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는 왜 하나요?
“왜 출가하는가?”라는 질문에 올바로 답하기 위해서는 그런 질문이 등장하는 사회적 배경을 충분히 이해해야 합니다. 우선 부처님 당시 출가는 어떠했는지 알아봅시다. 당시 인도사회에서 성직자 계급은 바라문이었습니다. 가장의 의무를 다한 바라문들에게 출가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기존 바라문과는 달리 부처님을 따라 수행하고자 하는 이들은 계급과 신분 그리고 성별을 가리지 않고 출가하였고, 부처님은 이들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현대 미얀마 같은 불교국가에서이의 출가 역시 지금 우리와는 많이 다릅니다. 우선 출가와 환속이 우리 사회와 달리 자유롭습니다. 또한 미얀마 사람들에게 출가는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은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가의식을 하면 친지들이 모여 축하해 줍니다. 가족이 모두 절에 와서 삭발하는 모습과 수계의식을 참관하고 의식을 주관하는 스님들께 보시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에는 어떠했을까요?
우선 불교국가였던 고려에서 출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숭유억불정책을 폈던 조선시대에 이르면 사정이 조금 달라집니다. 옛날 속담에, “고을 원님 셋이 굶어 죽어야 중이 하나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당시 백성들의 눈에 비친 사찰은 가난한 백성들보다는 살림살이가 윤택해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요즘도 보면 “점집에 가서 점을 보니 우리 아이를 절에 팔아야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나요?” 라고 상담하는 분이 가끔 있습니다. 언제부터 절에 아이를 판다는 생각이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 한 입이라도 줄이기 위해 아이를 절에 보내는 일이 자주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이렇듯 지금과 비교하면 생계형 출가가 많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요즘은 어떤가요? 우리나라는 20세기를 시작하며 모든 면에서 과거와 단절되었습니다. 그리고 서구식에 따라 거의 새롭게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앞장섰습니다.
80년대까지 소수의 정치군인과 법조계 인사, 경제관료 그리고 학자들이 이 나라를 이끌었습니다. 한편 한국불교는 조선말 경허 스님에 의해 간화선 중심의 선종 불교로 다시 한번 중흥하게 됩니다. 이런 흐름은 해방 이후까지 이어져 효봉 스님, 성철 스님같은 큰스님을 배출하였고, 이 스님들은 사회적으로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엘리트를 존중하던 당시 사회분위기와 간화선 중심의 불교 이미지가 결합되어 스님이란 고행도 마다하지 않고 용맹정진하는 수행자로 인식되었고, 출가는 보통 사람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1세기가 되면서 평범한 대중이 주도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습니다. 2021년 현재 우리나라의 종교인구는 40%에 불과합니다. (불교는 16%) 불교국가도 아니고, 일반 백성들의 정서 속에 불교가 깊이 뿌리내리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경제적으로도 이전보다 훨씬 더 윤택해졌습니다. 굳이 출가하지 않고도 불교의 수행을 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사회적으로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출가에 대한 인식은 지난 20세기와 또 사뭇 다릅니다. “사람이라면 먹고 싶은 것 먹고, 갖고 싶은 것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오손도손 사는 것이 인간적인 삶 아닌가. 구태여 금욕하고 고행해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지금은 이런 인식과 기존의 엘리트 수행자 이미지가 혼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1세기 들어 우리 사회에서의 스님의 역할도 변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수행 지원, 불교의 영역 확장 등이 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스님과 불교에 대해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를 올바로 이해한다면 출가에 대한 궁금증 역시 조금은 해소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