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증심이달의 법문

2025년 봉축사

말법시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온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유럽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세계의 화약고라는 중동의 아슬아슬한 평화는 한순간의 희망일 뿐이었습니다. 중동은 다시 화염으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겠다는 트럼프는 온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 전쟁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위대해져야 할 미국인들의 삶이 오히려 무너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도시괴담 수준으로 떠돌던 일본침몰은 어느덧 뉴스를 장식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한 순간에 30만명이 죽을 수 있다는 난카이 대지진이 내일 당장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2차대전을 기점으로 지구의 지질시대가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에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온 지구를 파보면 과거와 달리 방사능이 검출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지구의 멸망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멸종이 곧 지구의 멸망이라는 발상 자체가 인간들의 오만한 착각일입니다.  45억 년을 살아온 지구는 아직 건강합니다. 다만 호모사피엔스의 멸종이 있을 뿐입니다. 

나라 안에서는 대통령이라는 자가 친위쿠테타를 일으켜 국민들에게 전쟁을 선포하였습니다. 국민들은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저항하여 마침내 그 자를  탄핵시켰습니다. 집안 싸움으로 나라의 체력은 쇠약할 대로 쇠약해졌지만 책임질 사람이 없습니다. 남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다 보니 모든 고통은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봄은 왔건만, 봄이 전혀 봄 같지가 않았습니다. 매화 향기는 벗꽃과 함께 흩날렸고, 젊은이들은 산수유를 보고 개나리라며 좋아했습니다. 

야트막한 동산에 올라 발 아래 세상을 내려보았습니다. 막대기 꽂듯 곳곳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가 시선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넉넉한 들판과 부드러운 능선은 아파트에 가려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럽지 못한 자연의 풍경입니다. 

눈 앞의 욕망에 정신이 멀어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사이, 세상은 전쟁과 자연재해로 얼룩진 말법천지로 변해버렸습니다. 우리들의 욕망이, 우리들의 증오가, 그리고 우리들의 어리석음이 온 세상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경고성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세상은 불타고 있습니다. 미국 서부, 유럽 남부, 중국, 우리나라 등 세계 곳곳이 산불 재해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더 없이 소중한 나도 남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입니다. 별볼일 없고 무책임한 남일 뿐입니다. 그러니 남을 탓하고, 사회를 탓하고 세상을 탓하는 것은 “나는 잘못이 없다.”고 우리 모두가 한 목소리로 떠드는 것과 같습니다. 모두의 잘못이지만, 누구도 잘못하지 않은 이상한 세상입니다. 세상이 미쳐 날뛰고 불타올라도 누구 하나 팔 걷고 나서지 않습니다. 누구 하나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아파하지 않습니다. 압 안에 든 달콤한 사탕에 취해, 불타는 집 안에서 나올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유마거사가 되어 심신이 병든 중생들과 함께 아파할 것입니까? 누가 인로왕보살이 되어 불타는 전쟁터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들을 극락으로 인도할까요? 누가 현명한 부모가 되어 불타는 집 안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요? 

불새는 생명을 해치지 않아 풀잎의 이슬만 먹고 삽니다. 불새는 500년마다 스스로를 불태우고, 그 재 속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우리들의 눈이 불타고, 눈이 바라보는 이 세상이 불타고 있습니다. 우리 중생들은 다 타버린 재가 되어 바람에 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요? 아니면 불새처럼 그 속에서 다시 살아날까요? 

땅에서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나고, 번뇌의 불길 속에서 신음하는 자는 번뇌의 불길 속에서만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나로부터 반성하고, 나로부터 참회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잿더미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가 되는 것입니다. 번뇌의 불길을 뚫고 다시 태어나는 중생이야말로 유마거사이며, 인로왕보살이며, 일승불입니다. 

오늘은 을사년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우리 모두가 번뇌의 불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날입니다. 초파일은 부처님의 생신일이자 모든 중생들의 진정한 생일이기도 합니다. 

나로부터 참회하여 번뇌의 불길을 바로 잡아, 모든 중생들이 행복한 불국정토를 만듭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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