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묵당 편지

가을을 기다리는 꽃무릇

9월호 소식지 인사말에 들어갈 사진을 고르느라 어젯밤 내내 지난 앨범을 뒤적거렸습니다.

매년 9월호에 실리는 사진은 청명하게 빛나는 파란 하늘, 아니면 도량 곳곳에 흐드러지게 핀 꽃무릇이 대부분입니다. 고통스럽고 지겨웠던 폭염을 밀어내고 우리 곁으로 찾아오는 가을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9월은 본격적인 가을은 아니지만 가을 느낌이 완연해지는 그런 계절입니다.

실제 9월의 모습이 간간이 들어옵니다. 태풍이 지나간 뒤 무섭게 포효하는 계곡도 있고, 인정사정없이 복구 중인 수해 현장을 다시 덮치는 거친 물살도 있습니다. 현실의 9월은 곳곳에 널부러진 여름의 상흔 때문에 지친 모습입니다.

24년 8월 14일, 꿈은 멀리 있고 현실은 매일 기록을 갈아치우는 폭염 한가운데입니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선풍기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었는데, 올해의 열대야는 이런 오래 묵은 괴담조차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도 더위는 가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꿈꾸는 9월, 지난 과거 속의 9월, 곧 다가올 24년의 9월.

시간이라는 기차는 항상 미래를 향해서만 달려갑니다. 되돌아오는 법이 없습니다. 한 달 뒤면 9월의 한가운데입니다. 또 어떤 풍경이 창밖을 스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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