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법문

불기 2568(2024)년 부처님오신날 봉축사

불기 2568년 갑진년의 초파일 표어는 ‘마음의 평화, 행복한 세상'(Peace of Mind, Happiness of the World)입니다.  

부처님오신날 봉축위원회는 “올해 봉축표어에는 수행과 명상을 통해 불자와 모든 국민이 마음의 평화와 정신 건강을 지키고, 사회적 정진을 통해 행복한 세상을 이루어 가자는 의미를 담았다.”라고 밝혔습니다.

마음이 평화로우면 세상이 행복으로 가득 찬다는 의미인 듯합니다. 그런데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이 잘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평화’라는 말은 주로 사회적 차원에서 쓰이는 용어이고, ‘행복’은 개인의 감정과 관련된 말 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평화롭고, 세상은 행복하다고 하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싶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마음은 행복하고 세상은 평화롭다’고 하면 느낌이 다가올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조금 어색합니다. 마음이 행복한데 세상이 평화롭다는 것은 또 무슨 맥락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바꾸어 보았습니다. ‘세상은 평화로우니 마음이 행복하다’. 이제 좀 말이 되는 듯합니다. 누구나 쉽게 수긍할 수 있는 통상적인 표현입니다.

‘평화’는 전쟁이나 갈등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대립이나 갈등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내재된 갈등이 있어도 권력을 가진 자가 억누르면 겉으로 보기에만 평화롭게 비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결코 세상이 평화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힘으로 억누르는 평화는 일시적입니다. 힘이 떨어지면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으로 세상이 평화로운지 보려면, 평온한 겉모습이 아니라 사람들이 행복한지를 보아야 합니다. 세상은 평온하기만 한데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없다면 결코 그 사회는 평화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여전히 소소한 갈등과 대립이 세상 곳곳에서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사회에 활기가 넘치고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해한다면 그 사회는 평화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쟁의 포화 한가운데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아와 굶주림에 목숨이 위협받는데도 행복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구조화된 가난 때문에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사람에게 행복은 그저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비굴하고 기만에 가득 찬 일상을 살아야 한다면 이 또한 행복한 삶은 아닙니다. 개개인의 행복은 그 사회가 얼마나 평화로운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입니다.

‘마음의 평화, 행복한 세상’ 행복한 세상이란 세상이 행복하다기 보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행복한 세상이라는 말 앞에 ‘모두가’라는 단어가 생략된 것입니다. 따라서 올해 봉축표어는 마음의 평화는 모두의 행복을 여는 열쇠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고통스러운 현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을까요? 고통스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꿋꿋하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마음이 현실과 전혀 별개의 그 무엇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보고 듣는 모든 것들, 즉 우리의 현실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고 있습니다. 마음은 보고 듣는 그 모든 것입니다. 마음은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입니다. 또한 마음은 단지 느끼고 생각만 하지 않고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행동합니다. 이 모든 것이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처한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별개의 존재가 아닙니다. 마음 자체가 세계의 일부이며, 이 세계는 우리 마음이 드러난 모습입니다.

건강한 마음은 현실을 떠나지 않고, 현실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입니다. 현실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은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주도하고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이 세계는 마치 한 몸과 같습니다. 마음먹은 대로 행동함으로써 세상이 변화하고, 세상이 변화함에 따라 우리의 느낌과 생각도 달라집니다. 어느 것이 먼저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건강한 마음은 세계의 일부이자, 이 세상과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몸입니다. 건강한 마음에서 평온한 마음, 마음의 평화가 나옵니다. ‘사회적 정진’이란 나와 이 세상이 둘이 아님을 자각하고 세상의 변화를 통해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변화시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실천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하나 속에 모두 들고 모두 속에 하나 들며
하나가 곧 모두이고 모두가 곧 하나라네
한 점 크기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담겨있고
낱낱 모든 티끌에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우리들의 실천이 곧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지름길입니다. 건강한 마음을 유지하는 수행이 곧 이 사회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불기 2568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이 세계는 하나의 꽃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깁시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라는 이 진리를 실천하는 삶을 이어가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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