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절따라

[26-06] 돌에 새긴 선풍, 돌이 연주하는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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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심사 주지 중현스님이 이끄는 길따라절따라 불교문화답사단은 지난 5월 10일 밀양 표충사와 만어사, 김해 수로왕비릉을 답사하고 돌아왔습니다. 답사에는 모두 33명이 동참했습니다. 

막연히 사명대사의 호국사찰이라고만 생각했던 표충사에서는 근대의 큰스님 효봉스님의 선풍을 마주했고, 짐짓 아름다울 것이라고만 짐작했던 만어사에서는 오가는 길목에서의 역경에 애를 먹었습니다. 만어사에서의 진땀을 수로왕비릉의 평화로움이 닦아주는 것 역시 예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인연이 주는 감동과 의외의 난관이 어느 때보다 강렬했던 오월의 답사길을 공유합니다. 

고요한 선풍이 머무는 … 표충사 

표충사는 여느 사찰과 달리 불교와 유교가 한데 어우러진 특별한 공간입니다. 불교의 신앙 공간과 임진왜란 때 승병을일으켜 나라를 구한 사명대사를 모시는 유교적 사당(표충서원)이 공존하다 보니 독특한 복합 구조를 가지는데요. 가장 먼저 진입하게 되는 하단에는 사명대사의 영정을 모신 표충사(表忠祠) 사당과 유학을 교육하던 표충서원, 그리고 유물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표충사당과 서원은 공개하지 않는 터라 곧바로 계단을 통해 중단으로 올라갑니다. 

중단부터는 사천왕들이 도량을 수호하는 불법의 공간입니다. 마당 한가운데 단아하게 서 있는 삼층석탑(보물)을 지나 상단의 팔상전, 대광전, 관음전 등의 주요 전각을 답사했습니다. 야외 법당이자 시민들의 휴식처로 개방하고 있는 우화루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혀갑니다. 

점심공양을 하기 위해 들른 공양간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습니다. 불일암 법정스님의 상좌이자 중현스님의 사숙인 덕문스님입니다. 표충사 서래각 선원에서 안거를 나고 산철을 보내고 있다는 덕문스님의 안내로 선원을 견학했습니다. 서래각 선원은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이자 조계총림 송광사의 수행가풍을 세운 효봉스님이 주석하시고 또 열반에 든 장소이기도 합니다. 선방 문고리를 잡으며,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西來]을 참구하는 수좌들의 치열한 정진을 엿보았습니다. 선원에서 나와서는 거대한 자연 암석으로 조성한 효봉스님 사리탑을 참배했습니다. 근현대 한국불교사의 거목이었던 효봉스님을 향한 후세들의 존경의 크기와 그리움을 짐작해봅니다. 

내려가는 길에는 유물관에서 국보인 청동 은입사 향완을 비롯하여 사명대사가 조정으로부터 받은 가사와 바라 등의 유물을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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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돌들이 들려주는 전설… 만어사

“차가 못 올라갈 건데…” 노련한 기사님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만어사로 이어지는 왕복 1차선 굽이굽이 산길은 대형버스가 오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불심으로 무장한 노장의 운전솜씨에 무탈하게 만어사 주차장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만어사는 산비탈을 따라 쏟아져 내린 수만 개의 검은 돌들 위에 자리한 사찰입니다. 만어산 암괴류가 만든 너덜지대는 그야말로 장관인데, 마치 수천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일제히 대웅전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돌로 굳어버린 듯 기이한형상입니다. 신비롭게도 이 돌들을 두드리면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지니, 자연이 빚어낸 거대한 악기라 함직합니다. 

만어사는 인도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온 가야국의 왕비 허황옥과의 묘한 연결고리를 갖습니다. 인도 아유타국의 상징인 ‘쌍어문(두 마리의 물고기 문양)’과 만 마리 물고기를 의미하는 만어사. 바다를 건너온 이들이 들여온 남방불교의 흔적이 동해 용왕과 물고기라는 상징과 만나진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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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너온 가야의 어머니… 수로왕비릉

밀양의 산세를 뒤로하고 가야의 옛 숨결이 흐르는 김해로 향합니다. 구지봉 기슭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수로왕비릉은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부인이자, 인도 아유타국에서 붉은 돛을 달고 바다를 건너왔다는 허황옥의 능침입니다. 

왕비릉 경내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파사각 내부에 보존된 파사석탑(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입니다. 깨지고 마모되어 얼핏 보면 그저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것 같은 이 탑을 보기 위해 일부러 김해를 행선지로 삼은 것은, 이 탑이 한반도에 전래된 최초의 불탑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에서는 서기 48년 허왕후가 파사석탑을 싣고 가락국에 도착했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공식적인 불교 전래설인 고구려 소수림왕(서기 372년) 때보다 훨씬 이른 시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고 인도 등지에서 나는 붉은빛의 닭벼슬 모양 석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역시 불교의 남방 전래설 즉 가야불교 초전설을 뒷받침합니다. 

단정하고 평화로운  왕비릉 앞에서 이 땅에 불교의 씨앗을 심고, 차 문화를 전하며, 가야라는 찬란한 해양 제국의기틀을 닦았던 왕비의 위엄을 헤아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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