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불교 지명이야기

함평 고막다리

“사바 중생 피안으로 건네고자 고막대사 원력”

나주군 문평면과 함평군 학교면이 만나는 경계지점에 작은 하천이 흐른다. 목포-나주간 1번국도를 가로지르는 고막천(古幕川)이다. 고막원천으로도 부르는 이 하천은 장성 태청산(593m)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영산강과 합류한다. 고막천에는 우리나라에서 축조연대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다리인 함평고막천석교(보물 제1372호)가 있다. 고막다리, 똑다리, 떡다리로도 부르는 이 돌다리의 행정지명은 전남 함평군 학교면 고막리 629번지이다. 고막리, 고막원, 고막천, 고막다리 등 말머리에 공통으로 붙는 고막(古幕)은 이 지역에 살았던 스님의 법명에서 유래됐다. 700년전 무안 승달산 법천사에서 수행하던 덕 높은 고막대사이다. 고막다리에는 고막대사와 관련한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고막대사가 하천을 건너게 되었다. 그해 여름에 홍수로 다리가 쓸려가 고을 사람들은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아랫도리를 걷고 물을 건너야 했다. 마침 옆에는 아이를 업은 여인이 한 손으로 치마를 걷어 하천을 건너고 있었다. 스님은 급한 마음에 아이를 빼앗듯 안아 걸망 위에 앉히고 물속을 걸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온몸으로 번져왔다. 스님은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홍수에 쓸리지 않는 튼튼한 다리’를 염원했다. 고막대사가 중생들이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세계로 건너가기를 기원하며 신통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다리를 건립한 것이다. 이 다리가 고막천 석교이다. 오늘의 함평 고막리는 이 다리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고막다리가 축조된 해는 고려 원종 14년(1273), 무려 750여 년 전으로 아직도 성성하게 다리역할을 하고 있다. 고막다리는 총길이 20.1m, 너비 3.5m, 높이 2.5m로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돌을 나무 다듬듯이 깍아
우물마루형식으로 짜 맞췄다. 보기에는 그냥 돌덩이를 덤벙덤벙 투박하게 놓은 듯 보이지만 여기에는 신기에 가까울 첨단기술이 들어있다. 2001년, 고막다리를 보수할 당시 국내 최고의 기술자들이 고막석교를 점검하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고막다리를 자세히 살펴보니 지반보강을 위해 나무말뚝을 촘촘히 박고, 그 위에 돌을 일정한 두께로 절묘하게 깔아 급류에 쓸리지 않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기둥과 상판 축조를 목조가구의 결구법을 응용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단단해지도록 했다. 보수공사 당시 바닥에 박혀있던 나무막대를 탄소측정해보니 700년 전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기법으로 고막다리는 세찬 물살에도 쓸려가지 않고 국내 최장수 다리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고막다리는 1910년대까지만 해도 쌀 100섬을 실은 배가 영산강을 따라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때까지 상판에서 쌀이 한 톨도 빠지지 않는 정교한 다리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일제 때 보수공사를 한 후부터 다리가 삐걱거리고, 툭하면 보수한다며 사람들의 손을 타야했다. 예전에 고막다리에 큰 배가 들어오면 다리 주변에 장이 서곤 했다. 지역민들이 함평천지 넓은 들에서 나온 곡물로 떡을 해 나주와 영산포에 내다 팔았다. 고막다리를 ‘떡다리’라고 부르는 사유이기도 하다. 고막대사가 신통력으로 만든 고막다리는 신령스러운 다리이다. 사람들이 다리 위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았고, 다리의 돌을 빼가거나 옮기면 그 사람에게 변고가 생겼다고 한다. 또한 우는 아이에게 ‘고막다리에 버린다’거나 ‘똑다리에서 주워왔다’라고하면 아이가 울음을 똑 그쳤다고 한다. 고막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살이 세차 모기가 살지 못했고, 여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 역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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