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불교 지명이야기

배고픈 다리와 오백전 (2)

힘드세요?!
오백나한과 인연 맺고 기도해 보세요

희유한 일이었다. 시름시름 앓는 김방의 병은 원인을 알수 없었다. 그러니 백방이 무효였다. 하루는 멀리서 의원이 찾아와 김방의 병세를 살피고 닭똥집이 특효라는 처방을 내렸다. 부처님 도량에 오백전 불사를 발원한 시주자에게 육식이라니… 김방의 병세가 깊어지면서 고민도 깊어만 갔다.

마침내 병석에서 일어나기를 권하는 대중들의 뜻에 따라 닭똥집을 약으로 삼았다. 그렇게 병을 떨친 김방은 오백전 불사를 원만하게 회향했다. 그때였다. 묘하게도 한양 대궐에서 잠을 자던 세종대왕의 꿈에 닭 수백 마리가 찾아와 엎드려 간청했다.

“대왕이시여, 광주에 김방이라는 자가 무등산 골짜기에 장정을 모아놓고 군사훈련을 시키면서 역적모의를 하고 있으니 하루빨리 처형하소서.” 꿈에서 깬 세종대왕은 금부도사를 광주로 내려 보내 상황을 파악하고 김방의 처형을 명했다. 다음날 저녁, 이번에는 왕의 꿈에 어린 사미승 수백 명이 나타나 “김방은 나라의 충신이고 백성을 살리는 어진 관리이다”며 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임금은 다시 천리마를 탄 파발을 보내 금부도사에게 돌아오도록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먼저 떠난 금부도사가 무등산 증심사 입구 광주천 다리 근처에 도달하자 타고 있던 말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먼 길을 달려온 금부도사는 이곳에서 잠시 쉬며 밤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자 얼마 후 왕의 명을 받은 천리마가 달려오고 파발이 임금의 명을 전했다. 그때서야 움직이지 않던 말도 발을 떼어 천리마와 얼굴을 비비며 서로 반가워했다.

이때 한양에서 내려온 금부도사와 관군들이 증심사 아래 다리에서 배고픔을 달래며 날을 세웠다고 하여 지금도 이 다리는 ‘배고픈 다리’로 불리게 된 것이다. 금부도사로부터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들은 김방은 닭이 자신의 억울함을 벗기고 목숨을 살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더욱 신심을 내어 오백전 불사에 임했다.

이후 500여 년간 증심사 오백전에서는 기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닭이 나한으로 화현한 증심사 오백전에는 힘들고 지친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몸과 마음이 아프고 힘이 들면 증심사 오백나한과 인연 맺고 기도하기를 권해본다. 오백나한의 설화를 간직한 증심사는 도량 전체가 광주문화재 자료 제 1호로 지정된 명실상부한 광주의 얼굴이다. 특히 증심사 오백전(유형문화재 제13호)은 증심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으로 광주시민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백나한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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