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드문 일
곧 성도재일(成道齋日)이다. 부처님께서 최상의 진리를 깨달으신 것은 세상에 실로 드문 사건이다. 부처님께서 그 당시를 회상하며 들려주신 이야기가 <<맛지마 니끼야>> <고귀한 구함의 경>에 나온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사위성에서 탁발하시고, 식사를 마친 뒤 녹자모(鹿子母) 강당에서 한나절을 보내셨다. 그리고 저녁 무렵 명상에서 깨어나 존자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몸을 씻으러 냇가로 가자.”
부처님은 냇가에서 몸을 씻은 뒤 나와서 옷을 하나만 걸치고 몸을 말리셨다. 그때 아난다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인근에 바라문 람마까의 아쉬람이 있습니다. 그곳은 맑고 깨끗한 곳입니다. 그곳으로 가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부처님은 침묵으로 허락하고 람마까의 아쉬람으로 향하셨다. 마침 그곳에는 많은 수행자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부처님은 문밖에 서서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대화가 잦아들자, 부처님께서 기침 소리를 내며 빗장을 두드렸다. 수행자들은 문을 열고 부처님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자리에 앉은 부처님께서 수행자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세존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미소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이 모여서 할 일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법을 토론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거룩한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생노병사(生老病死)에 얽힌 것들에 관한 추구와 담론이 무익하단 걸 일깨워주시고, 생노병사에 얽매이지 않는 열반(涅槃)의 안온(安穩)을 추구하도록 수행자들에게 권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나 역시 너희처럼 젊은 나이에 출가하였다. 혈기왕성하던 청년 시절, 짙푸른 머리카락을 자른 나는 눈물 흘리며 통곡하는 부모와 가족들을 뒤로하고 돌아올 기약도 없이 길을 나섰다.
진리를 깨닫고 최상의 평화를 성취한 성자를 찾아 떠돌던 나는 알라라 깔라마를 만나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경지[無所有處]’를 터득하고, 웃다까 라마뿟따를 만나 ‘지각하는 것도 아니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경지[非想非非想處]’를 터득하였다. 두 성자 모두 진실한 분이셨다. 하지만 그들의 가르침을 터득한 후에도 욕망과 집착과 고뇌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의 마음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밝지도 고요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최상의 평화를 찾아 다시 길을 떠났다.
그렇게 마가다국을 차례로 유행하다가 마침내 우루벨라 근처의 쎄나니 마을에 도착하였다. 우거진 숲에 맑은 강이 흐르고 주변에는 탁발할 마을까지 있었다. 그곳은 수행하기 최적의 장소였다. 물러남이 없는 노력 끝에 나는 그곳에서 이 몸과 마음을 비롯한 세상 모든 것이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것들에 사로잡힌 자신을 보게 되었고,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것들을 집착한 까닭에 온갖 시련과 재난 그리고 고뇌가 발생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것들에 사로잡히지 않는 최고의 안온인 열반을 구하였고,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그것이 본래 나도 나의 것도 아니었음을 깨달아, 더는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것들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태어남도 늙음도 병듦도 죽음도 슬픔도 고뇌도 없는 최고의 안온인 열반에 도달하였다. 그때 이런 지견(知見)이 생겨났다.
‘나는 온갖 고뇌로부터 해탈하였고, 흔들림이 없다. 이것이 태어남의 끝이다. 더는 윤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깨달음의 길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은 매우 난감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심오하여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기 때문이며, 고요하고 탁월하여 사고의 영역을 초월하기 때문이며, 극히 미묘하여 슬기로운 자들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 대부분은 욕망에 순응하고 습관에 익숙한 것들을 즐기고, 욕망에 순응하고 습관에 익숙한 것들을 기뻐하고, 욕망에 순응하고 습관에 익숙한 것들에 만족한다. 그런 자들은 나의 가르침을 즐기지 않고, 기뻐하지 않고, 만족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가르침은 그들의 욕망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습관에 익숙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를 말해주어도 저들은 생존의 욕망을 멈추지 않고, 소유의 집착도 버리지 않을 게 뻔했다. 그래서 그때 이렇게 노래하였다.
참으로 힘들게 성취한 이 진리
말해야 할까?
탐욕과 미움에 사로잡힌 자들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리.
심오하고 미세한 이 진리는
욕망의 강을 거슬러 오르는 길
어둠에 휩싸이고 탐욕에 물든 자들
말해도 보지 못하리라.
깨달은 지리를 말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려고 할 때, 하늘나라의 신이 나타나 이렇게 노래하였다.
산꼭대기 바위에 서서
세상을 둘러보는 것처럼
모든 것을 보는 눈을 지닌 현자여
진리의 전당에 오르소서
승리자 영웅이여
일어나 세상을 거니소서
세존께서 진리를 설하시면
분명 알아듣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하늘나라 신의 간곡한 요청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세상을 관찰해보았다. 드물긴 하지만 세상에는 더러운 진흙탕에서 자란 연꽃과 같은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의 가르침을 만나지 못하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진흙탕 속에서 썩어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이렇게 선언하셨다.
불사의 문이 열렸으니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리고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렇게 아슬아슬한 순간을 거친 것들이다. 이를 안다면 어찌 감사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겠는가!
글. 성재헌(한국불교전서 번역위원)
일러스트. 박석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