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차한잔

스님들은 진짜로 고기를 먹지 않나요?

부처님께서 고기를 먹지말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몇가지 단서 조항을 지킨다면 고기를 먹는 것이 잘못된 행동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대승불교가 강조하는 자비심과 불교가 탄생하고 발전한 인도 사회의 수행 문화에 비추어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당연한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경우, 사찰 내에서는 어떤 형태의 육식도 하지 않음은 물론 오신채도 금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찰 밖에서는 순수한 채식과 오신채 금지를 실천하기 매우 어려운 여건이어서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나 대체적으로 육식을 피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스님들은 탁발로 음식을 구했습니다. 이때 몇가지 지켜야할 규칙이 있었습니다. 오전에 한 번만 탁발을 해야 하며 집을 가리거나 거르지 말고 일곱 집을 차례로 들러 한 그릇을 채워야 합니다. 만일 일곱 집을 들렀는데도 한 그릇이 못되거나 심지어 하나도 얻지 못했다면 굶어야 합니다. 음식은 가리지 말고 주는 데로 먹어야 합니다. 그래서 탁발한 음식 중에 고기가 있다면 역시 먹어야 합니다. 또한 남겨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탁발을 할 수 없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도는 열대지방이니 우기에 비가 많이 올 때는 탁발이 곤란할 것입니다. 이럴 때, 부처님은 삼정육(三淨肉)이라 해서 제한적으로 육식을 허용했습니다. 삼정육이란 만일 자기를 위해 죽이는 것을 보지 않았고, 자기를 위해 죽였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고, 자기를 위해 고의로 죽였다는 의심이 없다면, 즉 세 가지 점에서 깨끗한 생선과 고기는 먹어도 좋다고 부처님께서는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교에서 육식을 금하기 시작한 것은 대승불교에서 자비심을 강조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대승불교가 발전하던 당시 인도 수행자들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후대에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살피고 같이 아파하는 마음이 자비심인데 이러한 자비심을 가진다면 생명이 있는 것은 먹어서는 안되는 것 아닐까요?

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식물인 풀도 생명이 있는 것들인데 풀도 역시 먹어서는 안되는 것 아닐까요? 왜냐하면 먹으려면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살생을 해야하기 때문이니까요. 그러나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다른 생명체를 취해야만 스스로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풀이나 나무 같은 식물처럼 햇빛과 물과 흙만 있으면 생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그 어떤 살생도 하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이해한다면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모든 중생들에게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스님들이 발우공양할 때는 이런 마음을 담은 게송인 오관게를 낭송합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 부끄럽네
마음에 온갓 욕심을 버리고
몸을 보호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또 어떤 이는 이런 질문도 합니다. “생선은 먹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요즘 친환경을 생각해서 대체육이 많이 나옵니다. 곤충으로 만든 대체육은 먹어도 되는가요?” 이런 질문은 ‘어떤 고기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중요하게 따지는 것은 ‘어떻게 해서 이 음식이 내게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질문은 무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불교에서 금하는 음식으로 오신채(五辛菜)가 있습니다. 오신채는 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입니다. 이들 음식은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고 음심(淫心)을 일으켜 수행을 방해한다하여 엄격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양파도 파의 일종으로 간주되어 우리나라의 사찰에서는 금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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