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의 증심사 놀이

숲해설가 정그루

뒤늦은 낙엽을 떨구고 이제 가지만 앙상한 무등산의 겨울. 한낮 잠깐 따스한 틈을 타 숲해설가 정그루가 증심사에 다녀갔다. 불교환경연대에서 교육과정을 이수하여 국가공인 숲해설가가 된 후 6년째 자연 속에서 숲해설과 숲놀이를 진행하고 있는 친구다.

건강한 생태계, 고유한 문화가 살아있는 무등산

“무등산은 처음이에요. 학술조사 자료를 미리 찾아보곤 식생이 다양하지 않은 도시형 숲일 거라 생각했는데, 직접 와서 보니 참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에요. 용암이 폭발해서 생긴 흔적인 주상절리가 있으니 지질학적 가치도 훌륭하고, 계곡물이 흘러가기 때문에 사계절 온습도가 일정해 이끼류나 양치식물, 지의류 같은 환경지표종도 다양한 것으로 보여요.”

 증심사로 올라오는 길, 무등산국립공원 곳곳에 세워져 있는 ‘수달 캐릭터’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란다. 수달은 수생태계의 조절자 역할을 하는 한편, 건강한 수생태계의 지표종으로 이용되는 멸종위기 1급 동물. 무등산국립공원의 건강한 생태계를 방증하는 존재다.  

“그뿐 아니에요. 증심사 경내도 그렇고 무등산 등산로를 걸을 때 유심히 살펴보면 이곳의 지형이 얼마나 다양한지, 다양한 지형에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서로 의존하여 존재하는지 확인할 수 있어요. 미세지형이라고 하거든요. 연약한 식생들이 웅덩이, 골짜기, 높낮이가 다른 사면들 사이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터전이죠.”

  이제는 ‘숲’이라 하면 도시 가운데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을 떠올리기가 쉽다. 멀리 서울숲이나 가까이 순천만국가정원만 해도 그렇다. 도시숲은 만드는 사람의 목적에 따라 원하는 수종을 심고 관리한다. 사찰숲이나 마을숲 역시 필요에 따라 조경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예로부터 그 풍토와 문화에 맞는 식생들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절집의 사연에 따라, 또는 국가나 왕실의 필요에 의해 땅에서 일어난 일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생물자원의 보고일 뿐 아니라 역사문화의 현장이기도 한 것이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루고 사라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드신 이래 숲은 절집의 생활·수행상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어요. 사찰과 숲은 서로를 보완하고 지지하며 관계 맺어 왔지요. 규모 면에서도 사찰숲은 전국 국립공원의 10% 언저리를 차지하니 어마어마한 거예요. 전영우 교수의 <한국의 사찰숲> 일독을 권합니다. 사찰숲의 역사적 의미를 자세히 알 수 있는 책이에요.”

‘전통’에 대한 현대인의 자세가 대체로 그렇듯, 전통적 생태지식에 대한 관심도 줄어드는 추세다. 반면 휴양림과 수목원 등 산림 치유 및 휴양에 관한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니 사찰숲의 역할과 활용이 더욱 중요해지는 때라 하겠다.

사찰림으로 둘러싸인 증심사는 숲놀이터

증심사에서 ‘놀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이끼와 풀들이 뒤덮여 축축한 그루터기, 가로로 세로로 갈라지는 수피의 형태, 바스락 부서지는 마른 나뭇잎과 굵기가 다른 나뭇가지… 자연의 모든 게 창작의 재료가 된단다. 

“숲은 놀이예요. 제게는 여기 템플관 주변도, 법당과 오백전 뒤도, 사천왕문 인근도 너무나 근사한 어린이들의 생태놀이터로 보여요. 봄이면 목련 꽃잎 위에 손톱으로 조근조근 그림을 그려볼 수 있고요. 여름이면 보물 찾듯 매미 허물을 찾아 온 초록 잎들을 들춰볼 수 있어요. 가을이면 다람쥐에게 열매밥상을 선물하는 주방놀이를 하고요, 겨울이면 길고 짧은 나뭇가지들을 모아다가 추위 피해가는 작은 새의 둥지를 장만해주는 거죠.”

양치식물인 고사리 잎을 뒤집어 뒷면에 붙은 포자의 생김새를 들여다보는 것도, 크고 작은 바위에 융단처럼 깔린 선태식물 이끼를 쓸어보는 것도, 앙상한 가지 끝 좁쌀만하게 맺힌 꽃눈을 손끝으로 매만지는 것도 모두가 놀이활동이 될 수 있다. 사는 이들에겐 잘 보이지 않는, 숲 전문가의 시각이다. 그래, 숲해설가는 어떻게 되는 걸까? 혹은 하는 걸까?

“숲해설가는 산림청에서 인정하는 국가공인 산림교육전문가 중 하나입니다. 산림청이 지정한 전국 32곳의 교육기관에서 이론과 현장 수업, 모의 시연을 모두 마쳐야만 국가공인자격증을 신청할 수 있어요. 나무뿐만 아니라 곤충, 조류, 포유류 등 숲에 사는 다양한 동식물을 두루 공부하고 숲 외에 습지와 해안식물 등도 배우는데요. 현재 산림청 지정 숲해설가 양성기관은 전라도에서 전북에 1곳 있을 뿐 전남에는 전무한 실정입니다.”

마음 쉼, 마음공부는 지금 여기부터

숲해설은 한 편의 연극을 꾸려가는 것과 같다. 현장성이 극화된 직업이기에 날씨, 장소, 피해설자 혹은 해설자의 성향에 따라 매번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 정그루는 그런 작업을 즐기는 타입의 사람이다. 변화하는 가운데 모든 인연 고리를 수용하고 인정한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자연 자체가 공부터고 명상터다. 

“제게 숲과 자연은 모든 감각이 열리는 창구 같은 곳이에요. 복잡한 마음일 때나 명상의 시간이 필요할 때는 자연 속에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돼요. 감각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 순간에 저는 정말이지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 그걸 함께 나눠야지요. 복잡한 정신 활동을 쉬어가며 진정으로 휴식하는 방법을요.”

  몇 걸음을 떼면 곧장 무등산 품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증심사 대중들에게 숲해설가 정그루가 말한다. 힘차게 바람을 가르며 걸어도 좋지만, 느리게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의 결에 따라 다르게 움직이는 나뭇가지에 집중해보시라고. 어제와 다르게 피어나는 꽃들이 그 자체로 마음을 어루만질 것이라고.

증심사를 찾은 사람, 정그루.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와 동대학원 바이오환경시스템공학 석사 학위가 있다. 불교환경연대에서 간사로 일하며 종교인탈핵순례, 지율스님의 내성천 살리기 운동 등에 참여했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에서 석사연구원으로 일했고, 현재 프리랜서 숲해설가와 생태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 독서모임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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