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 경전해설: 보왕삼매론 2

부처님 당시에 한 재가자가 부처님께 “몸이 늙고 병들어서 너무나 괴롭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답했다. “몸은 병들어도 마음은 병들지 않는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된다.” 어떻게 하면 몸은 병들어도 마음이 병들지 않는다는 것일까?
재가자가 이번에는 사리불 존자를 찾아가 물었다. “어떤 것이 몸이 병들면 마음이 병든 것이고, 어떤 것이 몸은 병들어도 마음이 병들지 않은 것입니까?” 첫 번째 질문에 사리불 존자가 대답했다. “나는 오온이고 오온은 나의 것이라고 속박되어 지내지만 그 오온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오온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것 때문에 그에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생겨난다.”
오온은 색수상행식이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나 자신이다. 나의 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색온, 내가 덥다 혹은 춥다고 느낀다면 수온, 내 앞에 뭔가가 있는데 참 좋아 보인다고 생각할 때는 상온이고, 나도 빨리 돈을 벌어서 저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고 하는 것이 행온이고, 내가 느끼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나 자신이라고 내 마음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것이 식온이다.
‘이것이 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다’ 라는 것에 속박되어 지내지만 그 오온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사실은 내가 있지 않은데 내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고통과 번뇌가 생겨난다.
몸이 병들어도 마음이 병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번째 질문에 사리불 존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오온이고 오온은 나의 것이라고 속박되어 지내지 않지만 오온은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 오온이 변화하고 달라짐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은 생겨나지 않는다.”
차이는 단 하나. 내가 있다는 생각 즉 ‘이것이 나’라는 생각에 속박되어 있느냐, 속박되어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보왕삼매론에 빗대자면, 나에게 장애가 있어도 그것이 내 마음의 장애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보왕삼매론의 첫 번째 구절이 원문에는 조금 더 길게 나와있다. 다음과 같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겨나기 쉽다. 탐욕이 생겨나면 마침내 파괴하여 도에서 물러나게 되느니라. 병의 인연을 살펴 병의 성품이 공한 것을 알면 병이 나를 어지럽히지 못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사리불 존자는 병들어 고통스러워하는 재가자에게 오온이 공한 이치를 깨달으면 몸이 병들어도 마음이 병들지 않는다고 이야기 했고, 묘협스님은 병이 공한 이치를 깨달으면 병이 당신의 발목을 잡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몸이 병드는 것이나 가을에 낙엽이 지는 것이나 같은 이치이다. 낙엽이 떨어진다 하여 나무가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늙고 병듦을 괴로워하고 불안해 한다. 이것은 오온이 공한 이치를 모르고 하는 행동이다. 무명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에 병이 장애로 다가온다.
병의 인연을 살펴서 약으로 삼아야 한다. 연기실상의 세계를 살핀다면 시절이 도래하여 낙엽이 떨어지는 것이고 시절이 도래하여 병이 온 것이다. 그러한 인연을 안다면 치료법 또한 가볍게 생각할 수 있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는 이야기를 앞서 했다. 그렇다면 왜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는 것일까? 비유를 들자면, 10년이 되어서 잔고장이 많은 자동차를 탈 때는 운전할 때 항상 조심하게 된다. 비싼 신형 자동차를 뽑아서 신나게 고속 주행을 하다 보면 자칫 사고가 나기 쉽다. 몸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몸이 건강하니까 탐욕이 생긴다. 차가 좋으니까 속도를 막 내는 것과 같이 말이다.
오후불식을 하면서 그동안 내가 ‘식욕’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의 많은 부분이 사실은 ‘식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후에 먹지 않는 생활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먹지 않는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과거에는 조금만 배가 고파도 무언가를 반드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챙겨 먹지 않았는가? 식욕이 아니라 식탐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몸이 건강할 때는 그것이 탐욕인줄도 모르고 살아가기가 쉽다. 마치 조심성 없이 달리는 신형 차와 같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