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하는 <개미와 베짱이>
오늘은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를 불교적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늦가을 어느 화창한 날 개미 한 무리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여름에 모아두었던 곡식을 말리고 있습니다. 그 때 베짱이 한 마리가 옆구리에 바이올린을 끼고 나타나서 먹을 것을 조금 달라고 구걸했습니다. 그 모습에 개미들은 놀라며 말했습니다.
“말도 안 돼! 겨울에 먹을 것을 모아두지 않았다고요? 지난여름에 도대체 뭘 했나요?”
그 말에 베짱이는 투덜거렸습니다.
“음식 부스러기 따위를 모아둘 시간이 없었어요. 노래 부르고 노느라 바빴거든요.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여름이 가버렸네요.”
개미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먹이 모을 틈도 없이 노래나 부르고 놀았다고요? 그럼 이제 춤을 출 차례네요?”
그러고는 베짱이를 무시하고서 일을 계속 했습니다.
현대사회의 개미와 베짱이들… 직장인, 욜로족, 파이어족
<개미와 베짱이>가 요즘 우리 사회 정서와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은 개미 같은 베짱이도 많고 자기가 베짱이인 줄 알고 있는 개미도 많습니다. 개미 같은 베짱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떠올려봅시다. 이 사람들은 예술 하는 사람들이니까 베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개미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합니다. 베짱이는 베짱이인데 개미처럼 일만 하는 겁니다.
반대로 스스로를 베짱이라고 생각하는 개미들도 있습니다. 한동안 ‘아프니까 청춘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같은 식의 인생관이 매체에 자주 오르내렸습니다. 즐기면서 일하라는 의미입니다. “너는 기계처럼 일만 하는 개미가 아니고 즐겁게 노래하는 베짱이”라고 언론에서 사람들에게 속삭입니다. 사실은 별 볼 일 없는 개미에 불과한데도 이런 설탕발림 같은 달콤한 말에 혹하여 스스로를 베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욜로족도 있습니다. 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 번뿐)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인데, 지금 인생을 즐기자는 주의입니다. 이들은 돈이 조금 생기면 여행을 가고, 명품을 사고, 차를 뽑습니다. 한심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무조건 정신상태가 잘못 됐다고 탓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생활방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기약할 수 없으니까 돈을 모을 필요 역시 느끼지 못합니다. 조금 모았다 싶으면 집값이 보란듯이 확 뛰어버립니다. 평생 내 집 장만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데 돈은 모아 뭣하느냐 이겁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인생을 즐기자는 것이죠. 베짱이에 가까운 유형입니다.
정반대의 생활패턴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파이어족이라고 합니다.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재정은 독립하고 은퇴는 빨리 하자)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말입니다. 젊어서 열심히 벌어서 빨리 은퇴한 뒤에 노년에 인생을 즐기면서 살자는 주의입니다. 이들은 개미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예를 들어 내가 증심사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지인을 만나기로 했는데 시간이 늦어서 헐레벌떡 뛰어가고 있다고 합시다. 지금 뛰고 있는 이유는 과거에 한 약속 때문입니다. 과거의 약속이 지금 나의 행동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한편 내가 지금 그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나의 미래에 무언가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미래가 나의 현재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지금 여기 뛰어가고 있는 나와 같이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 모두가 지금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과거, 현재, 미래는 각각 따로 떨어져서 존재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가 들어올 수 있을까요?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과거나 미래가 실제로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현재도 과거도 미래도 없다
여러분. 지금 현재를 손으로 가리킬 수 있습니까?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지금”은 지나가버렸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아무리 딱 집어내려고 해도 집어낼 수 없습니다. 현재가 없는데 어떻게 이미 지나간 현재인 과거가 있을 수 있을까요? 현재가 없다면 아직 오지 않은 현재인 미래도 없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과거, 현재,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내 머릿속에 있는 기억입니다. 어떤 순간에 대한 기억이 과거입니다. 미래는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계획, 전망, 상상, 꿈, 희망 이런 것입니다. 현재 역시 현재라고 생각하는 것이지 실제 현실은 아닙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개념일 뿐입니다. 다만 머리 속이 아니라 실재 현실에 있다고 내가 착각할 뿐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집착하다 못해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행동에 충실한 것이 곧 인생이라는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는 것입니다. 인생은 마치 산을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한 발 한 발 열심히 걷다보면 어느 순간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2020년 새해를 맞이해서 여러분들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올해는 좀 더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각오를 다지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미래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반면 ‘새해라고 특별할 것 있는가? 그날이 그날이지.’라고 말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지금 자신의 행동 속에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하고 있음을 망각하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경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신화에 시시포스의 형벌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죽음의 신을 속이고 삶을 연명한 시시포스에게 내려진 형벌은 커다란 바위를 산 정상까지 힘들게 굴리는 것이었습니다. 정상에 오른 바위는 반대쪽으로 굴러 떨어집니다. 그러면 다시 바위를 정상까지 힘겹게 굴려야 합니다. 정상에 도달한 바위는 또다시 반대쪽으로 굴러 내려갑니다. 시시포스는 영원히 이 형벌을 반복해야 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이것은 형벌이 아니다. 우리에게 삶의 이유는 없다. 마치 바위를 굴리는 시시포스처럼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사는 것이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집착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매순간 부처님의 가르침과 나의 양심에 따라서 열심히 행동해야 합니다. 시간에 대한 올바른 생각으로 자신의 인생관을 찬찬히 되돌아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