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심사 얼마나 알고 있니?

취백루翠柏樓

뜰 앞의 잣나무가 있는 누각

취백루에 올라가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면, 봄에는 연분홍빛 벚꽃, 여름에는 푸르른 녹음, 가을에는 노오란 은행나무가, 겨울엔 하얗게 눈 덮인 설경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취백루는 ‘뜰 앞의 잣나무’가 있는 누각이란 뜻이다. 시적 향취 물씬 풍기는 이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누각의 명칭은 취백홍도(翠栢紅桃)가 피어 있는 아름다운 정경을 묘사한 고려 때의 시인 김극기(金克己)의 시구에서 취해진 것이라 전한다. ‘뜰 앞의 잣나무’라 한 것은 선불교의 간화선(看話禪) 수행지침서로 유명한 <무문관(無門關)>제35칙에 나오는 정전백수(庭前栢樹)를 차용한 것이다.

취백루는 정유재란 때 화마를 입어 1609년(광해군 1년)에 증심사를 중창한 석경(釋經)·수장(修裝)·도광(道光) 세 스님의 원력으로 다시 세워졌다. 이후 6.25전쟁으로 또다시 불에 타버린 취백루는 1998년에 정면 5칸에 측면 3칸 규모로 다시 지어졌다. 현재 상층은 신도교육과 템플스테이 체험 등으로, 하층은 종무소로 사용 중이다.

취백루에는 당대에 유명한 문인, 암행어사, 전라도 관찰사, 광주 목사, 고을 현감들이 다녀가기도 했다. 그들이 남긴 시, 유람기 등은 현재의 우리에게 옛 취백루의 모습과 증심사의 풍경들을 떠올리게 해준다. 또한 시 속에서 사찰이라는 공간은 서로 교유하는 장소이자, 마음 치유의 장소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도 엿볼 수 있다. 많은 시문과 유람기가 남아 있으나, 그중에서 문신이자 의병장인 고경명 무등산유람기<유서석록>에 나온 구절을 소개한다.

이윽고 날이 저물어 지팡이를 끌면서 천천히 걸어 들어가니

절 문 앞에 조그마한 다리가 청류에 걸쳐있고

여기에 고목이 서로 그림자를 비추니 절경이요.

그 그윽함에 마치 선경에라도 온양하여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마침내 취백루에 올라 난간에 기대어 잠깐 쉬면서 생각하니

이 이름은 ‘잣나무가 뜰 앞에 푸르다’는 글귀에서 따온 듯하다.

다음 날 도착한 광주목사를 취백루에서 맞이하였다.

누대 앞에 오래 묵은 측백나무 두 그루 있는 것이 보기에 한가롭고 좋았다.

이것이 비록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것 같지 않으나 취백루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다.

고경명(髙敬命, 1533~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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