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묵당 편지
태풍이 지나간 무등산 새인봉
집중호우, 살인적인 폭염 그리고 다시 태풍입니다.
뭐 하나 얌전히 지나가는 것이 없습니다.
과거 우리들의 업이 고스란히 과보가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산비둘기 두 마리가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뭐라도 먹을 게 있나 싶어 풀밭을 서성이고 있습니다.
인간들이야 인과응보라지만 저들은 단지
우리들과 같은 시공간을 공유한다는 이유만으로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기후의 변화가 격렬할 수록 참회하는 마음도 덩달아 커지고,
아울러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여타 중생들에게 미안한 마음 역시 커집니다.
살아있는 모든 중생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2023년 8월 10일 오전 6:37.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입니다.
“역대급”, “전례없는”, “백년만의”, “최악의 경로” 등
온갖 요란한 수식어를 달고서 제6호 태풍 ‘카눈’이 이제 막 한반도에 상륙하고 있습니다.
새벽부터 굵은 빗줄기 소리가 끊이질 않더니, 갈수록 더 쏟아붓고 있습니다.
게다가 조금 전부터 취백루 앞 배롱나무가
개업한 가게의 풍선 인형처럼 신나게 몸을 흔들어 대고 있습니다.
지난 7월 25일, 한달이 넘도록 줄기차게 들이부었던 장마가 물러가자
거짓말처럼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반가움도 잠시, 곧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이 온 세상을 뒤덮었습니다.
폭염은 하루도 쉬지 않고 보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