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집들이 염주가 실에 꿰어있듯 이어져 있어 염주동”
2002년 월드컵 축구 4강 신화를 기억할 것이다. 반만년 한민족 역사에서 최고의 순간 가운데 하나이다. 바로 광주 서구 염주동 염주체육공원에 있는 월드컵 축구경기장에서 이룬 신화이다. 모두들 이 지역을 염주동이라고 부르지만 실제 염주동은 행정구역에 나오지 않는다.
행정상으로는 광주 서구 화정동 일대로 지금의 짚봉터널 주위가 대부분 염주동이다. 짚봉산은 예로부터
기우제를 지냈던 명산이다. 짚봉산에서 내려다보면 마을의 형상이 염불할 때 손으로 하나, 둘 돌리며 숫자를 세는 염주와 같다하여 구술 주(珠)자를 써서 주동(珠洞), 또는 염주동이라 불렀다. 짚봉산을 자연마을이 에워싸고 있고, 민가가 염주알 꿰어있듯이 연이어 자리해 있었던 듯하다.
염주골의 진산인 짚봉산에는 목탁(木鐸)등 대촉(大燭)등 등 불교와 관련된 지명이 함께 있었다. 또한 염주사라는사찰도 있었고, 근래까지만 해도 삼층석탑과 석등, 동자석 등 석조유물이 남아있었다. 인근에 연꽃이 피는 연화지라는 방죽이 있었으나 모두 개발에 밀려나고 말았다. 염주마을은 이미 500여 년 전에 형성된 광주의 토박이 마을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다행히 수령 400여 년 된 당산나무가 남아있어 염주마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염주정이라는 당산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있는데 흥미로운 설화가 전한다. 옛날 염주동으로 낙향한 고관대작이 병이 났다. 누군가 나무를 심으면 좋다고 하여 팽나무를 심었는데 정말로 병이 나았다. 팽나무는 신령스런 기운이 있어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가 되었다. 마을에 도적이 들더라도 도적은 도망가지 못했다. 도적이 밤새도록 당산나무 주위를 빙빙 돌다가 날이 밝으면 도둑질한 물건을 당산나무 앞에 두고 가는 일이 종종 생겼다. 마을사람들은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당산나무 주위에 왼손으로 꼰 새끼줄로 금줄을 치고 목욕재개한 뒤 당산제를 지냈다.
이처럼 염주동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지금도 염주동사거리, 염주체육관, 염주동성당, 염주초등학교, 염주주공아파트 등 염주라는 이름이 많이 남아있다. 인근에 있는 남구 주월동도 염주동의 일부였는데 염주마을의 주(珠)자와 월산마을의 월(月)자를 따서 지은 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