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묵당 편지
공양간에서 함께한 많은 시간을…
사람이 죽으면 죽은 이의 영혼을 기리고 추모하는 의식을 치릅니다. 산 자들이 죽은 이에게 치르는 장례의식입니다. 장례의식은 죽은 이를 처음 왔던 곳으로 되돌려 보내는 산 자들의 의식입니다.
지진, 쓰나미, 산사태, 홍수, 태풍, 화재, 전쟁, 대형 참사 등으로 사람이 떠나간 곳은 폐허가 됩니다. 폐허로 남아 있는 것은 역시 사람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떠나 폐허가 되었고, 사람들의 온기와 감정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에, 여전히 폐허로 남아 있습니다. 인간의 부재가 건물에게는 곧 죽음입니다.
건물은 온전히 인간의 손길로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을 품고, 인간과 함께, 생을 이어왔습니다. 사람이 자연에서 가져온 것은 다시 사람의 손으로 돌려주어야 합니다. 건물들 역시 처음 왔던 곳인 자연으로 되돌아가려면 살아있는 인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폐허에 대한 추모는 곧 폐허를 함께 했던 이들과의 시간에 대한 추모입니다. 인간의 것은 인간에게, 자연에서 온 것은 자연으로 되돌리는 것이 인간이 할 일이고, 그것이 폐허를 떠나 보내는 의식입니다.
공양간이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공양간에서 함께 했던 많은 시간들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김장울력, 동지울력, 새알 빗기… 그동안 평범한 일상이어서 관심 가지지 않던 시간들입니다..
삼가 마음 깊이 공양간의 죽음을 애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