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묵당 편지

풍찬노숙(風餐露宿)하시는 불보살님

얼마 전, 연수 교육으로 공주 갔다 돌아오는 길에 국립공주박물관에 들렀습니다. 횅할 정도로 넓은 마당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일렬로 늘어서 계신 여러 불·보살님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모두 일곱 분이 계셨는데 그중에 네 분은 머리가 잘려 나가고 없습니다.

처음 본 순간, 왜 바깥에 이렇게 횅하게 전시해 놓았는지 의아했습니다. 간혹 박물관의 마당에 조경과 어울리게 석탑을 전시해 놓은 경우는 더러 보았지만, 불보살님들을 몰아서 놓은 건 처음 보는 풍경입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아무런 설명도 없었습니다. 머리가 잘린 것도 통탄할 일인데, 이름도 없이 어디서 왔는지 그 내역도 없이 덩그러니 노천 마당에 계셨습니다.

불보살님들에게 박물관은 일종의 난민수용소 같은 곳입니다. 게다가 머리까지 잘리는 끔찍한 수모를 당한 분들입니다. 기왕 박물관에 모실 거면 친절한 설명과 함께 모진 풍상을 피할 수 있는 실내로 모시면 좋을텐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매번 박물관에서 부처님을 친견할 때마다, 불자된 도리로 매우 죄송스럽고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산하 구석구석에 집도 절도 없이 풍찬노숙하시는 불보살님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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