 여자요. 나보다 멋진 남자가 나타나면 또 첫눈에 반해 나까지 버릴 것 아니요. 나는 지금부터 내 길을 갈 것이니, 당신도 당신의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시오.’”
부처님께서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빤디따를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빤디따야, 아내에게 배신당하고 아내의 손에 죽임을 당한 그 불쌍한 남편이 누구인지 아느냐?”
“누굽니까?”
“바로 전생의 너이니라.”
놀란 얼굴에 말을 잊은 빤디따에게 부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너와 살고 싶다는 그 여인은 전생에 너의 아내였다. 그녀는 전생에도 너를 유혹하였고, 금생에도 너를 유혹하였다. 그녀는 전생에 다른 사랑에 빠져 너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금생에 다시 이런 일이 없을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빤디따는 세속으로 돌아가려던 생각을 버렸다.
사랑은 찬란한 순간이다. 그 순간이 영원히 지속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가 변하지 않으면 ‘내’가 변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 그래서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