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법문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2

2019년 10월 18일 초하루법회

소유욕의 내막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계를 예로 들어봅시다. 제가 ‘이건 내 시계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내 시계가 됩니까? 시계 자체에 내 것임을 알 수 있는 뭔가가 있습니까? 만지면 내 것이라고 하는 촉감이 있습니까? 이 시계가 내 것이라고 하는 소리를 냅니까? 전혀 없습니다. 내가 그냥 내 것이라 생각할 뿐입니다.

누군가는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샀으면 내 것이지!”

만약 내가 번 돈으로 차를 사서 애인을 줬다면 내 차가 아니라 애인 차입니다. 설령 애인이 아니라 내가 타고 다닌다고 해도 지금 잠깐 내가 타고 다니는 것일 뿐입니다. 차 자체에 내 것이라는 표시는 없습니다. 그러니 ‘내 돈을 썼으니까 내 것이다’라는 것은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땅은 어떤가? 이건 내 땅이고 등기부등본에 올라있고 나라에서 내 땅이라고 인정한 서류도 있다. 그렇다면 땅은 내 것이지 않은가!”

정말 그럴까요? 땅에는 내 것이라는 표시가 전혀 없고 그렇게 약속한 것일 뿐입니다. 국가에서 서류로 증명한다고 해서 땅 자체에 내 것이라는 물리적인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 땅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들을 수 있는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서류만 바꾸면 내 땅이 남의 땅이 되기도 하고, 남의 땅이 내 땅이 되기도 합니다. 땅은 그대로지만 종이에 기록된 내용만 바뀔 뿐입니다.

내 것이라는 것은 다만 생각입니다. 내 것이라고 내가 생각할 뿐입니다. 조금 더 확대하면 그런 내 생각을 사회가 인정해 주고 국가가 법적으로 보장해 줄 뿐입니다.

내 것이라는 생각, 그저 생각

지금 내가 가진 내 것은 무엇이 있을까? 마음속으로 떠올려 보고, 내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진짜로 내 것인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차분하게 생각을 해보면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내 생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걸 누가 모르나? 스님이 지금 소유, 애착 이런 것을 버리라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 아니야. 뻔하지 뭐. 그런데 누가 몰라서 안 하나? 안 되니까 안 하는 거지. 안다고 할 수 있으면 다 도인이게?’

여러분은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아는데 잘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안 되는 것은 모르는 것입니다.

수박을 예로 들어봅시다. 수박을 처음 본 사람에게 수박 맛을 말로 설명해 줬다고 합시다. 그때 설명을 들은 사람이 ‘아, 수박 맛이 이런 거구나’라고 한다면 그가 수박 맛을 아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수박을 먹어봐야 비로소 수박 맛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 하드디스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데이터가 많아도 그 데이터로 무언가를 해야만 스마트폰이 되고 내비게이션이 되는 것이지, 안 하면 단순한 마그네틱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일본의 사회학자 아베 긴야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안다는 것은 그것에 의해서 자신이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발심하는 것이고 한 번 발심하고 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미미하더라도 직접 해보는 것입니다. 안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게 아닙니다. 직접 해야 합니다.

‘내 안에 소유욕이 있구나’, ‘가족에 대한 애착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면 소유욕과 애착을 버려야 합니다. ‘누가 몰라서 안 하나! 안 되니까 안 하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 안의 소유욕이나 애착의 실체를 제대로 본인이 파헤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내 안에 있는 불안함을 대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하면서 별문제 아닌 것으로 넘어가는 것은 모르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유에 대한 애착을 버렸다고 칩시다. ‘내 차도 내 것이 아니라 잠깐 타고 다니는 것일 뿐, 우리 가족도 각자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순리야,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어!’라고 생각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과연 불안감이 사라질까요? 찬찬히 살펴보십시오. 내가 아무것도 소유한 것이 없다고 확신하는 그 순간조차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나에 대한 애착이 두려움을 낳는다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하여도 목숨만은 죽는 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합니다. 살아있다는 말은 목숨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소유와 애착을 버려도 끝까지 남는 것이 바로 이 목숨에 대한 애착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에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불안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부처님이 집착, 애착을 버리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숫파니파타』 게송 776~777>

연못의 물고기는 하루하루 물이 바싹바싹 말라가는 것을 보면서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습니다. 차라리 불안감에 벌벌 떨면 좀 낫습니다. 철부지 아이들은 당장의 욕망에 눈이 멀어 물이 말라가는지도 모르고 삽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한 우리의 삶은 물이 말라가는 연못의 물고기와도 같습니다. 물고기에게 물은 생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이 먹을수록 힘이 없을수록 생명의 불꽃은 사그라듭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우리들의 처지는 물이 말라가는 연못의 고기와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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