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법문

종교는 문화다 1

미얀마 성지순례기 두 번째

2019.11.27 초하루법회

미얀마는 조용하고 깨끗한 인도입니다. 인도에 다녀오신 분들은 바로 감이 올 겁니다. 아마도 그 나라 자체가 불심이 깊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미얀마에 가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사원이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절인데, 신도들이 참배하는 사원과 스님들이 생활하는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따로 있습니다.

사원에는 스님이든 재가자든 일반인이든 관광객이든 심지어 개나 고양이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참배하고 공양 올릴 수 있습니다. 언제나 가능합니다. 그리고 가는 사원마다 신도, 재가불자들이
많건 적건 간에 부처님 앞에서 명상하고 독경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식당의 한쪽 벽에는

가족들의 기념사진이 걸려있는데, 삶의 순간마다 불교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미얀마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불교가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얀마는 우리나라처럼 절이 산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을에 있습니다. 동네마다 부처님을 모신 법당이
있습니다. 미얀마에 가기 전에는 불심이 깊은 나라라고 하니 미얀마 불자들도 우리처럼 열심히 기도하고 절하고 경전을 외우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실제 가서 본 모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일상생활에 불교가 자연스럽게 묻어나있습니다. 출퇴근길에 참배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자연스럽게 명상하고 독경합니다. 말하자면 미얀마에서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문화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향유하고 있는 문화 중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예를 들자면, 명절이 되어 외지에 나가 있는 가족들이 다 집에 와서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전통문화입니다. 얼마 전까지도 차례와 성묘는 당연한 것이고 꼭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니까 그냥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미얀마의 불교 역시 이와 유사한 느낌이었습니다. 명절에 성묘하는 것이 우리 문화이듯이 미얀마 사람들은 아침저녁으로 사원에 들러 참배하고 부처님께 꽃을 올리고 스님들에게 보시하는 것이 문화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불자들이 절에 가서 기도하고 공양 올리고 보시하는 것은 문화가 아니라 신행활동, 종교활동입니다. 그런데 미얀마에서는 그냥 문화입니다. 미얀마도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지만 워낙 불자가 많다 보니 불교식으로 생각하고 불교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까 불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보편적인 문화가 되었습니다. 이게 제가 미얀마에서 가장 크게 느낀 점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종교가 없는 사람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대도시는 종교 없는 사람이 60%를
넘어서고, 광주는 불자가 광주 인구의 10%에 불과합니다. 등산객 10명이 증심사 앞 등산로를 지나간다면, 그 중 6명은 종교 자체에 관심이 없고 2명은 교회에 다니고 1명은 성당에 다니고, 마지막 남은 1명이 불자라는 말입니다. 더욱이 불자라고 해도 절에 꼬박꼬박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불자라고 답한 이들 중에서 재적 사찰이 있는 사람은 60%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절에 가고 기도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문화가 아닙니다. 일부의 사람들만 시간을 내서 의도적으로 하는 종교활동인 것입니다. 이것이 미얀마와 우리나라 불교의 첫 번째 차이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모습이 올바른 종교의 모습인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먼저 종교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종교는 믿음을 통하여 인간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체계.’ 꾸미는 말을 모두 제하면 ‘종교는 문화’로 요약됩니다. 어떤 문화인가 하면 믿음을 매개로 하여 인간생활에서 나타나는 고뇌를 해결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문화입니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일정한 집단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종교가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성향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항상 안정을 추구합니다. 뭔가 일정하게 유지되면 안정감이 있다고 합니다. 반면 뒤죽박죽 늘 다르면 안정감이 없습니다. 또한 안정감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소속감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안정감을 추구하는 가장 쉬운 길은 내가 일일이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아도 대다수가 생각하는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이 있으면 살아가는 데 불안감이 없습니다.

이것이 도덕이고 윤리입니다. 공통된 생각이 모여서 하나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 즉 도덕과 윤리는 우리 삶의 가이드 라인이 됩니다. 종교는 이와 같은 공통된 기준을 만들기 위한 바탕이 됩니다. 믿음이라든가 절대적인 것, 초자연적인 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공통된 생각을 하게끔 이끌어내는 것이 종교가 지닌 역할 중 하나입니다.

종교는 도덕과 윤리의 바탕이 됩니다. 과거 서양은 모든 것을 기독교라는 틀 안에서 행했고, 지금도 이슬람교는 중동국가에서 도덕과 윤리의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속한 동아시아에서는 종교가 아닌 유교의 충효사상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공통된 행동을 이끌어내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미얀마는 아주 종교적인 국가입니다. 불교라는 종교가 바탕이 되어서 도덕과 윤리가 세워지고 그 기준에 따라서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미얀마는 종교라는 틀로 살아가는 종교적인 국가이며 일상에서 종교가 문화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사회는 종교적인 국가가 되지 않았을까요?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을 비롯해 몇 번의 혼란을 겪었습니다. 혼란의 시기동안 우리 사회는 서구 문화를 최고의 가치로 알고 서구의 문화를 받아들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전후 당장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화두였고 1970년대까지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몇 십 년을 살다 보니 우리들 삶에 내재되어 있던 도덕이나 윤리 같은 덕목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는 종교를 신앙으로만, 믿음으로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종교는 기복신앙에 치우치거나 영적 체험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일상생활에 밀접하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전통적인 마을공동체가 무너진 후 도덕이나 윤리 대신에 우리들을 지탱하는 것은 돈과 능력, 법입니다. 능력은 곧 돈입니다. 자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은 돈 많이 벌라고 다그치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인간답게 살라든지 보시를 많이 하면서 살라고 교육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자라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남에게 해만 끼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남에서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 요즘 우리들의 윤리라는 말입니다. 이는 이전 세대가 가지고 있던 충효사상에 바탕한 도덕 윤리와는 거리가 멉니다.

☞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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